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영석 전 부산 동구청장 “문화적인 것이 오래 가고 깊이 갑니다”

잘하는 것 계속 하면 삶 달라져
퇴직 후 13년째 영어 공부 매진
‘차 문화 견문록’ 등 매년 책 출간
지역 문화 발전에 다양하게 기여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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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에는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것, 잘 놀 수 있는 걸 해라. 그걸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더 좋다. 그렇게 5년 하면 삶이 조금씩 달라지고, 10년 하면 완전히 달라진다.”

퇴직 후 13년째 매일 아침 학원에 다니며 영어 공부를 이어오는 이가 있다. 올해로 76세이니 학원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학생이다. 부산시 기획관리실장, 부산환경공단 이사장, 부산 동구청장을 지낸 정영석 씨가 그 주인공이다. 정 씨는 지금 나이에도 “영어가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2014년에 퇴직하고 나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 2021년에는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도 땄다.

정 씨는 “퇴직 직후에는 부산에 들어온 크루즈 선장들에게 부산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2년 동안 쫓아다녔지만, 어디서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었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1998년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일본에서 한 달 동안 크루즈를 공부한 뒤 미국 마이애미와 중국 상하이를 다녀오며 부산 크루즈 산업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크루즈 선장들에게 부산을 제대로 소개하는 일에 오랜 공직 경력과 크루즈를 잘 아는 자신만큼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때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퇴직 후에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에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결심해, 2023년부터 <록명헌견현여행>, <지중해 낙양 교토>, <인문을 품은 자연>까지 매년 책을 한 권씩 출간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차 문화 견문록>은 차를 쉽게 알릴 목적으로 한중일의 유명 차 산지를 찾아간 기록을 담았다.

그는 “중국 차는 아편전쟁까지 일어날 정도로 유명하고, 일본 말차는 없어서 팔지 못하는 지경이다. 우리는 제사를 차례라고 부를 정도로 차 문화권이었는데 너무 커피에만 빠져 있어 안타깝다. 전통을 이어가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라고 말했다. 차를 준비하고 우려내어 마시는 방법과 순서를 행다법(行茶法)이라고 한다. 그는 “이게 되레 차를 멀게 만들고 있다. 차의 정신은 그게 아니다. 사람들이 술처럼 편하게 차를 마셔야 차 문화가 발전한다”라고 덧붙였다.

공직 퇴임 후에도 서면 소민아트센터 관장, 극단 고문 및 예술감독 등을 역임하며 지역 문화예술계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문화적인 것이 제일 오래 가면서도 깊이 간다”라는 평소 지론을 실천한 결과다. 문화를 가꾸는 데 힘을 보태자는 생각에 70대 5명을 모아서 칠오당(七悟堂)을 만들어, 매달 부산항 4부두 인근 협성마리나G7 빌딩에 마련한 문화공간 록명헌(鹿鳴軒)에서 만나고 있다. 선친은 토목 기술자로 부산항 4부두를 만들 때 소장을 지냈기에, 자신이 여기 있는 게 운명처럼 느껴진단다. 그는 “다음 책은 나무에 관한 내용인데 제목을 ‘할배 나무’로 정했다. 나무는 말을 안 하지만 말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무는 정면이 따로 없어서 어느 쪽으로 가든지 마주해 준다. 차나 나무처럼 말이 없어야지, 나처럼 말이 많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진주 검무, 나주 들노래 등 1970년대 예술문화행사 영상자료 64점을 디지털화해서 ‘동봉 이인희 선생의 오래된 문화예술기록’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인희 선생은 부산항일학생의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그의 장인이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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