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가짜뉴스 속에서 민주주의 지키기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 / 리 매킨타이어
'역정보' 생산 과정의 상세한 분석
정치적 목적에 의해 대부분 생성
거짓 선동에 대한 '파해법' 제안도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미국 대선판에서도 가짜뉴스 이슈가 시끄러운 것을 보니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가짜뉴스의 일부는 정보 생산자의 취재 부족이나 정보에 대한 오해로 인해 비롯된다. 또한 일부는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취하는 정보 소비자의 확증편향 취향(?)에 맞추기 위해(‘좋아요’를 유도하기 위해) 생산자들이 정보에 양념을 보태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가짜뉴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려는 의도로 생산된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수많은 역정보(가짜뉴스)를 퍼뜨리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도록 ‘물타기’한다. ‘살인사건의 시체를 감추기 가장 좋은 곳은 전쟁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살해된 시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사인(死因)이 전혀 다른 시체를 더 만들어 쌓는 것이다.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는 이러한 역정보의 생성과 전파에 담긴 메커니즘을 낱낱이 파헤친다. 왜 역정보가 생성되는 것인지, 역정보를 유포해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지,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데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어떤 책임을 느껴야 하는지, 이러한 선동으로부터 독자 스스로가 지켜나갈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책의 원제는 <On Disinformation>. 우리말로 ‘역정보에 관하여’ 정도로 풀 수 있다. 저자는 “오정보(misinformation)와 역정보(disinformation), 즉 평범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보와 선별적 조작을 거친 허위 정보는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잘못된 정보인 오정보와 달리 역정보는 명확한 목적에 의해 생성된 가짜 정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역정보는 그것을 만든 사람 혹은 집단의 이익에 복무한다. 독자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역정보의 창조자가 누구인지로 쏠린다. 미국 보스톤의 철학자이기도 한 책의 저자에 따르면, 미국 사회에 만연한 역정보들은 대부분 정치적 목적에 의해 생성된다.
책의 내용 대부분이 현 시대의 미국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국 사회 가짜뉴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과학 부정론’이 존재한다. 담배 유해 논쟁(담배가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 법정까지 끌고간 싸움)에서부터 시작해 화석 연료와 지구온난화의 관계, 코로나 백신에 마이크로칩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등등, 미국 사회을 들었다 놨다 했던 많은 가짜뉴스가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며 진실을 숨기려는 역정보로 인해 생겨났다.
번역본이 출간되면서 한국적 상황에 대한 서술이 추가됐다. 저자가 추가한 것은 아니고, 미디어 전문가인 정준희 교수가 무려 30페이지나 되는 해제를 달았다. 책의 해제에서 정 교수는 한국 사회는 과학 부정론에 빠진 미국과는 달리 ‘역사 부정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노역을 자발적인 것으로 왜곡하거나, 5·18 항쟁 당시 행해진 국가 폭력에 대해 ‘북한배후설’ 등으로 물타기하려는 부류는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하다.
동서를 막론하고 가짜뉴스가 판치는 현재의 사태를 저자는 ‘전시’(戰時)로 규정한다. 저자는 “역정보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일단 첫 단계로 우리가 전쟁 중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반 개인이 역정보에 맞서 승리하는 열 가지 방법, 즉 ‘전시 행동강령’을 제시한다. ‘양극화에 저항하라’ ‘부정론을 믿는 사람들을 공범으로 보지 말고 피해자로 여겨라’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개소리는 무시하라’였다. 리 매킨타이어 지음/김재경 옮김/정준희 해제/두리반/216쪽/1만 7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