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을 살아도 하고 싶은 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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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박문주 사무총장 비서국장 대행

2006년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WHO(세계보건기구)에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된 한국인 여성이 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박문주 씨다. 거의 모든 국제기구의 문을 두드려 100번도 넘게 떨어진 끝에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박 씨는 WHO 사무총장실 비서국장 대행이자 독립자문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사로 성장했다. 그는 WHO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의 멘토 역할까지 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해 연말 가족과 함께 휴가차 고향 부산을 찾은 박 씨를 만났다.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사태에 대한 대비는 잘되어가는지, 요즘 유엔의 분위기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는 WHO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부터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박문주 씨가 일반 비행기가 다니지 않는 오지 출장을 갈 때는 유엔에서 운영하는 경비행기를 이용한다. 본인 제공 박문주 씨가 일반 비행기가 다니지 않는 오지 출장을 갈 때는 유엔에서 운영하는 경비행기를 이용한다. 본인 제공

박문주 씨는 7공주집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이 유별난 가족의 사연은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행복이 가득한 집’에 소개되기도 했다. 92학번으로 들어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이탈리아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하필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전거 도둑’ 같은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하니 이탈리아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단다. 옷 가게를 하던 아버지에게 이탈리아에 가서 패션 공부를 하겠다고 내건 명분도 주효했다. 하지만 패션은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았고, 친구들 따라 지원해 혼자 합격한 곳이 명문 보코니 대학 MBA 과정이었다. 학위를 마친 뒤에는 유명 종합병원 마케팅실장으로 스카우트되었다.

직장에서는 인정받았고,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서 술 마시고 놀았다.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던 시절이었다. 그 생활도 5년이 지나자,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국제 NGO(비정부기구)에 지원했다.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NGO는 다 도전했지만 한결같이 문전박대였다. 나이가 많아서, ‘과한 스펙(Over-Spec)’이어서…. 떨어뜨리는 이유도 참 가지가지였다.


박문주 씨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당시 코소보 오스마니 대통령과 WHO 사무총장과의 대담에 참가했다. 본인 제공 박문주 씨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당시 코소보 오스마니 대통령과 WHO 사무총장과의 대담에 참가했다. 본인 제공

시간을 두고 방법을 모색하자며 2004년 영국의 명문 요크대학 보건경제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논문을 쓰기 위해 WHO의 인턴십 과정에 지원해 운 좋게 합격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턴을 하며 내부 세미나를 부지런히 쫓아다녔고, 틈날 때마다 조언을 구하면서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2006년 2월 드디어 풍토·열대병 관리과에 전문 직원으로 채용됐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돌이켜 보니 국제기구마다 WHO는 협력 사업이 많은 A 학교, ILO(국제노동기구)는 또 B 학교를 나오면 유리하다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면 유학할 학교와 지도교수를 정할 때부터 이 같은 사항을 미리 고려하면 좋겠다.

박 씨는 그동안 WHO의 공중보건 위기 대응과 긴급 상황 처리 등을 감독·평가하는 독립자문위원회를 책임져 왔다. 얼마 전부터는 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을 가까이 보좌하는 사무총장실 비서국장 대행까지 겸임하고 있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2017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제8대 WHO 수장으로 선출됐고, 2022년 연임되어 2027년까지 WHO를 이끈다. 박 씨는 코로나19 대응 데이터 수집·분석, 전략 지침 발간 등 팬데믹 대응과 관련된 중요한 업무에도 참여했다.

그는 “코로나를 담당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었지만 총장실에서는 전체 정책 결정과 미디어 대응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사무총장실에서는 매일 사건이 터졌다”라고 말했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한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우리는 문주 씨가 자랑스럽습니다. 문주 씨 덕에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할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박 씨에 대한 신뢰와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박문주 씨는 콩고 내전 지역인 부템보에 에볼라병 대응 조사 출장을 갔다. 본인 제공 박문주 씨는 콩고 내전 지역인 부템보에 에볼라병 대응 조사 출장을 갔다. 본인 제공

하지만 박 씨는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를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WHO 회원국들이 2021년 결의한 ‘팬데믹 조약’이 아직도 표류하는 데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마감 시한인 올 5월을 넘겨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드러난 백신과 치료제의 불평등한 접근, 정보 공유 부족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조약조차 제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WHO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WHO는 사실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WHO 탈퇴 절차를 시작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분담금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WHO 예산의 20%가까이 내는 최대 재정 후원자였다. WHO는 재정적 위기에 따라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만 600명을 해고하고, 모든 신규 채용까지 취소한 상태다.

박 씨는 WHO가 어려워질수록 제6대 이종욱 사무총장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 총장은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올랐지만, 회의 중에 쓰러져 61세로 별세하고 말았다. 박 씨는 이 총장이 WHO의 개혁을 위해 홀로 분투하다 돌아가셨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 총장을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씨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이 총장의 장례식을 앞두고 WHO 직원들에게 레이코 씨가 보낸 단체 메일이 계기였다. “부조는 받지 않습니다. 꼭 내고 싶은 분은 제가 일하는 NGO에 기부해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그런 원칙을 먼저 내세우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지난해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 때 박문주 씨가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과 함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본인 제공 지난해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 때 박문주 씨가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과 함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본인 제공

박 씨는 시키는 대로 NGO에 기부하고, 애도의 뜻을 표하는 이메일도 보냈다. 몇 달 뒤에 레이코 씨가 제네바에 왔다가 그를 만난 뒤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게 된 것이었다. 팔순이 넘는 나이의 레이코 씨는 지금도 페루의 가난한 마을에서 현지 여성들과 함께 뜨개질을 하며 알파카 울을 팔아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한다. 박 씨는 오는 5월에 열리는 WHO 총회장에서 이 사무총장 추모 20주년 행사를 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거의 잊힌 한국인 이 총장을 기억하고 챙길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서다. 페루에 있는 레이코 씨를 제네바로 초청했던 10주년 행사도 그가 먼저 제안했다.

매년 5월 제네바에서는 WHO 194개 회원국 대표단(대개 보건부 장관급)이 참석하는 세계보건총회가 열린다. 덕분에 박씨는 재직 기간 한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거의 다 만나봤다. 그가 보기에 안타깝게도 한국은 돈을 쓰면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나라다. 반면에 선진국도 아니고 돈도 안 쓰면서 WHO에 와서 자국 이익에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들 국가는 관심도 많고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알지?”라고 놀랄 정도로 지식도 많아 온갖 잔소리와 훈계를 늘어놓는다. 말이 많으면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이치다.

한국은 세계 9위 규모의 WHO 의무 분담금을 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에 관심이 크지 않아, 국제 무대에서 위상이 떨어지는 편이다. 박 씨는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에 당연히 해야 할 요구도 하지 않는다. 한국에 유리하게 해달라든지, 우리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왜 하지 않느냐”라고 답답해했다.


박문주 씨는 박문주 씨는 "잠깐을 살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가 믿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종호 기자

그는 “어린 시절에는 국제기구에 들어오는 데 전부를 걸었지만, 막상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과거를 돌아봤다. 이어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자 협력 기구 UN이 과연 필요한지, 다국적 협력이 유용한지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박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을 살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가 믿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제기구 후배들이 그를 많이 믿고 의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국제기구에서는 개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국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밀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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