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 골드바·골드뱅킹 연일 완판
은행 골드바, 지난해 20배 팔려
금 투자 골드뱅킹에도 자금 몰려
은으로 눈 돌리는 투자자도 생겨
국제 시세보다 국내 가격 비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자 금(金)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의 대표적 금 투자 상품인 골드바와 골드뱅킹 판매도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골드바 판매가 어렵다는 소식에 금을 찾는 이들이 더 늘어나는 등 이른바 ‘포모(FOMO·유행에 뒤처지는 두려)’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월 1~13일 골드바 판매액은 총 406억 345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동기 판매액(135억 4867만 원)의 3배, 전년 동기 판매액(20억 1823만 원)의 20배에 달하는 유례없는 규모다.
5대 은행의 하루 골드바 판매액은 이달 3일만 해도 20억 원 수준이었으나, 5일 40억 원에 육박했고, 7일 50억 원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증가했다.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에 관세 인상을 예고한 영향으로 국제 금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은 시점과 맞물렸다.
특히 골드바 주요 공급처인 한국조폐공사가 은행들에 골드바 공급을 잠정 중단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 12일 이후 판매액은 더욱 늘었다. 5대 은행 판매액은 지난 11일 49억 8007만 원에서 12일 57억 4101만 원으로 늘었고, 13일에는 108억 3217만 원으로 뛰어 100억 원을 넘겼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선 영업점에 골드바 구매 문의가 빗발쳤다”고 전했다.
골드바 품귀현상이 벌어지는 동안 대체상품에도 관심이 쏠렸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지난 13일 기준 골드뱅킹 잔액은 총 8969억 원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골드뱅킹은 통장 계좌를 통해 금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3개 은행 잔액이 9000억 원에 육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2%대로 뚝 떨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고객들이 금통장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은 투자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부쩍 많아졌다.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던 은 가격은 이후 횡보 흐름을 지속했지만, 최근 금 가격 상승과 함께 우상향 조짐을 보인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은행의 2월 1~13일 실버바 판매액은 총 5억 2889만 원으로, 이미 전월 동기(3422만 원)의 15배를 넘겼다.
국내 금 투자 수요가 폭증하면서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금현물시장인 ‘KRX 금시장’의 시장가가 국제 금시세보다 비싼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4일 한국거래소 KRX금시장에서 1㎏짜리 금현물(금99.99_1㎏) 1g은 16만 8200원으로 전 거래일 대비 3.8% 가량 오른 가격에 거래됐다. 같은 시각 국제 금 가격은 1g당 13만 5000원대로, 괴리율(가격차)이 약 24%에 달했다. 국내에서 KRX금시장을 통해 금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해외보다 금을 20% 이상 웃돈을 주고 산 셈인데, 국내 금 현물 가격과 국제 시세가 20% 이상 벌어진 것은 2014년 KRX금시장 개설 이후 처음이다.
원화 마켓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급등할 때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생기는 것처럼 금도 국내 수요가 단기간에 급증하면서 동일한 현상을 겪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금 현물 가격 괴리율이 상당한 경우 국제 시세가 변하지 않아도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나섰다.
한편 금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각국 중앙은행들은 앞다퉈 금 보유량을 적극 늘리고 나섰지만 한국은행은 나홀로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실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해 말 기준 104.4t의 금을 보유했다. 한은의 마지막 금 매입은 지난 2013년 김중수 전 총재 시절 20t이다.
현재 한은이 보유한 금은 매입 당시 가격으로 표시되는데 지난달 말 기준 47억 9000만 달러 규모로 전체 외환보유액의 1.2%에 불과하다. 문제는 한은의 기조가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적극 금을 사들이는 흐름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3년 연속으로 총 1000t이 넘는 금을 매입했다.
다만 한은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금 매입에 여전히 부정적 입장이다. 먼저 낮은 유동성을 거론한다. 금은 주식이나 채권과 비교해 유동성이 매우 낮아 즉시 현금으로 바꾸기 어려운데 상시 현금화가 필수인 외환보유액 성격상 매력이 떨어진다는 게 한은 판단이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