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신춘문예-단편소설] 여기서 누군가 / 윤현준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그 테니스장에서는 강이 내려다보였는데, 강은 초록. 다른 무엇도 아닌 초록색이다. 여름이 오면 수많은 제트 스키가 수면을 가르며 흰 물보라를 만들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강 위로 던져지는 사람들. 자맥질하는 머리들. 끊이지 않는 비명들. 깊다 못해…… 우거진. 수림처럼 보이는 강에 몸을 맡기는 일. 나는 그것이 굉장히 위험해 보였으나,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었다.
아버지가 관리인으로 일하는 테니스장은 아버지의 오랜 친구가 소유한 것으로, 다섯 개의 클레이코트가 있는 큰 규모의 테니스장이었다. 외진 곳에 있고 철저한 예약제로 관리되어 고위 관료나 기업인, 가끔은 연예인들까지 즐겨 찾았는데, 아버지는 그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공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사생활을 예약 받거나 거절할 수 있으며, 때로는 취소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세상과 연결된 방식과는 다른 어떤 긴밀함을 갖게 된다는 것.
아버지는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비밀스러운 카페, 아는 사람만 찾는 오골계 가게, 지인이 운영하는 무인 모텔 같은 것들이 주된 주제였다. 한 번은 어느 배우가 내연 관계의 여자와 함께 아버지가 추천한 무인 펜션을 다녀온 후, 정보의 답례로 값비싼 빈티지 와인을 선물한 일이 있었다. 배우는 와인을 건네며 그곳의 무인 시스템은 정말 완벽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그 와인을 아직도 마시지 않았는데, 나는 그 와인. 어떻게 읽는지도 모를 그 한 병짜리 체면이 끝내 내게도 전해질지 궁금했다.
테니스장의 관리인을 맡기 전, 아버지는 25년간 학원을 운영했다. 지역 내에서는 유명한 학원으로, 계절을 가리지 않고 5층짜리 건물에 학생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학원은 코로나를 지나며 위태로운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하락세만 타다가 재기를 노릴 틈도 없이 폐업이 결정되었다. 학원의 폐업 이후 아버지는 선생님으로 불리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에 아버지의 제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자주 마주쳤으나, 그들은 길에서 아버지를 마주칠 때마다 호칭을 고민하다 끝내 호칭을 생략하곤 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굳이 학원의 상태에 관해 해명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늦은 오후, 스타벅스에서 어느 여자를 마주친 이후로 아버지는 아예 외출을 멈추었다. 그 여자는 아버지가 이십 년도 전에 가르쳤던 제자로, 아버지의 제자 중 가장 먼저 부모가 된 사람이라고 했다. 여자는 아버지의 앞에서 그녀의 아이에게 엄마의 선생님이니 인사하라며 머리통을 눌렀다. 아이는 여자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걷어내며 우리 학교 선생님이야? 물었는데 여자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굉장히 곤란해 보였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시 외곽의 테니스장 관리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로는 친구의 부탁이었다고 했으나, 나는 아버지가 보낸 ‘오랜만이다….’로 시작되는 간곡한 문자 메시지를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윳돈이 필요했다. 곧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코로나 이후 일이 끊긴 상태였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취직과 동시에 숨통이 트였다. 아버지의 급여가 대단한 것도 아버지가 숨겨둔 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마침 아버지의 친구가 테니스장 빈 부지에 휴게 공간을 지을 업체를 물색 중이었다. 그 자리에 아버지가 넌지시 나를 추천했고, 별도의 검증 없이 그는 내게 공사를 맡겼다. 그는 잘 부탁한다는 문자와 동시에 계약금을 입금했다. 나는 그 돈으로 산후조리원 기간을 일주일에서 삼 주로 늘렸고 산후 보약을 예약했다. 아내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으나, 조금 비장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기뻐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언제 어디서든 변수가 생길 것 같았고, 예전과 달리 우리에게는 변수를 감내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휘어지기만 했으니까. 어중간한 바위에 물길이 갈라지는 시냇물처럼.
그날은 어느 테니스 동호회에서 테니스장 전체를 통째로 예약한 날이었다. 줄지어 들어온 고급 세단에서 내린 이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고급품으로 알려진 V사의 테니스 장비를 걸치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에도 몸짓과 말투에서는 각양각색의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는데, 나는 그들 모두가 어딘가 엄숙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테니스를 치기 전, 그들은 아버지에게 테니스장의 안내를 부탁했다. 아버지는 그들을 이끌고 테니스장 주위를 돌며 최신 시설과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이곳의 특별함을 설명했다. 그들은 별 반응이 없다가, 주차장 앞쪽 작은 오솔길을 따라 강가에 도착했을 때가 되어서야 감탄했다.
어리고 젊은 사람들은 수면을 가로지르는 제트 스키와 둥둥 떠밀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중년의 남자 하나는 여기 낚시할 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왔다. 그중 얼굴 대부분을 E사의 고급 스카프로 감춘 남자가 강의 한가운데를 응시하며 눈을 끔뻑였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버지가 그에게 다가가 기록되지 않은 강의 비사를 떠들기 시작하자, 늙은 남자는 스카프를 매만지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 이따금 까딱거리는 고개…… 그런 걸 보며 나는 그가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버지보다 더 많이. 강가의 레저 시설에는 사람이 바글거렸다. 미끄럼틀을 통해 강으로 던져지는 사람들은 모두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 발짝 물러서 그들과 강과 숲을 한눈에 담았다. 저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곳을 기억할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놀랍도록 테니스에 능숙했다. 특히 중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장 어렸지만 아무도 그 아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직 사춘기를 겪지 않은 것인지 눈빛은 흔들림 없고, 피부는 부드러웠으며 투명한 살갗 아래로 핏줄이 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근육은 아직 크게 발달하지 않아 팔다리만 놓고 보면 남자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만. 사고 없이 시간만 흐른다면 저 아이는 관리된 몸을 갖겠지. 균형 있게 근육을 발달시키고 올바른 자세로 걷겠지. 테니스 실력은 특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하겠지. 그러나 저 아이는 테니스를 자신의 특기라고 밝히지 않을 것이다. 자라면서 갖게 될 수많은 취미 중 하나. 누군가의 특기를 취미 삼을 수 있는 삶. 온몸에 피와 함께 여유와 기품이 순환하는 삶. 그것이 저 아이에게 준비된 삶이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며 곧 태어날 내 아이에게는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고급 분유, 두세 벌의 아기 옷, 오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모빌…… 갑작스러운 준비만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테니스장 전체에 그늘이 길게 드리웠다. 풀 냄새가 섞인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높은 곳에서 온 바람이었다. 인부들은 대리석 사이에 희고 끈끈한 접착제를 흘려 넣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휴식을 알렸다. 그들은 그늘에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고, 나는 그들이 없는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과 강을 따라 펼쳐진 도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하류의 댐에서 방류를 시작했다는데, 어쩐지 수위가 조금 낮아진 것 같기도 했다. 이 강 아래에 수몰 지구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댐을 지으며 마을 하나가 잠겼다고. 멀리서 미세한 배기음이 들려왔다. 도로를 따라 광이 나지 않는 검은색 스포츠세단 한 대가 빠르게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차에서 내린 남자 역시도 V사의 테니스 장비를 온몸에 걸치고 있었다. 여유롭고 기품이 넘치는 남자였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폭이 넓고 몸통이 두꺼운 체형 탓에 은퇴한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테니스를 치던 아이는 그를 아빠라고 불렀고, 다른 이들은 그를 염 회장 혹은 큰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들은 단순한 동호회가 아니라 피를 공유하는 가족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들이 피로 이어졌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그들이 서로에게 너무 엄숙했고 엄숙한 만큼 미묘한 거리를 두고 있던 탓이었다. 염 회장은 자신보다 늙은 사람들이 넉살을 부리며 회장님, 하고 부르는 일에 익숙해 보였다. 그는 먼저 와 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곤 곧바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회장다운 실력이었다.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재능 넘치는 아이에게 약간의 우세를 점할 수 있을 정도. 그들은 점수를 잃거나 딸 때마다 대화를 나누었다. 방금 정말 좋은 코스였다, 이러다가 정말 추월 당할지도 모르겠다. 같은.
그들은 시종일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옅고 얕게 웃었다. 나는 잠시 아버지와 저런 식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기억에 없는 것 같아 시도해 볼까 하다가 ‘저런 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그만두기로 했다.
아버지는 그들이 빌린 시간에서 삼십 분 정도 여유를 두고 예약 시간의 종료를 알렸다. 그들은 예약 시간에 맞추어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도 훼손된 코트도 없었다. 염 회장은 아버지에게 좋은 테니스장입니다,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은 눈을 오래 맞춘 후에 매우 놀라며 잡고 있던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영문을 몰라 아버지 곁에 어색하게 서자, 회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네요.
정말…… 선생님이랑 꼭 닮았네요.
남자는 아버지의 옛 제자. 그것도 첫 제자로, 어릴 적부터 성적도 성격도 우수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원에 다녔고 서울대에 합격했으므로 학원이 입시 명문으로 입소문을 타는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남자는 연락이 끊겼지만, 아버지는 남자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덧붙이며 그의 손을 꾹 쥐었다. 남자는 동호회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그의 스승으로 소개했다. 아버지는 그들과 차례로 악수하며 다음 예약 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 편의를 봐주겠다 떠들었다. 그러자 남자가 혹시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예약이 있는지 물어왔다. 아버지는 그 시간엔 예약이 있지만 잘 조정해 볼 테니 걱정 말라, 샘만 믿어. 했는데 아이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무슨 선생님이었던 거예요?
나는 아버지가 가르쳤던 과목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국어, 사회, 수학…… 아니 어쩌면 역사도.
아하.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아이는 스포츠 세단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몸을 집어넣었다.
아하. 나는 그 아하, 의 뜻을 알고 있다.
와이프와는 6년을 연애했다. 스물셋부터 스물아홉. 크게 싸운 적도 이별의 위기도 없었다. 미적지근한 사랑이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런 종류의 사랑이었다. 서로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입을 다물고 햇볕을 쬐는 사이.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을 행복의 범주로 여기는 사이. 나는 연애 내내 막연히 그녀와 결혼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리라 믿었다. 부부가 된 우리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니까. 어느 날 결혼 이후 무언가 특별히 바뀔지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좋았다. 그냥 이대로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테이블에 끈적한 유분기가 남아 있는 사천 요릿집이었다. 그녀는 빨간 국물에 채소를 던져 넣으며 연신 땀을 닦았다. 선풍기 방향 탓에 대부분의 수증기가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푹 익힌 채소처럼 늘어지면서도 집게를 놓지 않았다. 그녀의 오랜 버릇이었다. 가위나 칼 혹은 집게. 심지어는 젓가락까지. 테이블 위에 있다면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것이 배려인 줄로만 알았다. 사랑에서 비롯된 상냥함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녀는 한참 동안 채소와 고기를 넣었다 건지기를 반복하며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동생이 아프다고. 사고는 아니고, 그냥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어릴 적부터 동생을 돌봐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헌신이나 애정 같은 건 아니고, 그 애가 그렇게 태어났듯 나 역시 이렇게 살 운명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지 말자고. 할 수 없다고. 수증기 탓인지 그녀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허벅지에 있는 흉터도 동생이 식사 중에 난동 부리는 것을 제압하다 남았다고 덧붙인 그녀는 담담하다 못해 대담한 표정이었는데,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했는지도 몰랐다.
누가 내 문제까지 책임지게 되는 게 싫어…….
아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더 아하, 한 뒤 그녀가 떠준 채소와 고기를 남김없이 먹었다.
공교롭게도 일주일 뒤, 그녀의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내구도로 유명한 B사의 덤프 트럭이었다. 명성대로 운전하던 이는 무사했고, 동생은 즉사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고 했다. 장례는 간소하게 치렀다. 그녀는 동생의 사망 신고서를 제출하고 돌아와 내게 청혼했다.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였고 그날따라 커피 향이 깊었다. 그해가 지나기 전, 비로소 우리는 결혼했다. 그 애의 죽음으로 우리가 비로소 결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고마웠고, 당시에는 그게 끔찍한 마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으로는 쓰촨을 택했다. 아내가 맵고 화한 것을 먹고 싶어 했다. 매운 건 한국에도 많지 않나? 묻자 아내는 먼 곳에서 매운 게 먹고 싶다고 답했다. 나는 중국행 비행기에서 문득 장례를 치를 때 절을 했던가, 떠올렸고 아무래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신혼여행 내내 우리는 즐거웠다.
아버지가 남자의 편의를 봐주기 시작하며, 둘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남자는 항상 예약이 몰리는 토요일 오후 시간대를 원했고, 아버지는 다른 누구보다 남자의 예약을 우선시했다. 아버지의 친구가 안식년을 맞아 긴 여행을 떠났기에 가능한 월권이었다. 너도 이런저런 핑계 대고 공사 연장해라. 겨울 지나서야 돌아올 거야. 벌써 다음 달이면 산달이 아니냐. 이미 공사는 준공 검사까지 마쳤고, 준공식만 남겨둔 상황이었기에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자꾸만 변수가 생겼다. 차가 고장 났고, 직원 하나가 퇴사 의사를 밝혔다. 빠져나가야 할 돈을 셈하려 앉았다 공사 연장을 위한 핑계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마음을 고치니 이후는 순식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강. 그 강을 핑계로 배수를 문제 삼아 공사 연장과 그에 따른 추가금을 안내했다. 그는 그렇습니까, 하고는 안내한 추가금을 입금하겠다고 답신했다.
토요일 밤이면 아버지와 동호회 사람들은 테니스장 구석에 조성된 평상에 모여 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다. 그들은 히비끼니 맥켈란이니 사람 같은 이름의 술을 마시며 아버지를 선생님, 하고 불렀다. 그들이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을 때 아이는 내 곁을 맴돌았다. 휴게실 인근을 벗어나지 않던 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었다. 술은 왜 먹는 건가요, 아저씨는 왜 같이 먹지 않나요. 나는 웬만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어른들이 먹고 마시는 그 시간 동안 혼자 코트에서 서브를 연습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궤적의 스윙. 높고 깊은 곳에서 쏘아지는 형광 테니스공. 나는 그걸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이는 누가 보지 않아도 일정한 자세로 라켓을 크게 휘둘렀다. 그렇게 이백 번쯤, 아이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아이는 코트에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팍이 땀에 젖은 채 들썩였다. 나는 아버지의 집무실에 비치된 구급상자를 열고 소독제와 거즈, 연고를 챙겨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무릎에서 피가 흘렀다. 큰 상처는 아니었으나, 방치한다면 흉터로 남을 법했다. 아이는 누운 채로 어른들이 모인 방향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이의 곁에 쪼그려 앉아 상처에 소독약을 흘렸다. 상처에서 흰 거품이 부풀었다. 거즈로 거품을 닦아낸 뒤 면봉으로 연고를 발랐다. 상처 재생에 좋다는 밴드를 골라 아이의 무릎에 붙일 차례였는데, 어느새 다가온 아버지가 어깨를 잡았다. 먹고 마시던 어른들의 시선이 가지런히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밴드를 빼앗아 아이에게 건네고는, 나를 조용히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피가 묻었냐?
네?
네 손에 피가 묻었느냐고.
만약 묻었다면…….
병원에 가야 한다.
당장.
그게 아주 비위생적인…… 아니 아주 불온한…… 피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손에 소독약 한 병을 통째로 들이부었다. 아무런 거품도 일지 않았지만, 괜스레 화끈거렸다.
계기판에 여러 경고등이 표시되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에서 과속 중임을 알리는 경보가 시끄럽게 울렸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속도를 올리자 불안정한 배기음이 진동했다. 병원까지는 대략 이십 킬로, 예상 시간은 삼십 분 내외.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장모의 연락을 받자마자 출발했으니, 사고나 정체 같은 변수가 아니라면 출산 과정의 대부분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창밖의 강과 산, 그 모든 것을 감싼 물안개가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오늘 날씨는 맑음. 분명 아주 맑음으로 예보되었을 텐데, 안개가 심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유폐된 기분이었다. 도로는 매우 음산했다. 이런 도로 끝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과거나 미래 같은. 이제 없거나 아직 없는 곳들. 물안개 사이로 언뜻 수면이 보였다. 파충류의 비늘처럼 각진 물결이 수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본류의 물길이 변화할 때 저런 무늬가 떠오른다고 아버지가 일러준 적 있었다. 그러고 나면 어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도. 강은 일종의 거대한 뱀처럼 보였다. 나는 그 강이 삼켰던 것에 관해서 들은 적이 있다. 강은 언제나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은 여전히 들은 적 없었으니까.
초록 강 아래 가라앉은 수몰지구는 일종의 감옥으로, 조선 중기 전국의 나병환자들을 모아 격리한 곳이었다. 그곳에 수용된 이들은 외부로의 통행이 불가했으며, 그곳의 일을 기록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었다. 자손을 남기는 것도 제한되었지만,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들이 작정하고 마을 깊숙한 곳에 아이를 숨긴다면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마을 내부에 자리가 없어 외곽을 따라 솟은 무덤을 보며 아무도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걸어 나온 것을 아무도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다. 마을을 관리하던 향리만이 그들을 기억하고 또 기록했는데, 마을의 마지막 향리가 아버지의 증조부, 그러니까 나의 고조부라고 했다.
광복 이후 병에 관한 오해와 함께 그들 역시 해방되었다. 그들은 쉽사리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였다. 그들이 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고조부의 실수였다. 쓰레기를 소각하다 마을에 거주하던 이들의 인명부까지 태워버린 것이다. 고조부가 죽고 마을의 이장이 된 증조부는 밖으로 내몰리게 된 그들에게 염씨 성을 주었다. 증조부의 의지는 아니고, 고조부의 유언이었다. 이들이 밖으로 나갈 때가 된다면, 염씨 성을 주라고. 그리하여 그들이 가족으로 살게 하라고. 그러고 난 뒤엔 염씨 성을 쓰는 이들과는 연을 맺지 말라고.
염炎?
아니 염한다, 할 때 염.
왜요?
모양만 사람이라고.
그들이 떠나고 난 뒤 마을에는 무덤만이 남았다. 염씨 성을 가지게 된 이들은 매년 찾아와 성대한 제사를 치렀다. 나무에 오색 천을 걸고 마을 곳곳에 함부로 묻힌 이들을 땅속에서 건져냈다. 길에서 죽어 길에 묻힌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는 불을 피웠다. 아주 큰불을. 그 제사는 마을이 하류의 댐 탓에 물에 잠기기 전까지 이어졌다. 나무도 불을 피우던 자리도 무덤도 여전히 강 아래에 있다고 했다. 전부.
그러나 그때에는 어쩔 수 없었다.
염 회장만 한 애가 없었어.
아버지는 오래전, 염 회장이 처음 학원에 등록했을 때부터 그가 수몰 지구 염가의 후손임을 알았다. 두 가지 이유였다. 아버지는 수업 시간마다 기록되지 않은 비사나 당신의 기억을 떠들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날의 비사로 그 강. 그 수몰 지구를 택했다.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아이는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으나, 졸거나 졸기 위해 준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염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저거 진짜야.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아버지는 당혹스러웠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업을 마친 뒤, 학원비를 치르러 찾아온 염 회장의 할아버지가 얼굴 대부분을 삼베천으로 감추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짧게 고민한 뒤,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단순한 이유였다. 학원에 다니던 아이 중 염 회장만이 서울대에 갈 만한 아이였다.
병원으로 오는 길에 사고 현장만 두 번을 목격했다. 짙은 안개 속, 반파된 채 도로변에 멈춘 차들은 환각처럼 한순간 나타났다 한순간 사라졌다.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도심으로 들어서기 위해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자,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졌다.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밀려왔다. 고개를 길게 빼어 여러 방향으로 돌리며 스트레칭했다. 아버지의 걱정과 달리 백미러에 간혹 비치는 얼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주름, 햇빛 탓에 까맣게 탄 피부와 처진 눈매. 모든 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하기야 그렇겠지…… 그 병의 유전이나 전염에 관한 것들은 대부분 기형적 외모에서 오는 허구였으니까. 만에 하나 그 아이에게 병균이 유전되었고 그로 인해 내게 전염되었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병은 이미 정복됐으니까.
병원에서는 오래도록 기다려야 했다. 와이프가 참관을 거부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간호사를 통해 그냥 원하지 않는다고만 전해졌다. 무언가 잘려 나간 기분으로 복도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장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의 이름을 받아왔다는 것이었다. 용한 스님에게서 받아온 이름이며, 우리 가족은 모두 여기서 이름을 지어왔다고도 설명했다. 천천히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급할 거 없잖아요. 장모는 잠시 숨을 고르곤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나저나 이름. 이름…….
그 애는 이름이 뭐였지?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 애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이 그 아이의 영정을 넘어서지 못했다. 어딘가 전체적으로 기울어진 인상이라는 것. 가까이 다가가보면 실제로 그렇다는 것. 그것 말고는 그 아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조금 어지러웠고, 머리가 아팠다. 나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꾸만 복도를 통과했다. 나는 그중 한 번도 본 적 없는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혹시…… 장애가 유전되기도 하나요?
병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르죠.
되기도 한다는 말인가요?
나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있는 수술실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곳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두통이 시작되었다.
스무 시간 뒤 마주한 아이는 건강하고 매우 뜨거웠다. 아내 역시 무사했다. 나는 아이의 볼을 건드려보다 와이프에게 참관을 거부한 이유를 물었다. 출산 트라우마를 겪는 남자들도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냥 보여주고 싶지가 않아서. 와이프는 말을 할 때마다 자꾸 기우뚱, 한쪽으로 기울었다. 괜찮아. 잠시 균형을 잃은 거지. 영혼을 떼어낸 기분이야. 나는 무슨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영혼. 영혼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아내가 가볍게 웃은 뒤 대답 없는 내 얼굴을 가볍게 쓸어주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늦은 저녁, 아버지가 염 회장과 함께 찾아왔다. 그의 양손에 과일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모두 산모에게 좋다는 것으로 엄선해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게 저기 있는 석류만 해도 다섯 알에 오만 원이 넘는 고급품이라고 귀띔했다. 아내는 아버지에게 염 회장에 관한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다. 아버지의 설명이 끝난 뒤엔 아내가 그와 대화했다. 의외로 대화가 잘 통하는지 대화가 길어졌다. 아이와 의무. 그 다음은 해방인지 영혼인지 아무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이 있어도 점점 먼 곳으로 밀려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라면 저런 식의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문밖에 서서 내게 손짓했다. 나는 병실을 나서며 몇 번이고 그들을 돌아보았는데 그들은 웃지 않았으나 즐거워 보였다. 웃지도 않고 즐거울 수 있는 건지, 나에게만 보이지 않는 즐거움 같은 게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차 보닛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다. 완강한 자세였다. 아버지가 된 소감이 어떠냐. 아직 실감은 안 나네요. 그러냐. 이런 식의 대화는 처음이었으나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꽤…… 좋았다. 아버지, 부르자 아버지는 눈을 피했다. 몸짓도 부자연스러웠고 자꾸 한숨을 쉬는 게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일부러 크게 웃으며 다시 한번 아버지, 불렀는데 아버지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공사 있지 않느냐.
네?
끝난 거지?
그렇죠. 그런데 왜요?
염 회장이 거기를 쓰고 싶다고 해서.
왜요?
거기서 차례를 지내고 싶다고 하던데. 차례인지 제사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무슨 제사를 거기서…….
때마침 염 회장이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곧장 제사를 그곳에서 지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이유가 상당히 느슨했다. 산세가 주변을 성처럼 감싸고 있고, 강이 가장 크게 휘어지는 자리라는 점, 거기에 더해 입구가 남동쪽을 향하고 있어 영혼이 통행하기에 수월하다는 점. 나는 그런 것이라면 꼭 휴게실이 아니더라도 테니스장의 큰 나무 그늘이나 공터에서 하면 되지 않겠냐 되물었으나,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길에서 죽은 분들을 길에서 달래는 게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어차피 앞으로 사람들 수도 없이 드나들 건데 처음은 의미 있게 쓰는 게 좋지 않겠냐고 계속해서 보챘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주인의 허락 없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가슴을 치며 그깟 고기나 팔아서 돈 번 놈 뭐가 무섭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염 회장은 갑작스레 고사나 차례가 아닌, 제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음식과 제기는 최고급으로 준비할 것이며 제문은 고명한 스님이 직접 쓸 것이라고. 그는 여기까지 말하곤 아 참, 아내 분은 잠들었습니다. 덧붙였다. 그의 제사는 내가 준비할 수 없는 것들로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어쩌면 그의 설명에 있던 빈틈 역시도 준비된 것일지도 몰랐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 빈틈을 통해 제사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그 아이가 떠올랐다. 결혼을 방해했던 아이. 아내가 맵고 화한 음식을 찾게 만든 아이. 죽고 나니 금방 잊힌 아이. 그 아이를 떠올리자 재채기가 나왔다. 가슴이 불편했다. 여유 없이 꼭 맞는 옷을 입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제사에 고급품을 쓰면 그분들이 더 기뻐하시는 건가요?
성의죠. 성의. 가능한 최대의 성의.
염 회장은 옅고 얕게 웃었고 이번에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염 회장의 제사를 수용하는 대신, 준공식을 겸할 수 있도록 돼지머리 하나만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제사가 끝난 뒤에 제기와 제물도 가능하면 사용하게 해 달라고도. 회장은 한참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제주산이 좋겠죠?
제삿날은 길일을 골라 정해졌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서인지 그날은 유독 강에 사람이 많았다. 강을 따라 설치된 갖가지 기구들이 물을 뿜었고 얇은 무지개가 아지랑이를 따라 일렁였다. 염 회장은 제사를 준비하는 도중에도 강을 떠다니는 사람들을 몇 번이고 째려보았으나, 얼굴을 스카프로 감춘 노년의 남자는 그늘에 앉은 내게 다가와 장송곡도 모여 부르는 게 낫겠지요, 하곤 나무에 기대 꾸벅 졸았다. 그의 옥색 한복이 바람결에 살랑댔다. 그를 제외하고 동호회의 사람들은 모두 제사상에 달라붙었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제기에 음식을 쌓고 알아볼 수 없는 한자가 가득한 병풍이 설치되었다. 나는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아버지의 친구에게는 이미 준공식으로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와이프에게는 아이의 영상과 함께 산후조리원 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제사 시간이 다가오자 전운이 감돌았다. 제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예법과 과정들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아무것도 생략되지 않았다. 제사상의 음식들은 모두 윤기가 돌았다. 나는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 역시 옥색 한복을 입고 염 회장의 곁에 서 있었는데 아주 차분했다. 제사가 끝난 뒤 무엇부터 입에 집어넣어야 할까 계산하던 나와는 달랐고, 몹시 부끄러웠다. 제사가 시작되기 전, 노년의 남자가 향에 불을 붙였다. 향 끝에서 가는 연기가 끝도 없이 길게 늘어졌다. 염 회장은 상념에 빠진 채 연기를 눈으로 좇다가, 손가락으로 그 끝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귓속말했다.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강변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커지기 시작했을 때, 제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모두 몸의 실루엣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 있는 옥색 한복을 갖추어 입고 있었다.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으나, 불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길고 넓은 소매로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서 편안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런 옷을 입고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태도로 제사를 주관한 염 회장도 놀라웠지만, 그들이 다 같이 절하는 장면은 장관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들은 절을 하려 바닥에 엎드린 채 긴 시간을 보냈다. 땅에 머리를 맞대고 부동의 자세로 침묵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옥색 봉분으로 가득 찬 다른 세계의 묘지 같았다. 결국 한 명이 하나의 묘가 되는 삶. 그것이 그들이 살고 살아갈, 그리고 마침내 물려줄 삶이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거대한 흐름을 느꼈다. 물살이나 급류와 같은 흐름을 등지고 버티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의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가만히 있어도 포물선을 그리며 던져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어깨를 건드렸다.
지금 누구에게 절하는 거냐?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무언가 훔치다 발견된 사람처럼 자리를 떠났고, 나는 아버지를 뒤쫓지 않았다. 그리고 절을 이어 올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들의 제사가 끝난 뒤엔 고사가 이어졌다. 다른 건 건드리지 않고 상의 가운데를 비워 돼지머리를 올렸다. 형체가 남아 있는 사체라 그런지 흉흉한 기운이 맴돌았다. 대부분의 과정은 생략했다.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도 모두 불러와 절을 하게 했다. 그들은 꽤 경건한 얼굴로 돼지머리를 향해 절을 올렸는데, 옷이 말려 올라가 살갗과 속옷이 보였다. 꼭 맞는 옷은 항상 이랬다. 몸에 꼭 맞는 옷. 꼭 맞는 삶은 크게 움직일 때마다 속절없이 속살을 드러냈다. 나도 그들의 곁에서 절을 올렸다. 그들은 세 번. 나는 두 번 반. 친하게 지내던 인부 하나가 귀에다 입을 붙이고 원래 고사는 세 번 아니냐, 속삭였고 나는 세 번 맞아요. 대답했다. 고사가 끝난 뒤에는 인부와 동호회 사람들 모두 돗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약과가 특히 맛있었다. 염 회장은 남은 음식을 밀폐 용기에 가득 담아주었다. 그리곤 내가 지은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건물만 하십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혹시 잔디 같은 건 안 까세요?
잔디는 왜요?
이번에 대회 경기장 기준 규격이 잔디 코트로 바뀌었는데, 근방에 잔디 깔린 테니스 코트가 없어서……. 지을까 했죠.
내가 잔디는 따로 깔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려주자, 그는 웃으며 그럼 다음 기회에. 말했다. 그날 염 회장과 명함을 교환했고, 이후로는 보지 않았다.
테니스장 공사가 끝나며 그곳에 갈 이유가 사라지자 아버지와는 거의 만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간간이 살림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왔다. 그 돈은 사용하지 않고 모아뒀다. 당분간은 내가 나갈 필요가 없는 작은 현장들만 계약되어 있기에, 나는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아내는 내가 아이를 돌보는 사이 임신 중 먹지 못했던 맵고 화한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아내는 어떻게 살이 찌지 않는지 궁금할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매일 먹어 치웠으나 좀처럼 만족하지 못했다. 아이의 첫돌을 앞두고, 아내에게 쓰촨 패키지여행을 예약해 주었다. 아이는 내가 볼 테니, 장모와 다녀오라고. 아내는 환호했다.
아내가 중국으로 떠난 날, 나는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3차 영유아 건강 검진을 받을 시기였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의사와 상담했다. 아이가 계속 울었다. 의사는 상담을 멈추고 아이와 나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사회성, 인지, 발달…… 이런 단어를 중얼거리다 눈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아직 판단하긴 이르지만, 자폐가 의심된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품에 안긴 아기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자폐…… 자폐라고요.
그것도 장애라고 할 수 있죠?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뒤로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며, 부모의 행동에 따라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직 아이는 돌이 지나지 않았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과 내게 남은 시간을 어림짐작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염 회장에게 문자를 남겼다. ‘오랜만입니다….’로 시작해 ‘이제 잔디도 한다.’로 끝나는 문자였다. 간곡해 보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에게서는 곧바로 두 시간 뒤에 통화하자는 답신이 돌아왔다. 나는 두 시간 뒤에 그와 통화할 것이다. 만약 그가 아직 잔디를 깔 사람을 물색하고 있다면 그걸 내가 하겠다 말할 것이다. 그가 고심한다면, 주저 없이 나의 사정을 털어놓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난 그는 아하, 하며 얕게 웃을 것이다. 위험한 예감이 들지만, 괜찮다. 아직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