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곳에서 낯선 장소로’ 레지던시 작가, 그들은 지금…
홍티아트센터·영국 ‘코브 파크’
13기 ‘홍티’ 작가 프레젠테이션
방기철·양희연·오민수·김수정
내달부터 릴레이 개인전 개최
‘코브 파크’ 다녀온 조은필 작가
“자발적 고립으로 나에게 집중”
‘코브의 바람’ 21일까지 전시 중
“몇 년간 다른 일을 했는데 작업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내 지원했는데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인데, 그동안의 경력이 쌓여서 ‘드디어’ 홍티아트센터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작가와 교류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롯이 저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레지던시, 즉 입주 작가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올해는 어떤 사람들이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홍티아트센터’에 입주했을까. 13기 작가 1차 프레젠테이션을 연다고 해서 달려갔다. 이와 함께 지난해 부산문화재단 레지던시 활성화 사업으로 영국 스코틀랜드 아티스트 레지던스 ‘코브 파크’(Cove Park)로 파견을 갔다 온 조은필 작가의 활동 결과 전시와 작가와의 대화도 참여했다.
■개관 13년째 맞는 홍티아트센터
지난 12일 오후 부산 사하구 다산로 ‘무지개 공단’ 안에 위치한 홍티아트센터 1층 공동 작업장. 개관 13년째를 맞는 홍티아트센터에 올해 입주하는 작가는 국내외, 장·단기를 포함해 총 8명이다. 김수정(설치), 오민수(입체 및 설치), 방기철(설치, 조각) 등 부산 작가 3명과 양희연(경기 광주, 참여형 조각, 설치) 작가는 입주를 마쳤고, 김선열(강원 원주, 입체 설치, 하반기 입주 예정), 대만(황신, 회화, 7월 입주 예정), 프랑스(2명 미정) 작가는 하반기에 입주할 예정이다. 입주 기간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1개월에 이른다.
홍티아트센터는 부산 옛 홍티포구에 조성된 시각·설치예술 중심 창작공간으로 입주 작가의 작업, 전시,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산문화재단은 이들에게 작업 공간(스튜디오)과 숙식 공간(작가 연구실), 약간의 창작활동비 등을 지원한다.
비록 한 달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레지던시라는 공간이, 프로그램이, 작가들에겐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제공할 뿐 아니라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작가 간 교류를 통해 경험 공유 등 연대감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미 ‘홍티’를 거쳐 간 선배 작가들도 이날 자리를 함께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들은 장단기 레지던시를 통해 또 하나의 허들을 넘고 있는 듯했다.
■입주 기간 내 릴레이 개인전 개최
이날 ‘홍티’ 입주 작가 4명은 내달 28일부터 시작할 릴레이 방식의 개인전에 대해 발표했다. 방기철 작가가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잠시 멈춰둔 작업에 재시동을 걸며, 그 태도와 의미를 담은 개인적인 작업을 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현재는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수집품의 각 요소에 동력, 음향 등 다양한 매체를 적용한 행렬을 갖춘 퍼레이드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방 작가 전시는 4월 28일~5월 12일 개최될 예정이다.
양희연 작가 역시 미술 작업으로 돌아온 계기가 ‘홍티’ 입주였다며 감사를 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차가운 산업물질에 피부와 온기를 부여해 접촉 가능한 살점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 방향도 산업 지대에서 수집한 소리 조각과 함께 지난 시간 이어온 촉감 연구, 체험형 조각을 발전시키는 프로젝트이다. 양 작가 전시는 5월 21일~6월 4일 열린다.
오민수 작가는 첨단사회 안에 숨겨진 노동 문제를 들여다본다. 그는 지난해 6월 경기도 화성 리튬 배터리 제조공장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발견한 배터리 잔해와 인간 손가락의 유사성을 발견한 사실에서 출발한 ‘애도의 불가능성’을 손 움직임과 감각을 통해 전달하는 전시를 기획 중이다. 오 작가 전시는 세 번째 순서로 6월 16~30일 준비된다.
김수정 작가는 모든 삶을 관통하는 서사인 사랑이 어떻게 개인을 흔드는지, 그 과정과 이유를 탐색하고, 특히 여성과 소외된 자가 느끼는 폭력, 강요된 희생 등을 수면 위로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상의 풍경을 펜화로 그린 대형 드로잉과 일상의 풍경과 반대된 소리를 연결한 작품을 기획 중이다. 김 작가 전시는 7월 9~23일 마련된다.
■해외 레지던시 다녀온 조은필 작가
‘홍티’ 작가와 달리 조은필 작가는 해외 레지던시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8월 한 달간 물리적 공간 이동 혹은 자발적 고립을 마치고 돌아왔다. 지난 11일부터 홍티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코브의 바람’이란 제목의 결과 보고 전시회를 열고 있다.
“각자 필요한 시기에 적합한 레지던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견작가인 저는 오롯이 저한테 집중할 수 있는, 자발적인 고립(독립)이 필요했는데 ‘코브 파크’에서 시간이 저한텐 꼭 그랬습니다.”
코브는 시각예술로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에 종사하는 분들이 광범위하게 모였다. 네트워킹의 시간은 있었지만, 작업은 작가 자신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흔히 작가들은, 보편적으론 안정감을 원하지만, 모순적으로 안정감에서 불안을 느끼고, 강박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이라더니 조 작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다소 생경했던 자연 속에서 경험을 통해 느낀 감정과 깨달음을 작품을 통해 오롯이 전달하고자 하는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코브의 강한 바람에 의해 꺾이고 휘어진 식물들과 나뭇가지를 채집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러 브러쉬 형태의 도구를 만들어 코브의 바람과 소리를 드로잉과 퍼포먼스로 구현했다. 또한 약 4주간 레지던시 기간의 촬영 기록을 편집해 3분가량의 영상도 제작했다. 자막이나 음성 없이, 작업 영상과 바람 소리 사이 들리는 다채로운 자연의 소리만 등장한다.
조 작가의 전시를 지켜본 유미연 설치작가는 “작가의 이전 작품에 비하면 작가적 힘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란색 사용량 감소가 감지된다”면서도 “이는 작가의 작업 변환 서사에 따라서 본다면 의미가 있지만, 순수하게 작품의 조형적 형식적 요소로 본다면 특별함은 없다”고 해석했다. 유 작가는 또 불안함과 느슨하지만, 자발적 고립을 위해 선택한 레지던시에서 얻어낸 결과물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코브의 바람’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계속된다. 일요일은 휴무이고 자유 관람이다. 문의 051-263-8661~3.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