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대학에 우수 인재 뺏길 수 없다" 집단 기싸움
대학들 '선택형 수능 입시요강 변경' 요구 왜?
지난 3월, 서울 지역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예체능계열의 A, B형 변경문제와 최저학력기준 완화 등을 이유로 40여 개 대학이 무더기로 대교협에 심의신청서를 제출했다. 학생들의 선택권이 다소 넓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대학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변경에 나서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바로 '우수 인재' 확보다. 경쟁 대학에 우수 인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일종의 '기싸움'인 셈이다.
"학업 부담 줄인다" 취지 무색
대학·학생 간 서열화 되레 조장
일부 대학 예체능계 B형 지정
실기 병행 학생들 부담 가중
영어 A·B형 통합 혼란 최소화
개정교육과정 전면 수정 주장도
■ "우리만 뒤처질 수는 없어"
수준별 수능에 대한 불확실성의 중심에는 영어가 있다. 유형별 선택 규모를 예측할 수 있는 국어, 수학과는 달리 영어는 유형별 선택 규모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지난 3월 모의평가 등을 놓고 보면 대략 A, B형의 선택 비율은 2 대 8 정도지만 이같은 비율이 실제 수능에서 유지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형별로 얼마나 많은 수험생이 몰리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다보니 상위권 학생들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 하위권 학생들이 A형을 대거 선택하게 되면 B형에서 1등급을 받는 학생 수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그야말로 핵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시모집 비중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지난해 수준으로 최저학력기준을 설정했을 경우 자칫 우수 인재를 제대로 뽑지 못할 우려가 있다. 대학 입장에서는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하거나 폐지해 수험생의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가산점도 마찬가지. 부산지역은 대략 10~20%수준인데, 이는 A, B형에 대한 각각의 지원 비중에 따라 당락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A형이 유리할 수도 있다. 부경대 박진한 입학관리본부장은 "최저학력기준과 마찬가지로 가산점 역시 어느 정도 부여되느냐에 따라 우수 학생 지원율 및 합격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슷한 수준의 경쟁관계에 있는 대학들 간 눈치작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 대학도, 학생도 오히려 서열화
수준별 수능은 경쟁 대학간 눈치보기의 주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대학간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거센 비판도 받고 있다. 실제로 국·수·영에서 2개 영역 이상 B형을 택하는 대학 40여 곳 중 상당수는 기존 상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일부 대학은 대학 인지도와 수준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B형을 선택하기도 한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A형을 선택했다는 얘기는 상위권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는 방증이다. 수능을 치기도 전에 열등생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꼴이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인다는 게 수준별 수능의 본래 취지인데,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예체능계열 학생들은 오히려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은 1~2개 영역을 B형으로 고정하면서 실기 시험과 어려운 B형 준비를 병행하도록 하고 있다. A형만 선택하게 했던 대학들이 이번 심의에서 교차지원 허용 변경안을 제출하기는 했지만 가산점 부여는 불허한다는 대교협 방침에 따라 B형 선택에 따른 별도의 가산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택권은 넓어졌지만 B형을 선택해 다소 낮은 등급을 받게 되면 교차지원 허용 대학 지원이 별 의미가 없다.
고 3인 김 모 군은 "B형 선택 대학을 고집하다가는 A형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 밀릴 가능성이 높아 고민된다"고 털어놨다. 용인고 황선원 3학년 부장교사는 "입시 제도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고 인생진로가 바뀌어서는 안되는데, 이번 입시에서는 이같은 일이 비일비재할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 대안은 없나
말 많고 탈 많은 수준별 수능, 개선책은 없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가장 논란이 되는 영어 A, B형을 통합해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A형은 영어와 영어I, B형은 영어II와 영어독해 및 작문 식으로 범위가 정해져있기는 하지만 국어·수학과 달리 범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통합의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부산시교육청 진로진학팀 김영원 장학사는 "선택학습이라는 2009 개정교육과정 취지에 맞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영어 영역 범위를 조정해 통합할 수 있다면 선택에 따른 불이익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2009 개정교육과정 자체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학생과 학교의 부담을 줄이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선택학습이 도입됐지만 학업 부담은 더욱 커지고 학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김재원 부산진학협의회장(대동고 교사)은 "A, B형 선택에 따라 대학 합격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며 "수준별 수능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정교육과정을 점검, 보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달식·윤여진 기자 edu@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