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위험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정철교 초대전 4월 2일까지 아리안 갤러리
“이젠 제 작업의 정체성…기록 의미도 있어”
‘원전 마을’ 풍경 작업 더해 ‘녹색 불씨’ 첫선
정철교(72) 작가에게 울산 울주군 서생면은 거주 마을 이상이다. 서생으로 이사를 온 뒤로 그의 작품엔 늘 핵발전소의 둥근 돔이 보이고, 송전탑과 어지러운 전선들이 등장한다. 일명 ‘붉은 서생 풍경’이다. 그림 속 붉은 윤곽선은 혈관이고 핏줄이요, 작품 속 하늘마저 불안을 품은 노란색이다. 정철교 초대전이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아리안 갤러리에서 내달 2일까지 열리고 있다.
15년 전 양산 웅상읍 매곡 마을을 떠나 지금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핵발전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사 와서 주민이 되니까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 작업실에서 바다가 보입니다. 남들이 볼 땐 정말 좋은 경치죠. 물론 핵발전소의 위험 요소를 빼고 나면요. 현실을 놔두고 아름다운 바다만 그리면 비겁하다 싶어서 보여주기 시작한 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왜 ‘위험한’ 그곳을 십수 년째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게 딜레마입니다. 제 작업이 여기서 나왔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 보여줘야 할 것들이 여기 있는데…. 여길 벗어나면 제 작업의 정체성이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거죠.” 지금은 오히려 마을 구석구석을 더 열심히 그리고 있다. 예술 못지 않은 기록의 의미도 강조했다. “사람들이 저 보고 그려 달라고 한 적도 없지만 사람도 그리고, 나무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강아지도 그립니다. 이 작품들이, 이 장소에 계속 있었다는 게 기억되면 좋겠어요.”
변화라면, 이번 전시에선 ‘녹색 불씨’를 개념화한 새로운 그림이 몇 점 등장했다. “세상이 힘들고, 아프고, 파괴되고 있지만, 회복의 의미랄까, 다시 살리는, 재생되는 불을 피워 보자는 의미로 녹색불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최근 작업실을 정리하다 나온 2007년 소품 50여 점도 함께 전시 중이다. 매곡 마을에서 두문불출하던 시절 작업한 것들이다. 혹자는 이게 더 편안한 마음이 든다며 좋아하더라고 전했다. “산속에서 살면서, 나를 비운 상태, 아주 무심한 상태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붉은 색지 위에 유화물감, 먹, 오일파스텔 등으로 그린 건데, 지금의 작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1999년 부산시립미술관 기획전에선 선보인 ‘인형’ 시리즈 나무 조각도 몇 점 보였다. 나무 조각 형상과 붉은 색지 위에 그린 사람 형상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관람 시간 화~토요일 낮 12시~오후 7시. 일·월요일 휴관. 문의 051-757-2130.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