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로 써 내려간 그들의 ‘유리 일기’
예술가들이 유리로 ‘일기’를 쓴다면?
유리 예술가 이재경과 설치 미술가 이정윤의 2인전 ‘GREEN RIVER’에서는 같은 재료, 다른 작업으로 색다름을 주는 유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 카린에서 열린다. ‘카린’은 갤러리 메르씨엘 비스가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전개하는 현대미술연구소가 되겠다는 취지로 지난 4월 이름을 바꾼 공간이다.
이재경 작가는 시간과 음악을 유리로 녹여 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일본 타마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유리 예술을 배운 이 작가는 자신을 ‘유리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원래 조형 도자 작업을 했다. 해외에서 유리로 되어 있는 조형물을 보고 유리에 관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가의 유리 다루는 솜씨는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이탈리안 테크닉을 사용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작품을 선보인다.
유리예술가·설치미술가 2인전
이재경 “소리·시간 유리에 녹여”
이정윤 “유리 위 꽃 보내는 의식”
이달 28일까지 달맞이언덕 카린
이재경 작가는 자신이 들은 소리와 사유의 시간을 이미지화해서 유리에 남긴다. 그가 담아내는 소리는 발소리, 기차 소리 같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일기를 쓰듯 매일 아침 ‘오늘의 컬러’를 선택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컬러별 재료가 조금 남은 것들을 선택해서 작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 작품 하나하나의 색깔이 다 다르다. 다시 만들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영롱한 빛의 유리구슬, 흘러내리는 파랑을 품은 유리잔, 푸른 눈동자를 보는 듯한 유리 문진…. 이재경 작가의 작품은 아름다운 형(形)과 색, 완벽에 가까운 균형감을 보여 준다. “내 것을 죽이는 게 목표다. 내가 익숙한 형태와 사이즈는 남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심플하게 전달하고 싶다.”
이정윤 작가는 핑크색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로 유명하다. “20~30m 되는 공간을 코끼리 공기 조형물로 채우는 작품을 했다. 조용히 내면을 바라보는 작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이재경 작가에게 블로잉을 배우며 유리로 드로잉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더운 유리 공방에서 꽃이 금방 시드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죽으면 한 줌 재가 남는 것처럼 꽃들을 보내 주는 의식을 해 보기로 했다.
유리에 꽃을 올리고 색색의 유리 가루를 뿌려서 가마에 넣고 굽는 퓨징 기법을 사용했다. 이정윤 작가는 일기처럼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색과 모양으로 유리 가루를 뿌렸다. 때로는 3장의 색유리를 겹쳐서 한꺼번에 녹이는 작업도 해 봤다. 유리 위 꽃과 잎은 타서 사라지며 흔적을 남겼다. 그 위에 흩뿌려진 유리 가루들은 어떤 때는 안개 같고, 어떤 때는 물방울 같은 무늬를 만들어 냈다.
이정윤 작가의 작품은 지난달 나온 정가 가수 안정아 씨의 ‘내게 남은 여름’ 싱글 앨범 재킷 사진으로 사용됐다. “들풀도 화려한 꽃도 사라지고 나니 다 비슷하더라. 오히려 주변의 흔한 꽃이 더 예쁘게 보일 때도 있다. 사라진다고 해서 살았던 시간이 다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주인공이든 주변인이든 별 차이가 없다. 그냥 살아가는 각자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리는 겉으로는 견고하지만, 깨지기 쉽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GREEN RIVER’전에서 이재경·이정윤 두 작가는 다양한 삶이 유리 액체가 되어 녹아 흐르는 시처럼 관람객에게 다가가기를 희망한다. ▶‘GREEN RIVER’=28일까지 카린. 051-747-9305.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