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려고 한 건 아닌데…" 성폭행하려 수면제 수십정 먹여 살해한 70대의 최후

김주희 부산닷컴 기자 zoohih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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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성폭행을 목적으로 함께 투숙한 여성에게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게 해 결국 사망케 한 7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2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강간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A(75)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의 보호관찰도 명령했다.

A 씨는 3월 29일부터 4월 3일까지 피해 여성 B(58) 씨와 서울 영등포구의 한 모텔에 투숙하며 수면제 36∼42정을 5차례에 걸쳐 몰래 먹여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가 먹도록 한 수면제는 최대 2주치 복용량에 달했으며, 그는 올해 2월에도 같은 방식으로 B 씨에게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B 씨는 객실에서 숨진 채 모텔 주인에게 발견됐고, 경찰은 도주한 A 씨를 이튿날 충북 청주에서 검거했다.

재판에서 A 씨는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살해의 고의성이 없었고, 피해자가 수면제를 다량 먹더라도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A 씨 측 변호인은 "수면제를 복용했더라도 약효가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해 수차례에 걸쳐 나눠서 복용시켰다"며 "피해자를 죽이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다량의 수면제를 단기간에 복용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실"이라며 "피해자가 세 번째 수면제를 먹은 뒤 미동도 없이 누워 헛손질하며 횡설수설하는 등 의식이 흐려졌음에도 재차 강간할 마음으로 3일 치 수면제를 다시 음료수에 타 먹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상태에 비춰볼 때 충분히 죽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 그럼에도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유족과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최후 변론을 통해 A 씨는 "피해자와는 3년 전부터 알게 됐는데 만날 때마다 여관에 간 건 아니고 평소 다른 시간도 보냈었다"며 "피해자가 죽은 뒤로 평소 모습이 그리워서 꿈에 나타나면 내가 널 죽이려고 한 게 아닌데 그렇게 됐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울먹였다.

이어 "제가 복용한 약을 많이 먹으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주지 않고 조금씩 여러 번 준 것"이라며 "그런 비겁한 짓을 하면서 저의 성적 만족을 채우려고 한 게 너무나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피해자가 심각한 건강 악화에 빠졌음에도 계속 수면제를 복용시키고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생명을 경시했다"며 "그런데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처음부터 피해자를 강간살인 하려 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이고, 고령이라 장기간의 유기징역을 선고하는 것만으로도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과 유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주희 부산닷컴 기자 zoohih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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