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부산항 스토리 입히면 '세계유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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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양식으로 1911년 지어진 옛 부산세관 건물은 1979년 6월 부두로 확장공사로 헐리고 만다. 허물어버린 건축물은 기억 속에서도 잊혔다. 부산일보DB

"역사와 이야기가 함께 숨 쉬게 하는 것이 부산과 부산항이 나아갈 길입니다."

2002년 11월, 중년 미국인이 낡은 흑백 사진 한 장을 들고 부산세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진 속 미군 뒤에 있는 옛 부산세관 건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피란수도 세계유산 등재 목적
부산시·부발연 '포럼' 시동

'6·25전쟁과 부산항' 주제로
동아대 석당박물관서 열려

오는 10월까지 9차례 개최


한국전에 참전한 그의 아버지는 미군에 징발된 세관 건물에서 근무하다, 청사를 반환한 뒤인 1956년 그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197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늘 아버지의 빈 자리를 그리워하다 30년 가까이 지나서야 그 흔적을 찾아 태평양을 건넌 그는 옛 세관 건물이 이미 오래전 헐렸다는 소식에 크게 낙담했다.

이용득 부산세관 박물관장은 "그가 현장을 찾은 목적은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공간을 찾아보는 것이었는데, 건물이 사라진 곳에는 역사도 꿈도 추억도 없었다"고 말했다.

피란수도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하는 데 필요한 학술적 근거 마련을 위해 부산시와 부산발전연구원이 '피란수도 세계유산 포럼'을 가동한다.

그 첫 포럼이 28일 오후 3시 동아대 부민캠퍼스 석당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열리고, 이후 오는 10월까지 9차례 계속된다.

'6·25전쟁과 부산항'을 주제로 열린 첫 포럼에서 이용득 관장은 '6·25전쟁과 부산항 이야기'를, 배석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가 '6·25전쟁과 부산항의 역할'을 발제한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징병·위안부 동원, 그리고 수탈의 상징이었던 부산항, 1960, 70년대 한국 경제 중흥을 이끈 동남권 공업 단지 조성과 세계 무역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 데에는 6·25 한국전쟁 시기 부산항의 크고 작은 역할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피란수도 포럼은 좀 더 미시적으로 부산항이 피란수도 부산의 결정적 공간요소라고 본다.

배석만 교수는 1950년대 부산항에 대한 연구를 정부·공공기관과 학계 연구로 구분해 각 연구 내용을 살펴본 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관련 연구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1911년 지어진 옛 부산세관 건물은 1979년 6월 부두로 확장공사로 헐리고 만다. 허물어버린 건축물은 기억 속에서도 잊혔다. 부산일보DB
배 교수는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침략과 수탈의 부산항이 미국 원조물자와 군수기지 역할을 거쳐 1960년대 무역항으로 발전해 나가기까지 해방 후 부산항의 재편과 위상·성격 규정 △부산항의 변화상에 따른 지역 사회경제, 문화, 생활상에 대한 역사적 접근 △국내외 공문서 자료 수집 및 초창기 부산항과 관련 있는 인물 녹취, 개인 소장자료 수집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용득 관장은 1950년대 부산항과 관련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역사적 사실들을 소개하며 부산항의 역사가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관장은 "전란 중 최후의 보루였고, 전후 경제 최일선 물류산업 도시로 역할을 한 도시가 부산이었고 부산항이 있었기에 그 역할이 가능했다"며 "이런 가치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 부산의 정체성을 살리는 길이자, 역사와 이야기가 공존하는 복합역사문화관광도시가 되는 길이며, 역사성이 있는 기존 시설을 살리며 피란 이야기를 입혀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문의 051-860-8769.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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