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선] 미세먼지와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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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

봄은 좋겠다. 무수하게 반복돼도 늘 '새봄'이니까. 새여름과 새가을, 새겨울은 없다. 사계 중 유일하게 봄은 '새로움'과 관계된다. 새로움은 반복되는 주기를 지리멸렬이 아니라 사랑의 황홀한 사태로 만든다. 아득하게 펼쳐진 맑은 봄날은 내가 아닌 우주적 타자가 나에게 보내는 감격스러운 축복의 눈짓이다.

미세먼지 '공포'시대 현실화
대기 불평등과 소외 문제도
국가기구만 믿고 있을 때인가
고통 제거·예방·치료 절실

봄날의 눈짓? 눈곱처럼 낀 먼지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꿈 깨라는 듯 긴급 재난문자가 뜬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외출 자제. 내일 공공기관주차장 폐쇄. 차량 2부제에 적극 참여바랍니다. '긴급, 재난, 비상, 폐쇄.' 동원된 용어들에서 오싹한 공포감이 들기까지 한다.

마스크는 이제 일상이다. 캐나다 로키산맥 산중의 신선한 공기를 담은 공기캔과 농축 산소캔이 명절 선물 품목을 차지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어쩌면 곧 맑은 하늘을 찾아 떠나는 여행 패키지 상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삼림욕기라도 장만해서 대리 만족을 해야 할 것이다. 소비성 여행 대신 산소발생기를 구입한 누군가는 미세먼지 시대의 실용주의자로 칭송을 받기도 하리라.

호흡기를 타고 빨려 들어온 먼지가 혈액 속을 날벌레들의 사체처럼 둥둥 떠다닌다. 후각세포를 거쳐 곧장 뇌에 침입한 미세먼지는 조금만 스쳐도 상처가 나는 지지세포에 염증을 일으키면서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를 심각하게 저하시킨다고 한다. 뿌옇게 흐려진 대기처럼 심신에도 우울증이 생겨난다. 쪼들리는 살림에 해마다 치료비까지 따로 책정해야 할까. 호흡기 계통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계층들은 '하우스푸어'가 아니라 '산소푸어'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방독면 퍼포먼스'가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겠다.

공상 같은 이런 디스토피아가 왜 이렇게 실감 나는 걸까. 대기 불평등과 소외는 벌써 현실이 되었다. 가령, 중국의 경우 석탄 난방을 천연가스로 바꾸고 전기차 구매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베이징의 하늘을 경이롭게 개선하였다고 한다. 만리장성을 무용지물로 만든 먼지의 침입에 맥없이 수도를 내주어야만 했던 중국공산당이 마침내 제공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도만을 위한 정책이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있는 서북쪽과 허베이, 후난 등은 오염의 최고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어떤가. 서울시는 올 초 미세먼지 공습에 맞선 대중교통 무료 정책에 무려 150억 원을 썼다. 먼지와 함께 150억 원의 혈세가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아무리 선거철이 눈앞이라지만 시민들 입장에선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예산을 대중교통망을 더 확보하는 데 쓸 수는 없었을까. 황당무계한 정책이 주는 소외감은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재해 유토피아>에서 레베카 솔닛은 말한다. 재해가 일어나면 무질서에 따른 폭동과 약탈 등이 일어난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재해 이후 피해자와 구원자 사이에 상호부조적인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국가의 삼엄한 통제가 있을 때는 서로 두려워하며 지내던 사람들이 질서가 사라지자 곧바로 자생적인 상호부조적 공동체의 질서를 발견한다는 것. 오히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같은 재해들에서 증명되었듯 무질서는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증폭된다. 동일본지진을 지켜본 가라타니 고진이나 많은 재해학자들이 공감하는 바다.

국가기구들만 믿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잃어버린 새봄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고통을 제거하고 예방하며 치료하려는 시도가 문화라면, 미세먼지 시대엔 국가만 있고 문화가 없다. 고탄소차에 부담금을 매기고 저탄소차를 지원하는 정책 대신 엉뚱하게 애먼 고등어구이 탓이나 하고 다닌다. 봄날의 우울과 시름이 깊어가는 이유이다. 시인 김수영에게 '먼지'는 "망각(忘却)을 실현한 나를 발견"케 하는 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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