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건강 이야기] 매독, 인간 사회 잘 아는 감염병

장철훈 양산부산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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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은 생물학적으로 참 이상한 질병이다. 사람 외에는 동물 숙주가 없고, 몸 밖으로 나오면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게다가 인류가 80년 넘게 사용해 온 페니실린에 여전히 내성을 얻지 못한 드문 세균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들만 본다면 이미 오래전에 소멸됐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매독은 수백 년 동안 인류와 끈질기게 공존해 왔으며,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환자 발생이 오히려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 유럽에 매독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질병은 철저한 낙인과 배척의 대상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병, 프랑스에서는 나폴리병이라 불렀고 조선에서는 당창이라 불렀다. 질병의 이름 자체가 타인을 향한 손가락질이었던 셈이다.

의학에서 매독은 ‘대단한 모방꾼’으로 통했다. 초기에는 작은 궤양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심장, 뇌까지 침범하며 피부병, 치매, 정신병 등 온갖 질병의 얼굴로 위장했기 때문이다. 확실한 치료제가 없던 시절에는 일부러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열에 약한 매독균을 잡는 기이한 ‘열치료법’이 시도되기도 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충격적이지만, 이 방법은 노벨상을 받았을 만큼 당시로서는 필사적인 구원책이었다.

진단법 역시 독특하다. 현대 의학은 감염병의 병원체를 직접 검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나, 매독은 여전히 100년 전 개발된 검사(VDRL, RPR)를 핵심 도구로 쓴다. 이 검사는 매독균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감염으로 인한 조직의 손상 반응을 확인하는 이른바 ‘비트레포네마 검사’이다.

1940년대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매독은 종말을 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매독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독균은 생존력이 매우 약한 병원체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가장 은밀한 틈새를 파고드는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본능인 성접촉을 전파 수단으로 삼았고, 초기 궤양은 통증 없이 금방 사라져서 감염자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다른 숙주에게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성행위에 따른 전파는 파트너 간 전파율이 30%에 달할 정도로 높고, 또 인체에 방어 면역을 남기지 않아 언제든 재감염될 수 있는 통로도 확보했다.

최근의 매독 재유행은 현대 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은 익명성을 보장하며 성적 네트워크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성매개 감염병의 새로운 고속도로가 된 셈이다. 매독이 질기게 생존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 사회를 아주 잘 이해하는 병원체이기 때문이다. 욕망과 낙인, 침묵과 익명성, 그리고 기술이 바꾼 사회적 관계망의 허점을 매독은 정확히 파고든다. 그래서 매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감염병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병원체의 생물학적 조건이 아니라, 바로 인간 사회의 구조와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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