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읽는 세상] 물의 경전(經典)

  • 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1

매일 밤 참방참방 우물 속 푸른 별빛

맑은 물에 몸을 씻고 풀꽃 같던 아이들

그들도 다 떠나가고 혼자 늙는 고향 우물

2

찻잔에 잠긴 달이 탱자처럼 따뜻해

단풍잎 등(燈)을 걸고 마주한 손님이랑

두 손에 모이는 온기 달도 함께 마신다

3

구름도 스님 닮은 오목한 백담 계곡

맨발로 삭발한 채 울먹울먹 흘러와서

바위에 구멍을 내고 뼈로 우는 물소리



유재영

물처럼 소중하며 도를 닦은 자연이 또 있을까.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란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흐르는 물처럼'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다(君子之交淡若水)' 등등 옛 성현의 말씀이 물처럼 맑고 깊다.

고향 우물은 늙어가도 우물에 잠기던 별빛은 추억 속에 푸르다. 찻물에 탱자처럼 담긴 달의 온기를 벗님과 함께 누림은 여간한 여유로움이 아니리라. 물빛 같은 시어가 따스하게 스미어 말라가는 마음들에 촉촉한 감성을 일으킨다.

물은 부드러우나 약하지 않다. 백담에 이르러 '바위에 구멍을 내고 뼈로 우는 물소리'처럼 바위를 깎으며 그렇게 물은 울부짖기도 하였다. 견성에 이르는 길은 몇 굽이를 거쳐야 하는지. 물은 험하고 먼 길을 허물까지 씻어 안으며 흘러 이윽고 낮은 곳으로 임한다, 넓고 그지없이 맑고 깊은 곳으로. 시인이 읊은 '물의 경전'이 마음속 자욱한 미세먼지를 걷어내고 있다. 참 맑고 깨끗한 물을 길어 올린다. 전연희·시조시인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