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 불꽃 영화 인생 신나리 감독,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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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다큐 10여 편 남기고 올 3월 타계
고인 영화계로 이끈 '사부' 김영조 감독
일기·영상 등 바탕 추모 다큐 제작 나서
제목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고인이 정해
"영화인들에 영화 가치 묻는 삶 기억을"


신나리 감독 추모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서는 김영조 감독이 고인의 일기 모음집을 앞에 두고 그의 삶을 회상하고 있다. 김희돈 기자 신나리 감독 추모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서는 김영조 감독이 고인의 일기 모음집을 앞에 두고 그의 삶을 회상하고 있다. 김희돈 기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에 열정을 바친 부산의 독립 다큐 영화인 고 신나리 감독. 그의 불꽃 삶을 좇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된다. 2025년 3월 3일, 47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시네마 천국’으로 홀연히 떠난 신 감독의 삶이 스크린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다큐 제작은 신 감독이 ‘사부’라 부르며 따르던 김영조 감독이 맡는다. 동의대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인 김 감독은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의 다큐 ‘지석’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영상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김 감독의 책상 위에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제목의 책이 놓여있었다. 신 감독이 1년여 투병 과정 중 남긴 일기 모음집이다. 유족 보관용으로 낸 것인데, 신 감독과 같이 영화를 공부했던 문정임 감독이 출판비를 부담했다. 단편영화 ‘정인’(2021)을 연출한 문 감독은 부산의 한 출판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다.

신 감독은 일기만 남긴 게 아니다. 병실에 다큐 촬영용 카메라까지 두고 자신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여기에다 생전 신 감독이 발표한 작품 중 편집 과정에서 빠진 영상들까지 외장하드에 담겨 김 감독의 사무실로 옮겨져 있다. 김 감독은 신 감독 남긴 일기와 병상 영상기록, 그리고 마무리하지 못한 작품 촬영분까지 그러모아 다큐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제작에 나선다. 일기 모음집 제목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추모 다큐 타이틀로도 사용된다. 신 감독 스스로 자신의 병상 다큐 제목으로 미리 정해 뒀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자신의 사후 제작되는 추모 다큐가 될 줄 몰랐다. 김 감독은 최근 부산영상위원회의 장편 다큐멘터리 단계별 지원 사업 기획개발지원작에 선정되면서 추모 다큐 시나리오 작업을 앞두고 있다.

신나리 감독이 투병 중 남긴 일기 모음집. 신 감독과 영화 공부를 같이 한 동료 문정임 감독이 비용을 부담했다. 빛누리출판사 제공 신나리 감독이 투병 중 남긴 일기 모음집. 신 감독과 영화 공부를 같이 한 동료 문정임 감독이 비용을 부담했다. 빛누리출판사 제공
신나리 감독 일기 모음집에 수록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포스터. 신 감독이 자신의 병상 다큐를 만들 생각으로 직접 제목을 정하고 그림을 붙여 만들었다. 빛누리출판사 제공 신나리 감독 일기 모음집에 수록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포스터. 신 감독이 자신의 병상 다큐를 만들 생각으로 직접 제목을 정하고 그림을 붙여 만들었다. 빛누리출판사 제공

김 감독은 고인을 영화의 세계로 이끈 당사자이기도 하다. 둘은 영화제작 워크숍 강사와 수강생으로 처음 만났다. 김 감독이 기억하는 신 감독은 진정 영화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신 감독의 삶을 생각하면, ‘이 사람 정말 영화를 사랑했구나’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게 있어요. (영화계 선배인)저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거죠. ‘진정 영화를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을 저는 물론이고 영화인 전체에게 던지는 느낌이랄까.”

김 감독은 이런 의미에서 “다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신나리 감독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나를 포함한 영화인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신 감독 스스로 정한 제목에 대해서는 “신 감독은 영화를 생각하고 보고 만들 때 스스로 가장 행복하고 예뻤을 때라고 생각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그러면서도 “영화가 당신의 모든 것을 바꿀 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추모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이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신나리 감독이 투병 중 대나무 숲을 찾아 활짝 웃는 모습. 빛누리출판사 제공 신나리 감독이 투병 중 대나무 숲을 찾아 활짝 웃는 모습. 빛누리출판사 제공
신나리 감독이 촬영한 영상물이 담긴 하드 디스크. 김영조 감독은 이 영상물과 일기 모음집을 바탕으로 신 감독 추모 다큐를 구상하고 있다. 김희돈 기자 신나리 감독이 촬영한 영상물이 담긴 하드 디스크. 김영조 감독은 이 영상물과 일기 모음집을 바탕으로 신 감독 추모 다큐를 구상하고 있다. 김희돈 기자

신나리 감독은 극영화 ‘그 자리’(2015) 이후 ‘천국 장의사’ ‘9월’(2017) ‘녹’ ‘붉은 곡’(2018) ‘달과 포크’(2020) ‘8부두’ ‘불타는 초상’ ‘마을영화프로젝트 깡깡이’ ‘아날로그 다이어리’(2021) ‘엄마의 워킹’ ‘뼈’(2022) ‘미조’(2024)’ 등 역사와 사람에 천착한 다수의 다큐 작품으로 부산은 물론 우리나라 독립다큐 영화계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장편 다큐 ‘녹’으로 제20회 부산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엄마의 워킹’으로 제2회 금천패션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달과 포크'가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상영됐을 당시의 신나리 감독. 빛누리출판사 제공 다큐멘터리 '달과 포크'가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상영됐을 당시의 신나리 감독. 빛누리출판사 제공

추모 다큐를 제작하는 김영조 감독은 신 감독이 ‘9월’과 ‘불타는 초상’ ‘엄마의 워킹’을 연출할 때 촬영을 맡았다. 신 감독 역시 영도 배경 다큐 ‘그럼에도 불구하고’(2015) 조연출을 시작으로 ‘원더풀 투나잇’(2022)등 김 감독 작품 제작에 여러 번 참여했다.

이르면 내년 말께 선보일 신나리 감독 추모 다큐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 앞서 신 감독 자신의 유작 ‘도반’이 먼저 공개될 전망이다.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지원작으로 선정됐던 ‘도반’은 전통 도자기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사기장을 담은 장편 다큐로, 신 감독과 함께 제작에 나섰던 동료 영화인들이 편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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