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하이델베르크 성의 빈 술통 지키는 어릿광대의 슬픔
[유럽 인문학 기행-독일] 하이델베르크 성 그로세스 파스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에는 엄청나게 큰 와인 통이 하나 있다. 높이는 7m, 깊이는 8.5m라고 하는데,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이 술통에는 술을 무척 좋아했던 난장이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본다.
하이델베크 성과 하이델베르크 전경.
■세금으로 바친 와인
1591년 팔라틴 선제후 프리드리히 4세가 하이델베르크를 다스릴 때였다. 열일곱 살이던 그는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스승 바르톨로메오 피티스쿠스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바르톨로메오는 독일 출신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옆자리에는 삼촌인 요한 카시미어 폰 플라츠-시메른이 엄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프리드리히 4세는 8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 루드비히 6세로부터 선제후 자리를 물려받았다. 너무 어린 탓에 삼촌이 대신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4세가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때 세무를 담당하는 관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하, 큰일 났습니다. 와인을 저장할 공간이 없습니다.”
세정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프리드리히 4세와 요한 카시미어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요한 카시미어는 보고서를 꼼꼼히 읽은 뒤 프리드리히 4세에게 무슨 일인지를 설명해주었다. 나중에 성년이 돼 직접 통치를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은 백성들로부터 받은 세금으로 충당합니다. 백성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세금을 현물로 납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는 현물을 팔아 돈으로 바꿔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로세스 파스.
프리드리히 4세는 공부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삼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이델베르크는 기후가 좋아 포도 생산량이 많습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도 많습니다. 세금으로 돈 대신 와인을 바치는 농부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지금 세정관이 올린 보고서는 이런 내용입니다. 올해는 세금으로 들어온 와인이 너무 많아 와인을 보관하기 곤란하게 됐다는 겁니다.”
프리드리히 4세는 그제야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삼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세금으로 들어오는 와인을 한꺼번에 보관할 수 있는 초대형 통을 만들라고 지시하겠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성 지하에 빈 공간이 있으니 그곳에 통을 설치해 와인을 넣어뒀다가 나중에 팔든지, 아니면 궁전 행사에 사용하면 될 겁니다.”
이렇게 해서 하이델베르크 성에는 커다란 와인 저장용 통이 만들어졌다. 통이 늘 와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해에는 비어있기도 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비어있는 해가 더 많았다. 사람들은 와인 통을 ‘커다란 통’이라는 뜻인 ‘그로세스 파스’라고 불렀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영어로는 ‘하이델베르크 툰’이라고 불리게 됐다.
1591년에 만들어진 통은 제조자인 섭정의 이름을 따 ‘요한 카시미어 파스’로 불렸다. 세월이 많이 흐르자 통이 낡아 많은 구멍이 생기는 바람에 새 술통을 만들어야 했다. 1664년에 새로 제작한 통에는 ‘카를 루드비히 파스’, 1728년에 세 번째로 만든 통에는 ‘카를 필립 파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맨 마지막에 만들어진 통은 1776년 ‘카를 테오도르 파스’였다. 지금 하이델베르크 성에 보관돼 있는 와인 통은 바로 이것이다. 카를 테오도르 파스는 참나무 133개로 만들었다고 한다. 용량은 무려 22만L에 이른다.
그로세스 파스를 보러 가는 입구.
■난쟁이 술꾼 페르키오
1718년 두 번째 그로세스 파스, 즉 카를 루드비히 파스가 하이델베르크 성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북부 티롤 주에 살로르노라는 도시에 판케르트라는 사내가 살았다. 본명은 지오반니 클레멘티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왜소증 환자 즉 난쟁이였다. 성격이 아주 활발하고 말을 잘 해 주변 사람들을 늘 즐겁게 해주곤 했다.
단추 만드는 일을 하던 판케르트는 우연히 티롤 주를 관할하는 합스부르크 총독인 카를 3세를 만나게 됐다. 총독도 쾌활한 판케르트를 좋아하게 됐다.
“단추 만드는 일은 그만 두게. 월급을 줄 테니 매일 총독 관사에 오도록 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광대놀이를 해서 우리 가족과 손님들을 즐겁게 만들어주게.”
카를 3세는 수년 뒤 팔라틴 선제후가 돼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판케르트도 하이델베르크로 따라갔다. 그는 식사나 행사 때 술을 따라주는 일을 맡았다. 여러 가지 재주를 부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일도 담당했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보기 힘든 난쟁이가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재담과 어릿광대 놀이를 잘 한다는 소문은 금세 널리 퍼져 나갔다.
판케르트는 술을 매우 좋아했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가 재담을 잘 하거나 어릿광대 놀이를 재미있게 마치면 자리로 데려가 와인을 한 잔씩 부어주곤 했다.
“판케르트, 내 술도 한 잔 받지 않겠나?”
잔을 받을 때마다 그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페르키 노(perché no)?”
페르키 노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나요’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였다. 그가 술을 권유받을 때마다 페르키 노라고 외치는 바람에 사람들은 나중에는 그를 ‘페르키오’라고 부르게 됐다.
페르키오와 거대한 술통.
덩치에 비해 주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페르키오는 술꾼으로 더 유명해졌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20~30L 정도의 와인을 마셨다. 술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아예 술통인 그로세스 파스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됐다. 사람들은 그로세스 파스를 구경하러 성에 놀러가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와인 통 앞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페르키오가 서 있는 게 너무 이색적이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페르키오는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셨지만 80대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그는 와인 말고는 어떤 종류의 액체도 섭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았다. 나이가 많이 든 페르키오는 병에 걸려 침대에 눕게 됐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물약을 마시게 했다. 불행하게도 페르키오는 물약을 마신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페르키오가 죽은 뒤에도 그의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1840년 하이델베르크 성을 방문했던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편지를 쓰기도 했다.
‘모든 것은 쓰러지고, 모든 것은 끝나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이 어릿광대만 제외하고. 그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그곳에 서서 호흡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 봐! 나 여기 있어. 그는 푸른색 코트와 부푼 조끼를 입고, 반은 푸르고 반은 빨간색인 광인의 가발을 쓰고 있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고는 서라고 한다. 소매를 잡아끌면서 멍청한 풍자 글을 보여주고 눈앞에서 깔깔 웃는다. 하이델베르그 성에서 가장 우울하고 서글픈 일은 이미 죽고 사라진 왕자와 왕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어릿광대다.(중략) 버려진 하이델베르크 성의 빈 술통 옆에서 우리는 이 불쌍한 어릿광대를 생각한다.’
페르키오.
■프랑스 병사들의 손도끼 만행
19세기 초 프랑스대혁명 이후 황제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을 침공했다. 하이델베르크를 점령한 병사들은 서둘러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갔다.
“성 지하에 엄청나게 큰 와인 통이 있다더군. 한 달 내내 퍼부어도 다 못 마실 정도의 양이라 하더라고. 오늘은 거기서 밤새 와인을 마시며 축제를 벌이도록 하세.”
하이델베르크 성에 간 프랑스 병사들은 그로세스 파스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와인 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희희낙락했다. 도대체 얼마나 퍼마셔야 통에 든 술을 다 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병사들은 통에 달린 꼭지를 돌리지 않고 손도끼로 통 아랫부분을 찍었다. 그때 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술이 가득 차 있다면 소리가 안 나거나 아주 둔탁한 소리가 나야 했는데, 실제로는 빈 것처럼 아주 경쾌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티~~이~~잉.”
이상한 생각이 든 장교가 통의 꼭지를 돌려보았다. 그런데 꼭지에서는 와인이 콸콸 흐르기는커녕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왜 술이 한 방울도 안 나오는 거야?”
프랑스 병사들이 그로세스 파스로 몰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성의 관리인이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통이 항상 와인으로 가득 차 있는 건 아니랍니다. 옛날에는 세금 대신 받은 와인으로 술통이 넘쳐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세금을 돈으로 내기 때문에 술통에 와인이 차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관리인의 이야기를 들은 프랑스 병사들은 허탈해졌다. 다른 병사들에게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부 병사들은 화를 내기도 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힘이 들어 죽겠는데, 와인이 한 방울도 없다고! 그냥 내려가면 너무 화가 날 거야. 술통을 부수고 가자!”
거대한 술통을 바라보는 페르키오.
프랑스군 장교는 그들을 뜯어말렸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나? 황제께서도 다른 나라의 문화재나 유물을 부수는 일은 삼가라고 지시하지 않으셨나? 게다가 저 통은 워낙 크고 두꺼워서 부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그런 일에 힘을 빼느니 서둘러 성에서 내려가 시내 술집에서 진탕 마시는 게 낫지 않겠는가?”
병사들은 장교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통을 부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려면 여러 명이 달려들어 여러 시간 동안 힘을 써야했다. 화가 잔뜩 났지만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 그들은 그로세스 파스 앞에 서 있는 페르케노 인형에게 욕만 실컷 퍼붓고는 성 밑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덕분에 그로세스 파스는 가까스로 파손을 면하게 됐다. 지금도 하이델베르크 성 안의 그로세스 파스를 살펴보면 프랑스 병사들이 남겨 놓은 손도끼 자국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