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119 대 29'… 그래도 담대한 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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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장

‘119 대 29’는 부산 시민에게 오랫동안 뼈아픈 스코어로 각인될 것이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는 결국 유치되지 못했다. 그것도 너무 큰 격차로 종결됐고, 이로 인한 시민 상실감은 크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오는 2025년이면 세 번째 월드엑스포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본 내 여론이 좋지 않다. 오사카엑스포 개최를 겨우 2년 앞둔 시점인데, 지난달 초 실시된 국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8.6%가 2025오사카엑스포에 대해 “불요(不要)”라고 답했다. ‘불요’란 ‘불필요하다’, 즉 ‘개최하지 말자’는 의미다. 심지어 엑스포 유치 도시인 오사카를 기반한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 지지층 65%는 엑스포 개최를 노골적으로 반대했고, 시민 9만 명의 ‘반대’ 서명 명부가 오사카 당국에 제출되기도 했다.

최근 오사카엑스포 반대 여론 높아

일본, 철회 않는 건 ‘유발 효과’ 때문

부산엑스포 유치 성적 실망스럽지만

과정만큼은 진심… “다시 시작하자”

가장 큰 반대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자재비와 노무비가 당초보다 거의 배나 올라 국민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일본 지인들을 만나면 결이 조금 다른 얘기를 종종 듣는다. 월드엑스포를 두 차례나 개최한 일본은 2025년 오사카엑스포에서 세계 최고 지도국 지위를 선양하고 싶은데, 딱히 ‘꺼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일본 특유의 자괴감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최첨단 기술은 물론이고 세계를 향한 예지력도 내세울 게 없다는 걱정과 불만이 엑스포 개최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제 와서 오사카엑스포를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공익재단법인 2025일본국제박람회협회는 자국의 국가전략 ‘소사이어티 5.0’ 실현을 목표로 일본을 세계에 다시 알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이 기대하는 오사카엑스포 유료 입장객도 아이치엑스포보다 무려 1000만 명 더 많다. 투입 비용이 적지 않지만, 유발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긍정적’ 신호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릿쇼대학 오오이 교수는 오사카엑스포의 투입 대비 생산 효과가 1.3배라고 주장했다.

부산이 유치하려 한 ‘등록엑스포’를 일본은 이미 1970년 오사카, 2005년 아이치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오는 2025년 다시 오사카에서 개최한다. 대전과 여수에서 ‘인정엑스포’만 치른 대한민국과는 엑스포에 한해서는 격(格)이 다르다.

부산엑스포 유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30’ 대신 ‘2035’ ‘2040’으로 숫자만 달라졌다.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은 ‘도전’이고 ‘성취’다.

부산은 엑스포 유치전에 늦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각료, 부산시장, 기업인, 시민단체까지 오랜만에 똘똘 뭉쳐서 응원했다. 성공의 쾌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샘솟은 ‘도전 아드레날린’은 적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허망하게 졌고 아쉬움과 허탈감이 컸지만, 대통령과 부산시장이 공동 목표를 향해서 그렇게 고군분투한 모습을 최근 수십 년간 본 적이 없다. ‘119 대 29’라는 숫자에서, 허탈감이 컸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그 낯설고 뜨거운 장면들은 우리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누구보다 국제 뉴스에 민감해서 일찍부터 엑스포 유치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엑스포 유치 사절단이 외국을 순방하고 영향력 있는 인사를 만나 환담을 나누는 장면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때때로 빙의의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발로 뛰고 머리를 맞대면서 빚어낸 서사다. 설령 기대와 실망감이 교차한 서사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작가 김주영의 단편소설 중 〈머저리에게 축배를〉이란 묘한 제목의 작품이 있다. 될 수 없고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드디어 그 목표가 달성된 날, 자신을 위해 준비된 술판을 갑자기 뒤집자 순간 동료들이 중의적으로 내뱉은 건배사가 바로 ‘머저리에게 축배를’이었다.

어쩌면 우리보다 일찍 유치전을 시작한 사우디를 상대로 한 우리의 엑스포 도전이 다소 무모하고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가 그랬다.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란 장미꽃을 피워냈다. 대한민국은 이제 끝났다고 했던 외환위기 속에서도 ‘금 모으기’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오 대 영(5 대 0)’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거스 히딩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119 대 29’는 머저리 같은 성적이 맞다. 그러나 그 머저리들을 위해 축배를 들고 싶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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