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평시 군사법원 꼭 필요한가
공군 여 부사관 성추행 사건으로 사회적 이슈 부각
군이 통치하던 시절 유산으로 인권침해 가능성 커
투명성과 독립성 취약한 현 군 사법체계 개선해야
■6월 중 법 개정안 국회 처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군사법원법 일부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당부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7월 정부가 발의했으나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통령이 독려하고 나서자 그동안 머뭇거리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개정안 처리에 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쟁점도 있지만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에 6월 중으로 협의 가능한 부분까지는 정리해서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지부진하던 군사법원법 개정에 이처럼 다급히 나선 데는 현 군사법원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시스템’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계기는 선임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사건이다. 해당 부사관은 피해를 당한 뒤 곧바로 신고했지만 공군 내부의 회유와 은폐로 조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군사재판에 대한 공정성 시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비단 성범죄뿐만 아니라 일반 범죄에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는 군대 내 사법체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왔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지난 2일 보통군사법원에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휘관의 선의에 기대는 구조
우리나라에서 군사법원 설치는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헌법 110조는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해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그에 따른 현행 군사법원 구조는 1심 법원에 해당하는 보통군사법원과 2심 법원 격인 고등군사법원으로 돼 있다. 고등군사법원은 국방부에 있고, 보통군사법원은 함대나 사단, 공군기능사령부 등 각 군 본부와 장성급 장교가 지휘하는 부대에 설치돼 있다.
군인이나 군에 소속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군사재판을 받게 된다. 최종심은 대법원이 맡지만 1·2심 재판은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모두 군사법원에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군사재판 판결 기록은 전역으로 민간인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군사법원은 대법원이 아닌 국방부 안에 법원이 있는 것이라 인사 등에서 독립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군 검사, 군 판사, 군 국선 변호인 등이 모두 명령 계통의 지휘를 받는다. 일선 부대 지휘관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군 판사나 변호하는 지휘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판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될 수 없다는 지적을 오랫동안 받아 왔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모습. 연합뉴스
■군이 통치하던 시대의 유산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하거나 기능을 대폭 축소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군의 반발에 밀려 무산됐다. 우리나라에서 군사법원은 미 군정 시절 군법회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엔 제대로 된 정부와 사법 체계가 갖춰지기 전이라 재판은 당연히 군사재판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군법회의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오히려 권한이 강화됐다. 1954년 2차 개헌 때는 아예 헌법에 군법회의의 설치 근거가 마련됐고, 1987년 9차 개헌 때는 군사법원으로 격상됐다. 이처럼 군사법원은 미 군정, 한국전쟁, 북한과의 대치라는 특수 상황을 기반으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군사법원이 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줄곧 제기됐다. 남북이 여전히 대치하고 있다고는 해도 국제적인 냉전 체제 해체 이후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이 높은 지금 폐쇄적이고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은 군사법원의 존립 근거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군대가 아무리 특수한 조직이라고는 해도 군인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며, 군 사법체계도 일반 법질서와 동떨어진 성역일 수는 없다는 게 군사법원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다. 중국과의 대치로 한국과 안보 상황이 비슷한 대만의 경우 2013년 군사법원을 폐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장 직무대행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간사가 ‘군사법원법 개정 관련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평시엔 아예 폐지하자!"
문 대통령이 조속한 처리를 강조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군 특유의 폐쇄적 구조를 깨트리자는 취지다. 특히 사건의 입건과 기소, 재판까지 군 사법체계 각 단계에서 부대 지휘관의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뜯어고쳐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우선 각 부대에 설치돼 있는 보통군사법원을 없애고, 대신 국방부 산하에 중앙지역군사법원 등 5개 지역군사법원을 설치해 1심 재판 기능을 부여토록 했다. 통폐합을 통해 부대 단위에서 지휘관의 의도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사건 무마나 봐주기식 판결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고등군사법원도 없애 항소심인 2심을 민간 법원인 서울고법으로 이관토록 했다. 군 판사 외에 비법조인이자 군인 신분의 심판관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도 사실상 폐지토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정안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시라면 몰라도 평시에는 아예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전시·사변·국가비상사태에만 군사법원 관할권을 인정하고, 평시에는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리 조직을 개편해도 상명하복의 군 문화 특성상 군사법원에선 재판의 독립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지난 2일 ‘성범죄자의 도피처인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해 달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랐다. “보수성과 폐쇄성이 짙어서 개선이 힘든 데다가 필요성은 현저히 낮은 평시 군사법원을 꼭 없애 달라”는 요구다. 일각에선 군 사건의 특수성, 전문성을 이유로 군사법원 폐지에 반대하지만, 평시 군사법원 폐지 요구는 점점 더 세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