[2018 신춘문예-시] 율가(栗家)/이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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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ridy@busan.com

갓 삶은 뜨끈한 밤을 큰 칼로 딱, 갈랐을 때

거기 내가 누워있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레가 처음 들어간 문, 언제나 처음은 쉽게 열리는

작은 씨방 작은 알 연한 꿈처럼 함께 자랐네

통통하니 쭈글거리며 게을러지도록 얼마나 부지런히 밥과 집을 닮아갔는지

참 잘 익은 삶


딸과 딸과 딸이 둘러 앉아 끝없이 밤을 파먹을 때마다

빈 껍질 쌓이고 허공이 차오르고 닫힌 문이 생겨났다

말랑한 생활은 솜털 막을 두르고 다시 단단한 문을 여미었다

강철 같은 가시는 좀도둑도 막아주었다

단단한 씨방 덜컹덜컹 뜨거워지는데

온 집을 두드려도 출구가 없네

달콤한 나의 집, 차오른 허공이 다시 밥으로 채워질 때, 혹은 연탄가스로 뭉실뭉실 채워질 때

죽음은 알밤처럼 완성된다


죽음은 원래가 씨앗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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