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소외와 변화 그리고 대선 레이스
이현우 정치부장
소외가 변화를 추동한다. 외면은 반감을 키운다. 그러다 마침내 저항을 부른다.
2030세대의 외침은 소외의 산물이다. 이 시대 청년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상신호를 발신해 왔다. 노력해도 자꾸만 멀어지는 꿈, 시키는 대로 해봤자 별 볼 일 없는 세상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도 뾰족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기득권을 놓지 않는 기성세대는 2030세대가 가슴 깊은 곳에서 분출하는 푸념을 도외시했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 즈음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세대의 분노는 이제 세상을 휩쓰는 물결로 불어났다.
2030세대 거친 함성과
정치권 휩쓴 ‘이준석 현상’
4·7 재·보궐선거 결과는
소외된 민심의 산물
내년 대선·지방선거 눈앞
민심 소외감 살피는 게 관건
대세로 굳어진 ‘이준석 현상’엔 보수 야권 지지층의 묵은 소외감이 숨어 있다. 기성 정치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혈안이 돼 지지층의 요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낡은 모습에서 벗어나 혁신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안중에 두지 않았다. 보수 진영 중진들은 현 집권층을 향해 ‘내로남불’, 독선, 오만 등의 비난을 퍼부으면서, 자신들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면 구태를 털어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특권의식과 탐욕, 무능에 빠져 타락한 듯한 그들의 모습에선 희망을 읽어내기 힘들었다. 거듭된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자성하는 대신 서로를 탓하며 분열하는 모습만 노출했다. 유권자와 지지층은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싸움에만 열중했다.
내팽개쳐진 채 소외된 보수·중도층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받아줄 정치적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고심 끝에 그들은 결국 ‘0선·30대’ 청년 정치인을 선택하면서 기존 판을 직접 갈아엎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 지지층이 스스로 야당의 패권적 질서를 무너뜨린 것이다. 딱히 대안이 없을 때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에 열광하곤 한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집권층의 독선적 태도는 생각을 달리하는 상당수 국민들에게 소외감을 안겼다. 여권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치명적 과오를 뼈저리게 받아안지 못했다. 재·보선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깨달으며 자숙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장면에서도 상황에 맞지 않는 도덕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패착을 두기도 했다. 조용히 입다물고 있던 유권자들은 모질게 회초리를 휘둘렀다. 소외된 이들의 분노는 박형준 부산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반사이익을 안겼다. 국민의힘이나, 두 보선 후보자들이 스스로 영광스러운 승리를 쟁취해낸 것으로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야당은 원래 여당의 실수를 먹고 산다”는 말은 이번 재·보선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소외 현상이 누적되면 결국 큰 변화로 이어진다. 외면받은 민심이 폭발하면서 기존 질서를 전복하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와 ‘정치권 물갈이론’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 또 다른 소외가 싹트는 듯해 걱정스럽다. 당 대변인을 ‘토론 배틀’로 뽑고,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을 실시하겠다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능력주의’는 당내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민심의 색깔도 다시 여러 가지로 분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청년층 대한 관심과 배려가 또 다른 논란을 부르기도 한다. 25세 대학생을 1급 공무원 자리인 청와대 청년비서관으로 발탁한 데 대한 청년층의 비판이 만만찮다. 박성민 청년비서관을 보며 박탈감을 느낀다는 한 대학생은 아예 ‘박탈감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공격에 나섰다.
능력주의와 물갈이론 등이 또 다른 소외를 누적시킬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 청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선 ‘능력과 젊음’의 바람에 편승한답시고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참이나, 오로지 능력만 뛰어난 인물에 과도하게 힘을 실어주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4·7 재·보선에 이어 다시 선거가 시작됐다. 내년 대선이 250여 일 남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도 이어진다. 경선 연기론으로 어수선하던 더불어민주당은 28일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대선 절차를 착착 진행한다. 보수 진영에선 대부분의 대선 주자가 수면 위로 떠올라 내부 대진표가 대략 짜여졌다. 보수 야권도 자체 당규에 따른 경선 절차를 이어갈 예정이다. 민심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은 까닭에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정치가 이리저리 자유분방하게 흐르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외면받은 소외감은 언젠가 성난 모습으로든 분출된다. 양질전환의 법칙에 따라 쌓이고 쌓이면 결국 변화가 온다.
민심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살펴야 하는, 변화무쌍한 진리일 뿐이다. 이어질 대선 과정에선 어떤 소외 현상이 심판자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과연 누가 ‘소외’를 제대로 살펴 다독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