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춘문예-시 당선 소감] 펜으로 누군가에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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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회

칼을 쓴다는 사람이 한 말 앞에서 오래 숙연해졌다. 말이 말을 낳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다는, 그분의 말 앞에서 오래 떨었다. 뾰족한 만년필 촉을 자주 들여다봤다. 날카로워서 누군가를 상하게 할 만했다. 그러나 참으로 무력하기도, 한없이 비겁하기도 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스티로폼 판을 들고 앞서 걷는 노인이 휘청휘청 바람에 밀리며 옆으로 걸었다. 나무에 남아있던 은행잎이 햇살 부서지듯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부끄러운 이름을 우체국 창구에 내밀고 나오던 길이었다. 이제 그만해야 할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정신 차리고 제대로 시작하라는 듯 소식이 왔다. 펜으로 누군가를, 무언가를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더 작고 약한 것이길 바란다. 무력함으로라도 밀고 나가길, 적어도 비겁하지 않길 바란다. '변방은 창조공간'이라는 신영복 선생님 말씀도 다시 새긴다.

늘 부족한 제자라 송구하기만 했는데 김재홍 교수님께 제대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시 스승이면서도 시 동무를 자처해주신 김수우 선생님, 그리고 이선형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함께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있어 다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가족들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어릴 적부터 유쾌함을, 꾸준한 노력을 몸소 가르쳐주신 부모님, 꼼지락거리며 자기 생을 펼쳐가고 있는 사랑하는 채은, 류원, 생각지 못한 것을 알게 해주는 남편, 모두와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시 용기를 갖게 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글로 보답하도록 애쓰겠다는 말씀을 올린다.

약력: 1974년생. 본명 이소연.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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