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①] "기자님은 고졸이세요?" 전국구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

<부산일보> 디지털 청년기획 '고졸'
대학 내던진 '고졸 공무원'…역량 '만렙' 유튜브 스타로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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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청년기획 ‘고졸’을 시작하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기습

“단따다 단따 단따다 단따 단 따다따다따다….”

정체불명 마크가 그려진 시청 앞마당을 보자 환청처럼 한 음악이 귓가에 깔렸다. 검은 양복에 스티로폼 박스를 어깨에 진 두 사람이 몸을 흔들며 ‘관짝춤’을 추던 유튜브 패러디 영상이 떠올라서다.

유튜브에서 무려 440만 뷰를 찍은 ‘그 장소’. 그곳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당당함'에 애써 숨긴 긴장감이 올라왔다. 조용하고 휑한 도심 거리에서 정색하고 몸을 흔들었을 그의 뻔뻔함(?)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지난달 23일, 온종일 잠잠하던 마른하늘에 슬쩍 비까지 내렸다.

음악이 듣고 싶다면 유튜브 ‘충TV’ 검색. 유튜브 영상 캡처. 음악이 듣고 싶다면 유튜브 ‘충TV’ 검색. 유튜브 영상 캡처.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33) 주무관을 만났다. 여느 사무실처럼 공무원들이 일렬로 앉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는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 다만 그는 조그만 이어폰이 아닌 큰 헤드셋으로 단단히 귀를 막고 있었다. 또 어떤 기존의 ‘틀’을 박살 내고 있을지….

“안녕하세요.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유튜브에서 들었던 굵고 또렷한 목소리. ‘B급 갬성’ ‘돌연변이’ ‘괴짜’ 등 세간의 수식어와는 다른 진지함에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반대로 인터뷰 장소는 기존 틀을 무시한 특별한 감성(?)을 선사했다. 자신을 뽐내는 가죽 소파, 밝은 조명을 상상했는데, 우체국 택배 상자가 쌓인 을씨년스러운 창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항상 여기서 인터뷰합니다.”

최근 유명세 때문인지 큰 눈이 슬쩍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켠 뒤 갑자기 날카로운 ‘선빵 질문’을 날렸다.

“혹시 고졸이세요?”

그때 이날 충주버스터미널 앞을 걷다 밟을 뻔한 ‘충주 뱀’이 떠올랐다. 뒤통수를 때리는 그의 질문에 작지만 서늘했던 그 뱀의 진한 여운이 느껴졌다.

충북 충주시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만난 작은 뱀. 이날 김선태 주무관의 ‘고졸이세요?’ 질문과 함께 기자의 가슴을 털썩 내려앉게 했다. 이승훈 기자 충북 충주시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만난 작은 뱀. 이날 김선태 주무관의 ‘고졸이세요?’ 질문과 함께 기자의 가슴을 털썩 내려앉게 했다. 이승훈 기자

“아니요.” 기어들어 가듯 대답한 순간, 슬쩍 감기듯 피곤해 보였던 그의 눈이 반짝였다. “부산일보에 고졸 기자가 있나요?” 인터뷰 대상자에게 첫 질문 2개를 뺏긴 건 처음이었다.

“없습니다.” 사실 회사에 고졸 출신 기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몰랐다. 당연히 없다는 생각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팩트 체크’ 없이 내뱉은 내 고정관념이 더 부끄러웠다. 장난기 가득한 그의 미소를 보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적폐네, 그런데 무슨 특집을 합니까? 본인들도 안 뽑으면서. 하하하하하하하. 이것도 다 (기사에) 내보내 주세요.”

충주시청 홍보실에 근무하는 김선태 주무관. 각종 박스로 뒤덮인 인터뷰 장소가 인상적이다. 정수원 PD 충주시청 홍보실에 근무하는 김선태 주무관. 각종 박스로 뒤덮인 인터뷰 장소가 인상적이다. 정수원 PD

■ 배격

김 주무관은 우리 사회가 만든 학벌의 틀을 벗어난 ‘고졸’이다. 그는 바쁜 스케줄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고졸 관련 기획 보도를 준비한다는 말에 “제대로 찾아오셨다”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온·오프라인, 방송까지 넘나들며 워낙 인기가 많은 사람인데 빛의 속도로 섭외에 응한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요즘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어서 거절이 80%입니다. 건방지죠(웃음). 이 기획은 전형적인 인터뷰와 달라서 바로 수락했습니다. 여러 군데 강의를 나가면 여전히 학력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벌주의 인식에 제동을 걸고 싶었습니다.”

김 주무관은 나름 지역 명문고를 나와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단다. 대학도 학과도 그냥 점수에 맞춰서 휩쓸리듯 갔다. 고교 시절을 톡톡 튀게 보냈을 줄 알았지만,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대학이 필요한지 아닌지 생각조차 안 해봤죠. 주변 친구들 모두 다 결승점(대학)을 향해 달려가니까…. 나름 지역 명문 고교라 그런지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을 한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 그렇지 않았나요?” 이렇게 말하며 고교 시절을 떠올렸지만 크게 건진 건 없는 듯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틀을 깨기 시작했다. 전공 공부에 관심이 가지 않아 군 전역 후 학교를 그만뒀다. 또렷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나 후회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회계 수업을 듣는데 미분 같은 걸 영어로 강의하더라고요. 하하.”

부모님 반대는 크게 없었다. ‘사법고시 준비’라는 명분이 있었고, 서른 살 전까지 합격이 안 되면 취업을 하겠다는 ‘플랜B’도 세웠기 때문이다. 민감할 법한 질문에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당당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답변이 더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충주하수처리장에서 하이라이스 '먹방'을 하는 김선태 주무관. 유튜브 영상 캡처. 충주하수처리장에서 하이라이스 '먹방'을 하는 김선태 주무관. 유튜브 영상 캡처.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기에 혹시나 ‘SKY 대학’에 입학했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실수였다. “이것 봐~. 학벌주의를 배격해야 하는데 벌써 스카이 논란이 나오잖아….” 틈을 보이면 바로 ‘공격’이다.

어쨌든 처음부터 공무원이 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고졸 스펙’으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다. “기자님이 고졸이었다면 회사에서 뽑아줬을까요?” 그의 ‘뼈 때리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데도 그는 고졸 신분(?) 때문에 단 한 번도 불안해 하거나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 이유가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대학을 그만둘 때 정상적인 회사를 가겠다는 생각 자체를 접었습니다. 자격증이나 시험으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늦었지만 제 길이 명확히 정해졌던 겁니다.” 자신을 믿어서인지 가족이나 친척도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았단다.


■ 직면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고졸이라고 차별을 당하진 않았다. ‘그러한 경험’을 찾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찾지 못한 눈치였다. 평소 직설적인 콘텐츠로 대결하는 그였기에 숨길 리가 없었다.

“학벌이 ‘제로 베이스’에서 첫인상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합니다. 학벌 좋다고 역차별을 받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도 공직 사회에선 학벌주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습니다. 제가 사기업에 다녔다면 할 말이 많았겠죠.”

다만 무의식적인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한다. 몇몇 동료는 공무원이 된 후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학을 다시 다닌다고. 그러나 사회가 문제이지 그런 ‘개인’을 결코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미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빠르게 들이켰다.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은 듯했다.

“사실 일 외적으로 강의를 다니면서 학벌주의를 꽤 느꼈어요. 강의 도중 항상 ‘고졸 없나요?’라고 물어보는데 있으면서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강의 후기 글을 보면 ‘제가 손을 못 들었다’ ‘솔직한 모습에 감명받았다’ 같은 댓글들이 적혀있더라고요. 또 제가 고졸이라고 밝혔을 때 마치 반전이라는 인식에 웃음이 터지기도 해요. ‘아 여전하구나’라고 느끼죠.”

김선태 주무관은 자존감이 높다. 어느 강의, 강연을 하러 가더라도 고졸임을 당당히 밝힌다. 정수원PD 김선태 주무관은 자존감이 높다. 어느 강의, 강연을 하러 가더라도 고졸임을 당당히 밝힌다. 정수원PD

그는 고졸임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력의 틀을 벗어난 자신을 대견해하는 듯 보였다.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더라도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제 꿈을 이루는 데 대학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령 대학이 제 꿈을 이루는 데 필수 관문이라도, 이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어떤 고정적인 틀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주변 친구들 모두 대학을 갔는데 전혀 부러운 게 없습니다.”


■ 앞길

그는 아이가 “아빠 나 대학 안 갈래!”라고 한다면, “아싸!”라고 답하겠다고 했다. 본인의 미래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왔다는 것 자체가 칭찬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가 농담 섞인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효자입니까. 4년간 학비가 얼만데요. 그 돈으로 펀드를 들어주거나 대출 껴서 땅을 사주는 게 낫지요. 애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진로인가에 따라 아빠로서 조언이 다르겠죠. 물론 결혼할 때 여전히 학벌을 보는 문화 등 실질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 거품도 빼야 하는데….” 말할 때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의 두 손도 무언가 설명하는 듯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대학 갈지를 정하기 전에 확실한 계획부터 세워야 합니다. 그 계획에 대학이 필요한가 보라는 거죠. 요즘 아쉬운 부분은 고졸자가 성공하는 사례만 보고 회피하듯이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는 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아 고졸도 다 잘 사는데 나도 학교 가기 싫어’는 바람직하지 않은 마인드죠.”

김 주무관은 우리 사회가 “어렵지만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먼 곳을 잠시 응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역인재 채용’ ‘고졸인재 채용’ 등 정책이 이런저런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슬금슬금 사회 인식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어찌 됐건 고졸자에게 문을 터주는 역할을 했으니까요. 기업도 ‘대학 졸업장 없이도 더 훌륭한 인재가 들어올 수 있구나’라고 느꼈을 거구요. 학벌주의를 깰 특화된 교육, 취업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그가 처음으로 생각에 잠긴 듯 말끝을 흐렸다. “사실 할 말이 더 많은데….” 한숨을 짧게 내쉰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마지막 말을 건넸다.

“모두가 대학을 가야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는 게 급선무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가 디자인한 포스터가 그려진 종이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포스터를 다시 보면서 피식 웃어댔지만, 이날은 유독 묵직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사회가 만든 ‘틀'을 부수고 있었다. 이승훈 기자 인터뷰가 끝난 뒤 그가 디자인한 포스터가 그려진 종이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포스터를 다시 보면서 피식 웃어댔지만, 이날은 유독 묵직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사회가 만든 ‘틀'을 부수고 있었다. 이승훈 기자

충주시=이승훈·황석하·박세익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lee88@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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