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터널’ 갇힌 한국경제…불확실성 고조로 ‘골든타임’에 직격탄
내수부진 심화 속 실물경제 타격 불가피
불확실성 장기화에 금융시장 리스크 증폭
정상급 경제외교 '올스톱'·예산안 ‘시계 제로’
수출악재·소비위축…자영업자·소상공인 타격
전문가들 "경제에 여야 없다는 메시지 내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집단 불참에 따른 의결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면서, 가뜩이나 저성장과 내수부진에 고전하며 트럼프발 충격에 긴장하던 한국 경제가 '탄핵 정국'이란 어두운 터널에 갇힌 형국이다.
과거 노무현·박근혜 정부 탄핵정국 때보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더욱 엄중하고 취약하다는 점에서 이번 탄핵 정국에 따른 경제적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탄핵 정국’으로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장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국내외 투자자들의 한국 증시 이탈이 가속화하며, 원/달러 환율은 크게 요동칠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속되는 일련의 혼란이 오랜 내수 부진에 신음하는 한국 경제에 '설상가상'과 같은 악재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계엄·탄핵정국이 부른 대외 신인도 타격이 금융시장 불안, 투자 감소로 이어지며 한국 경제가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과 성장률 눈높이를 잇달아 끌어내리고 있다.
8일 경제당국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사실상 2선으로 후퇴하면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 '비상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돼서 각종 필수적인 경제정책 현안을 챙기고 위기관리에 주력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기존 정책 기조를 변경하는 굵직한 의사결정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체로 입법 또는 예산과 맞물린 정책보다는 임시 위기 대응을 최우선 순위를 두고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탄핵 정국 전개 상황에 따라 중장기적인 정책 로드맵 뿐만 아니라 내년도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급선무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 감액예산안 의결을 강행하면서 여야 협상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일각에서 준예산 시나리오를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준예산은 직전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해 전년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이다.
경제적 혼돈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면서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어려움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탄핵정국에서도 내수 소비가 고꾸라지면서 직접적인 후폭풍을 맞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탄핵정국'이 시작된 2016년 10월부터 소비 지표는 낮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2016년 4분기 소매판매액(불변) 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1분기(4.7%), 2분기(5.5%), 3분기(3.2%)에서 큰 폭으로 둔화한 것이다.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되면서 소비 지표는 더 꺾였다. 2017년 1~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대 증가율로 추락했다. 2016년 3%대를 유지했던 국내총생산(GDP) 민간소비 증가율도 탄핵정국에 들어선 4분기부터 1%대로 떨어졌다.
2004년 3∼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부터 기각까지 기간에도 소비심리는 위축됐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04년 1분기(-0.5%)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4분기에 들어서면서 1%대를 회복했다.
무엇보다 내년 초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제외교가 사실상 중단될 상황에 관한 우려가 나온다. 우리로서는 트럼프 2기에 대응할 연말·연초 골든타임을 '계엄사태 후폭풍'에 날리게 되는 결과가 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련된 핵심 의제들은 대부분 정상급 외교에서 조율된다는 점에서, 탄핵정국 장기화는 향후 한국경제에 깊은 주름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 역시 초비상이다. '트럼프 리스크'에 투자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중에 탄핵정국까지 더해지면서 설상가상에 놓인 형국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13∼25일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가량은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했거나 계획이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안동현 교수는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대내적 불확실성까지 얹힌 것"이라며 "우리 수출기업들이 교역조건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에 따른 리더십 공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제부총리 중심의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고 경제 관료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또 정치권에서도 “경제에는 여야가 없다”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야당 역시 탄핵 정국에서도 시급한 민생 현안에는 협조해 국회의 정책 심의가 공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럴수록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와 같은 경제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가동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F4 회의에는 부총리 외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