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키운’ 회사, 中 자본이 품나…이지스 인수전 ‘논란’
당국, 대주주 적격성 심사 관건
본입찰 뒤집은 프로그레시브 딜’도 불씨
흥국생명, 법적 대응 불사 방침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이지스자산운용 사옥 전경. 이지스자산운용 제공.
국내 1위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두고 벌써부터 ‘대주주 적격성·매각 공정성’ 논란이 거세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된 핵심 운용사의 경영권을 외국 사모펀드에 넘기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본입찰 이후 추가 입찰이 도입돼 판이 뒤바뀐 과정과 입찰가 유출 가능성을 둘러싸고 매각 절차의 불투명성까지 제기된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중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당초 인수전은 흥국생명과 한화생명이 경쟁하는 ‘국내 보험사 2파전’으로 예상됐으나, 힐하우스가 막판에 금액을 올리며 판세가 급변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마무리되면서 향후 절차는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평가’로 넘어간다. 자금 출처, 재무 건전성, 지배구조 투명성 등을 심사해 금융사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절차로,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이 대규모로 위탁된 이지스운용의 특성상 더욱 엄격한 심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힐하우스 자금의 성격이 적격성 심사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힐하우스는 중국 출신 장레이(张磊) 대표가 2005년 설립한 글로벌 사모펀드로, 장 대표가 싱가포르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힐하우스가 웹사이트에서 중국 관련 표현을 대거 삭제하며 ‘중국색 지우기’에 나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지스운용은 2010년대 초 독립계 운용사로 출발해 국내 상업용 부동산·리츠 시장에서 업계 1위로 성장했다. 운용자산을 수십조 원 규모로 불리는 과정에서 국민연금·각종 연기금·공제회·보험사 등이 핵심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민 노후자금으로 키워낸 국내 대표 운용사가 외국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계 PEF가 새 주인이 될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정합성 문제, 해외 자본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연기금이 상당 부분 참여해 성장시킨 회사인데 외국 사모펀드에 넘기는 것은 공공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도 “이지스운용은 단순한 운용사가 아니라 사실상 한국 부동산 금융 인프라의 핵심 축”이라며 “경영권이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외국계 PEF로 넘어가면 국가 핵심 자산을 넘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 과정에서 이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외국계 사모펀드의 금융사 인수 이후 후폭풍 사례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과거 저축은행·캐피탈사 인수 과정에서 외국 PEF들이 잦은 재매각, 배당 확대,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조직과 시장에 불안정을 초래했던 전례가 적지 않아서다.
매각 공정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는 당초 ‘프로그레시브 딜(경매식 추가 입찰)’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본입찰 이후 뒤늦게 이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힐하우스가 인수가를 대폭 올리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했다. 본입찰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 냈던 흥국생명의 입찰가가 외부에 유출됐을 가능성까지 시장에서는 거론되고 있다. 힐하우스의 최종 가격(약 1조1000억 원)과 흥국생명의 본입찰 가격(약 1조500억 원)의 격차가 500억 원 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강력 대응에 나섰다. 흥국생명은 이날 공식 입장문에서 “이번 매각 절차는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한국의 부동산 투자 플랫폼을 노린 중국계 사모펀드와 거액의 성과보수를 노린 외국계 매각주간사가 공모해 만든 합작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매도인에게 부여된 재량의 한계를 넘어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이번 입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