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한·일 어업협정, 극일(克日)과 포일(包日) 사이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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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경제부 해양수산팀 차장

“한·일어업협정은 단지 어선 감축만이 타결의 쟁점이 아니라 독도를 둘러싼 한·일 중간수역과 관련한 일본의 과도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1년 전 국정감사에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작심한듯 이같이 말했다. 양국 간의 협상이 단순히 우리 어선 몇 척이 들어가면, 일본 어선을 몇 척 받는다는 산술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일본이 협상을 빌미로 대한민국 영역인 독도 주변 한·일 중간수역을 분쟁 지역화하려는 노림수가 엿보이는 상황에서 일본 측의 의도에 순순히 휘말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밑의 복잡미묘한 정치외교적 문제는 차치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협정의 경제성 측면을 따져봤을 때도 일본은 협정이 ‘밑지는 장사’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 하고 있다. 양 측이 마지막으로 상대국 EEZ에 입어했던 2015년 어기 기준으로 일본 해역에서 조업한 한국 어선들이 3만 7395t을 잡아들인 반면, 일본 측 어획고는 3927t에 불과했다. 일본으로서는 아홉 개를 내주고 하나를 취하는 불공정한 협정이라고 여길 만하다.

협상이 어려운 것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거래의 기술’의 저자이기도 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공적인 협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로 ‘힘의 우위’를 꼽았다. 협상에서 범하는 최악의 실책은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드러내 상대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조바심을 낼수록 하나라도 더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불행히도 우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대형선망업계 등은 일본 수역 입어가 중단된 이후 어획고가 급감하면서 줄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쪼그라든 어장을 놓고 조업 경쟁이 격화되고 어족 자원이 줄면서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한해 연근해 어업생산량 100만t이 무너지기도 했다. 대체 어장을 찾아 목숨을 건 원거리 조업에 내몰리면서 선원들의 피로도는 한계까지 치닫고, 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협정 결렬 장기화에 따른 어민들의 원성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급할 것이 없다. 일본은 조업 수역에 한계가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 동쪽 바다나 태평양 등의 대체 어장이 있다. 제주 수역에 입어하던 일본 큐슈지역 대중형선망은 선단 규모를 5척에서 4척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 경쟁력을 갖춘 선단체제로 재편했다. 한국 수역에 입어하지 않더라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기초 체력을 갖춘 셈이다. 결국 우리가 협정에서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일본에 비빌 수 있는 힘과 여건을 갖춰야 한다. 어업 현장에서 느끼는 절박함과는 괴리감이 크지만, 정부가 내년 한·일어업협정 피해 어선에 대해 감척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면 판을 새로 짜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한·일 간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북서태평양 수역은 중국으로서도 중요한 어장이다. 유엔해양법협약은 복수 연안국에 EEZ가 인접하는 경우 자원 보존과 이용을 위해 다자가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 만큼 현재의 판에 중국을 끌어들여 한·중·일 3국이 동북아 수역의 자원을 공동 관리하는 다자간 신 어업질서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명분으로 압박하고, 실리로 유인하는 양면전략이 필요하다. wideneye@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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