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의사 집단사직과 지역균형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의대 정원 늘리는 핵심 포인트
지역균형발전 측면 고려할 필요
예컨대 공공병원 설립 확대 등
정부가 인프라 구축 적극 나서길
의사도 직업 선택 자유 있는 만큼
강요보다는 지역 유인책이 중요

의대 정원 확충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끝날 기미를 안 보인다. 뉴스를 읽다 뜬금없이 TV 드라마 하나가 떠올랐다. 작년에 방영된 ‘웰컴투 삼달리’다. 이 드라마는 성공한 포토그래퍼 ‘조삼달’이 억울한 일에 휘말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자 다시 고향 제주로 내려와 첫사랑을 만난다는 내용의 스토리다.

이 드라마가 떠오른 이유는 다름 아닌 주인공 삼달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극중 삼달은 학창 시절 내내 고향을 지겨워했다. 사진을 배우고 싶었지만 제주에는 사진을 배우고 경험할 만한 인프라가 없었다. 카메라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울며불며 애원하던 삼달은, 어느날 육지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다짐한다. 나중에 꼭 서울에 가서 성공한 포토그래퍼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삼달만큼의 결연한 다짐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한 번쯤은 삼달과 비슷한 마음을 품는다. 언젠가는 서울 혹은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할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드라마 속 삼달의 친구들도 한 번씩 서울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삼달과 친구들이 서울로 향했던 것처럼 서울과 지역 간에는 정보 격차가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폭도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면 수도로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2024년에도 유효하다.

의사의 집단행동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이 있지만,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지역에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사에서 지역에서 중증 질환자들이 골든타임 내 진료를 받는 비율이 50%도 되지 않고, 우리나라 250개 지자체 중 98개가 응급의료 취약지라는 통계는 지역 의료의 현주소를 가리킨다. 안타깝고 아득한 현실이다. 그런 뉴스를 읽으며 삼달이가 떠올랐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하고자 하는 청년은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슬픈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1년에 의사가 받는 평균 임금은 일반 노동자가 받는 평균 임금의 4~5배라고 하는데, 지역에 의사가 오지 않아 연봉을 4억~5억 원까지 올려주겠다는데도 지원자가 없었다고 한다. 전체 시군구 중 32개는 필수의료기관이 없고,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섬이 많은 인천광역시는 3대 의료 취약 지구로 분류됐다. 지역에 의사가 없으니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의료 시설이 부족하니 의사도 없는 굴레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과연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의대생들이 지역에서 일을 하려고 할까? 단순히 돈을 얼마나 주는지와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모든 영역이 다 그렇겠지만 의료계는 정보와 경험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의사도 알고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도 모를 리 없다.

정부는 의대생들을 많이 뽑아 지역 의대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이 해당 대학을 졸업해도 그 지역에 남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문제다. 경상남도에서 면허를 취득한 초등교사는 경상남도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의사도 면허를 취득한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한다거나, 그 지역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그 지역에서만 일할 수 있게 하자는 등의 ‘강제적 장치’를 고민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의미 있고 유효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보다 큰 차원에서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당장의 효과를 바라기는 어렵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떠안고 있는 숙제 같은 것 말이다. 바로 ‘지역균형’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윤석열 정부는 울산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고 했지만 경제적 가치 측면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소했다. 눈앞의 효과만 생각하고 지역균형 관점에서는 고려하지 않은 방침인 듯해서 매우 아쉽다. 도전과 시도가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의료 시설을 확충하는 일은 당장 손해일지 몰라도 그런 투자로 인해 지역 의사가 배치되거나 서울까지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지역에서 치료받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 균형 잡힌 지역을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택하는 것이 결국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다.

현재 최소한의 인력 배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집단행동을 강행하고 있는 일부 의사들의 이기주의는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이들에게 특정 지역에서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 역시 불합리한 일이다. 강제적인 접근은 제1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지역에 머무르고 싶고, 일하고 싶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삼달이들이 지역에 남을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