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몽글몽글한데 건조한 용두사미 로코물 ‘바이러스’
몽글몽글한 오프닝 인상적
연기· 유머 포인트 좋지만
뜬금없는 러브라인 몰입 깨
‘사랑에 빠지게 되는 바이러스’가 있다면 감염자는 어떻게 될까요?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바이러스’는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소재로 하는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물입니다. 배두나, 김윤석, 손석구 등 탄탄한 연기력과 특유의 매력을 보유한 출연진도 눈길을 끕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 같은 이 영화를 감상한 후기를 남깁니다.
‘아웃브레이크’(1995), ‘컨테이젼’(2011), ‘감기’(2013)…. 전염병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끔찍하고 긴장감 넘치는 재난영화 형식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이지민 작가의 소설 ‘청춘극한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바이러스’도 치사율이 높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감염 증상 덕에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흘러갑니다. 기존 로코물과 확연히 구별되는 차별점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옥택선(배두나)은 번역가로 일하는 극한의 ‘집순이’입니다. 매사 의욕이 없는 택선은 속칭 ‘결혼적령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연애와 결혼에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소개팅에서 이상한 연구원 남수필(손석구)과 만난 뒤, 잔잔하던 택선의 삶이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영화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톡소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우울증 치료를 위해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탄생했다는 설정이 그리 억지스럽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같은 몽글함이 특징입니다. 주연 배우 배두나의 역할이 아주 큽니다. 바이러스 탓에 기분이 ‘업’ 되어 있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택선의 모습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배두나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귀엽고 러블리한 캐릭터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배두나가 영화에서 늘 예쁘게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택선은 유일하게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톡소 바이러스 전문가인 이균(김윤석) 박사와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택선은 늘 땀에 절어 있고, 떡진 앞머리는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망가진 상태에서도 해맑게 웃는 택선의 모습은 오히려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합니다.
손석구와 배두나가 호흡을 맞추는 초반부도 인상적입니다. 두 배우가 보여주는 생활 연기가 흡입력 있고, 풋풋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유머 포인트도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편입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대책 없이 즐거워하는 장면에서 관객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됩니다.
하지만 몽글함이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봄바람이 꽃가루와 송진을 동반하듯, ‘바이러스’의 전개도 찝찝함을 유발합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뜬금없는 러브라인입니다.
극 중 택선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모호성을 띱니다. 사랑에 빠진 게 바이러스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호성이 두근거리는 설렘이나 긴장감을 유발했다면 좋았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실패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러브라인을 밀어붙여 도통 몰입이 되지 않습니다. 남성인 기자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 정도니, 젊은 여성 관객이 느낄 이질감은 더 심할 겁니다. 로맨틱한 장면에서 상쾌하고 촉촉한 설렘보다는 황사 바람 같은 건조함이 느껴집니다. 로맨틱 코미디인데 연애서사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어렵습니다.
후반부는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신선한 소재와 좋은 출연진에 비해 각본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인상입니다. 갈수록 떨어지는 개연성, 중심축 없이 어지럽게 전개되는 스토리 때문에 김이 빠집니다.
제 점수는요~: 60/100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