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워지는 꿈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수능이 낼모레다. 십수 년을 준비해 온 실력이 판가름 나는 날이다. 실수를 최소화하고 닦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수험생을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깝고 착잡할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에만 밤낮없이 매달려 온 학생들의 노고가 너무나 안쓰러운 탓이다. 도대체 대학이 뭐길래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는 걸까. 그것이 과연 재기발랄한 우리 아이의 황금 같은 어린 시절과 맞바꿀 만한 걸까.
여전히 명문대 인기학과에 들어가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는 가장 결정적 방편이라는 대다수 학부모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엘리트와 대다수 대중을 구별 짓는 대학입시의 굴레는 수백 년 전 봉건 왕조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거의 획일적으로 찾는 의대 등의 아성은 명문대의 서열마저 바꿔 놓았다. 성인 전사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마지막 혈투를 준비하는 마사이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이 21세기의 다변화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한다고 떠드는 현대사회의 정상적인 모습일까.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
대학입시 체제로부터 비롯
기득권층-다수 소외층 양분
악순환 고착, 미래마저 암울
교육 패러다임 대전환 절실
모든 교육 주체들이 노력해야
어려서부터 숱한 호기심으로 재잘대는 아이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질문 하나 없이 정답만 읊도록 만드는 교육. 수단과 방법에 상관없이 대학입시의 결과로만 평가받는 교육. 결국은 정답 외우기에 지칠 대로 지친 끝에 들어가게 되는 대학. 다 큰 대학생 자녀를 위해 수강과목을 직접 문의해 오는 학부모. 학비만 내면 무난하게 졸업하는 대학에서 대출학자금을 갚기 위해 취업 스펙 쌓기에 여념 없는 대학생활. 대학을 나오고도 변변한 꿈도 자신도 없이 고시원을 전전해야 하는 젊은이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명문대 의대, 법대로의 진학에 모든 청춘을 걸어야 한다고 훈육하는 기성세대. 현실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 현실 때문에 우리 아이는 성공시켜야 한다는 이 기성세대의 아집은 우리 아버지 세대와 어쩌면 그렇게도 판박이인가.
백약이 무용한 우리나라 교육의 모든 문제는 대학입시로 통한다. 대학입시로 결정된 서열은 소수의 기득권층과 대다수의 소외계층을 만든다. 학벌타파나 백지이력서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에 '올인'하고 있는 교육은 그 자체로 이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오죽하면 선생님인 아버지가 자식의 시험부정에 연루되고, 연구논문에 자식을 저자로 등재시키기에 이르렀겠는가. 경쟁을 통해 부익부 빈익빈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격차는 엄연한 우리의 현주소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 번만 이기면 평생이 보장되는데, 과연 누가 새로운 도전을 하겠는가. 세계적인 경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적어도 우리 사회 안에선 견고한 기득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다.
교육 문제의 핵심이 대학입시에 있다는 현실은, 우리의 미래 또한 암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고착화된 악순환의 고리를 선순환의 구조로 전환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순환의 고리를 탈출하는 방법은, 억지로라도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여기에 많은 이들의 동참을 유도하는 것이다. 세계적 명문대학들이 어김없이 입학보다 졸업을 훨씬 어렵게 하듯이, 우리나라도 대학 본연의 교육을 회복해 입학보다 졸업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 부모가 인생을 스스로 잘 찾아갈 것이라고 아이들을 믿어주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든든한 조언자가 되는 것은 어떨까. 우리 어린 친구들도 대학은 무턱대고 모두가 다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고민에 빠져보면 어떨까.
마차가 앞으로 움직이는 것은, 말이 마차를 끌기 때문이 아니라 말발굽이 지면을 충분한 마찰력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바닥의 미끄러움을 거스르는 치열한 발바닥의 마찰력이 필요하다. 현실의 딜레마에 갇힌 채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우리 교육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결국 교육 주체들의 적극적인 노력밖에 없다. 조그만 촛불 하나하나가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었듯이, 대학과 교육 당국, 학부모, 그리고 아직은 미약하지만 차츰 성숙해지고 있는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교육 주체가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낼모레 모든 수험생의 선전을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층 큰 차원에서 우리 아이들이 대학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진정한 교육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