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도 우도 아니고, 오로지 ‘지역과 시민’입니다 [부산일보가 붙잡은 지역 어젠다]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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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사건 4·19혁명 도화선
환경운동 시동 ‘낙동강 늦기 전에’
돗대산 참사 지적 가덕신공항으로
우리곁의 빈곤·형제복지원 보도
부산의 상식, 한국 기준 되도록

‘지역을 중심에.’

중앙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현장. 그 현장을 앞서서 기록하고 부산의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되는 것. 80년간 부산일보를 지탱한 힘이자 책무였다.

■지역 사건 전국적 이슈로

그 책무의 출발점은 민주주의의 파고가 부울경 지역을 덮치던 1960년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3·15 부정선거에 항의한 마산 거리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맞닥뜨린 것은 경찰의 무차별 발포와 연행이었다. 당시 실종된 김주열 열사는 1960년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마산 주재 기자였던 허종이 찍은 김 열사 모습은 역사의 물줄기를 뒤틀어 놓았다.

부산일보는 다시 마산 시위 현장을 찾아 4월 12일 자 1면에서 “경찰서 앞에 몰려오는 군중을 막기 위해 경찰이 100여 발의 공포탄을 발사했고 실탄이 발사되면서 학생 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6명 발생했다”는 참극을 전했다.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며 이승만 대통령 하야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981년 9월 10일부터 7개월간 55회나 보도한 시리즈 ‘낙동강 늦기 전에’는 낙동강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전 수계 780km를 오가며 환경 오염 실태를 고발했다. 환경 보존에 대해 무지했던 시기 부산일보의 보도는 국내 환경운동 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일보는 1981년 7월부터 낙동강 전 유역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황지 석탄 오염, 공단 인근 중금속 문제 등이 차례로 드러났다.

지역의 ‘안전’과 ‘인프라’도 살뜰히 챙겼다. 2002년 4월 15일, 중국국제항공 CA129편이 김해공항 인근 돗대산과 충돌해 탑승자 166명 가운데 129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부산일보는 사고 현장과 수색 상황을 생생히 전달했고, 사고 원인이었던 돗대산 높이·해풍 등 구조적 쟁점도 선제적으로 보도했다. 김해공항의 지리적 한계와 안전이라는 의제가 급부상했고, 집요한 추적 보도를 통해 24시간 이착륙이 가능한 가덕신공항 건설로 이어졌다.

■권력 견제·지역 민생 위한 감시

2006년 3월 1일, 철도 파업 첫날이었던 삼일절에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산 지역 기업인들과 골프를 쳤다. 이 사실은 부산일보에 의해 전국에 처음 알려졌다. 이 총리가 2005년에도 골프 파문이 있었던 점과 골프에 참여한 Y제분 불법 주식거래 정황 등이 드러났다. 결국 3월 15일 이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부산일보가 이어온 감시와 지적의 뿌리는 지역 내 소외된 삶을 살리겠다는 뜻에 있기도 했다. 부산일보는 2003년 9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40회가 넘는 ‘우리곁의 빈곤’ 시리즈로, 복지 사각지대에 갇힌 준 빈곤층인 ‘차상위 계층’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차상위 계층 문제를 국내에서 처음 공론화한 부산일보는 2003년 11월 “차상위 계층에게 의료급여를 별도로 지급하는 의료부조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차상위 계층 질환자를 위한 의료급여 예산 530억 원을 투입했다.

■언제나 시민 중심에

형제복지원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시민들은 강제노동과 가혹 행위, 성폭력 속에서 끔찍한 나날을 보냈다. 1960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된 사상구 형제복지원의 인권 침해 사건은 국가도 외면한 진실이었다. 부산일보는 2018년 3월 수용자 126명의 신상기록카드 원본을 단독 입수해 공개했고 1985년 7~12월 기간 ‘신병인수인계대장’을 확보해 1964명 명단을 밝혀냈다. 박인근 원장 일가 재산 축적을 추적 보도하고 피해자들 33명의 이야기를 부산일보 유튜브 시리즈 ‘살아남은 형제들’로 담았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2013년 3월 범죄예방 환경디자인(셉테드) 기획은 부산시 신축 아파트 허가 과정에 셉테드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4년 9월에 주도한 기업·전통시장 상생 프로젝트 ‘행복한 전통시장’에는 수많은 지역 기업이 참여하며 침체한 골목 경제에 숨통을 트는 데 힘을 보탰다.

2022년 5월 서면에서 귀가하던 김진주(가명) 씨는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머리를 수차례 가격당했다. 당시 피해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에 부산일보는 “범죄 피해자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일보의 ‘제3자가 된 피해자’ 시리즈 보도 끝에 지난해 12월 형사 사건 피해자가 증거 기록까지 원칙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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