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향교 유교 아카데미] 도심 향교서 떠나는 '동양 인문학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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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 유교 아카데미 가운데 '맹자' 강좌 수강생들이 강사 설명에 집중하면서 교재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향교는 조선조에 있었던 지방 공립교육기관이다. 대체로 그 지역과 향교 명칭이 일치하는 데 비해 부산은 그렇지 못하다. 부산향교가 아니라 동래향교와 기장향교가 있다. 그만큼 부산이란 도시의 변화 속도가 빨랐다는 의미다. 그림자가 뒤처질 정도로 빨리 달렸다는 말이 있듯이, 이름 변경이 뒤따르기 어려울 지경으로 부산의 정체성은 급하게 바뀌어 갔다. 도시 역할이 일제강점기 병참기지, 임시 수도, 산업화 전진 기지로 숨돌릴 겨를 없이 변화됐던 것이다.

동래향교 부설 평생교육원
月 명심보감, 火 대학 중용
水 주역, 木 맹자·서예, 金 논어
일주일 내내 알찬 동양고전 학습

선동 하정마을, 상현사 등 방문
1박 2일 유교문화 체험 행사도
반응 좋아 내년 더 확대할 계획

특히 부산의 교육과 문화 중심지였던 동래향교에 대해 시민이 갖는 인식도가 높다고 하기 어렵다. 항만 개발과 신도시 건설로 시선이 쏠리면서 옛 부산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래향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동양 고전 학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인문 교육의 중요성을 외치는 시대지만, 정작 우리 고유의 인문학은 소수의 관심에 의존해 명맥을 잇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물어 볼 일이다. 가을날, 동양 고전의 향취에 흠뻑 취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동래향교 유교 아카데미'를 소개한다.

■길 위에서도 옥편 뒤적이는 열정

'맹자' 강좌 교재를 보고 있는 수강생. 김경현 기자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자리한 동래향교 부설 평생교육원. 이 교육원은 부산유림회관 2층에 있다.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40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예를 올린다. 공자를 모신 사당을 향하는 문묘향배(文廟向拜)다. 이어서 서로 공손하게 인사하는 읍례(揖禮)를 하고 나서야 모두 자리에 앉는다. 
'맹자' 강좌 강의를 하는 유영옥 동아대 연구교수. 김경현 기자
그렇게 시작한 유영옥 동아대 연구 교수의 '맹자' 강좌는 예정 시간을 넘어서도 계속된다. 수강생들이 한목소리로 음독하고, 강사가 그에 대해 해석을 하면서 추가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중간마다 고사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면서 고전 공부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이날은 왕도 정치에 대해 공부할 차례다. 민생 안정과 인간 교육, 각자의 역할 분담이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강의 내용이 관심을 끈다. 동래의 여러 유학자가 남명 조식 선생의 철학에 맥이 닿아있다는 얘기가 불현듯 떠오른다. 남명은 학문과 삶의 일치, 민본사상, 위민정치를 평생토록 강조한 조선의 유학자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도 한눈파는 사람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학습열이 뜨겁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길 위에서 작은 옥편을 뒤적이는 한 참가자의 모습에서 그 열정을 다시 확인한다.

■살아있는 교육기관, 동래향교

그 시간에 지하 강의실에선 박승록 서예가가 진행하는 서예 수업이 한창이다. 약 20명의 수강생이 붓 한 획 한 획에 온 정성을 기울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조차 미안해지는 분위기다. 두 강좌 수강생들은 대체로 나이가 지긋하지만, 젊은 주부들도 자주 눈에 띈다. 평생교육원 과정에 참여한 재가 수업 청소년 형제가 부모에게 권해 가족 모두가 함께 강의를 듣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수업들이 일주일 내내 빼곡히 마련돼 있다. 월요일에는 명심보감, 화요일에는 대학 중용, 수요일에는 주역, 목요일에는 맹자와 서예, 금요일에는 논어 강좌가 진행 중이다.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오까지. 이 유교 아카데미반은 2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하며, 8월 한 달은 휴강이다. 강사진은 관련 분야를 전공한 전·현직 교수와 서당 운영자, 재야 권위자들로 구성돼 있다.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자리한 동래 향교의 모습은 고풍스럽다. 그 자태에 취해 평생교육원이 운영되는 왼쪽 흰색 건물은 눈에 안 들어올 수 있다. 별개 건물로도 인식하기 쉽다. 예절을 강조하는 유교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느낌에 선뜻 평생교육원을 방문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향교를 옛 유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런 인식을 하기 쉽다.

이에 향교 측은 지금도 활발하게 살아있는 교육기관으로 기능하는 향교임을 강조한다. 송명우 평생교육원장은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향교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산 유교 문화 체험 행사 성황

아울러 동래향교가 올해 처음 시행한 '유교 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성황을 이뤘다. 이 행사는 부산의 유교 문화 흔적을 탐방하고, 전통음식과 문화를 맛보는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한 인물과 그들의 유적을 찾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일본군을 막아 공을 세운 첨사 김정서 장군의 혼이 어린 금정구 선동 하정마을과 함께 강릉 김씨 충순파 사당인 상현사가 체험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다.

금정구 회동동에 있는 여산 송씨의 사당 세덕사, 경주 김씨의 재실인 동천단과 동천재, 임진왜란 때 순절한 남원 양씨 일문 세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반송 삼절사 등도 찾는다.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다대진으로 쳐들어온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윤흥신 첨사를 모신 석단인 윤공단(尹公壇), 조선군과 일본군의 첫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충장공 정발 장군과 그를 따라 순절한 군민을 모신 정공단(鄭公壇) 참배도 빠질 수 없는 코스다.

저녁에는 시조창과 가곡창, 대금 공연이 있고, 전통 다과를 즐긴다. 향교 측은 올해 5회에 그친 행사 횟수를 내년에 더 늘릴 계획이다. 반응이 좋아 내년 행사를 기약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향교는 유림, 초·중·고 학생, 직장인,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향교 스테이를 운영 중이다. 박태현 전교는 "부산에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보여줄 기회를 자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051-556-0235.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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