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여 선배들, 지금 뭐하고 있을까? [비즈앤피플]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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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구원 분석 ‘이공계 여성 경로’

부산 전체 이공계 산업기술인력 중
여성은 달랑 792명… 4.1%에 그쳐
2023년 기준 대학 전공자는 31.9%
탈부산·관련 업 취업 실패 현실 반영
나이 들수록 관련 업종 종사율 줄어
“도시 경쟁력 제고 차원 통합 지원을”

요즘은 화학공학을 전공한 것도, 처음에 전공을 살려 조선소에 취업한 것도 후회한다. 출산 후 전공이나 경력과 관련해 부산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얼마 전 아는 언니와 ‘지금 애 키우면서 놀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전부 공대’라는 이야기를 했다. 부산에서 취업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이공계를 전공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게임 분야의 데이터분석가로 취직하고 싶다. 수도권으로 가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산에서는 선택지가 거의 없어서 이 회사를 선택하긴 했지만, 1~2년 정도 버티면 이직하기 위한 경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있지만, 내가 가고 싶은 회사가 부산에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공대 아름이’는 옛말이 됐다지만, 부산 산업 현장에서 이공계 여성을 만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부산 19개 대학에서 매년 수천 명씩 배출되는 이공계 여성 인력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부산연구원이 최근 펴낸 ‘이공계 여성의 경로 분석과 부산지역 라이즈 체계 실천 전략과 과제’ 보고서는 이들의 경로를 들여다본다. 그 끝에는 부산 산업 구조와 도시 경쟁력의 현주소가 있다.

■부산을 떠나거나 전공을 떠나거나

산업통상부의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부산의 산업기술인력 중 이공계 전공자는 1만 9277명이다. 전국 이공계 산업기술인력(88만 7984명)의 2.2%에 불과한 수준으로, 2014년 4.2%에서 반 토막이 났다. 여성은 더 심각하다. 792명만이 부산에 있는데, 전국 여성 이공계 산업기술인력(12만 2087명) 중에서는 0.6%에 그친다. ‘제2 도시’ 위상이 무력한 수준이다.

부산 주력 산업인 조선, 섬유, 자동차, 가죽, 가방 및 신발 등은 물론이고 반도체, 바이오·헬스, 소프트웨어, IT 비즈니스 등 미래 유망 산업에서도 부산 이공계 여성의 몫은 미미하다. 이공계 졸업자가 전공을 살릴 곳이 많지 않고, 여성이 남성보다 더 그렇다는 뜻이다.

부산 전체 이공계 산업기술인력(1만 9277명) 중에서 보면 여성 비중은 4.1%로, 전국(13.7%)보다 한참 낮다. 2014년 6.0%에서 매년 상승해 2020년 전국 평균보다 높은 12.4%를 찍고,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줄어든 수치다. 전국적으로는 코로나19 시기에도 여성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특히 더 좁은 문 앞에 선 부산 이공계 여성의 처지를 짐작할 만하다.

반면 부산 지역 대학 이공계(공학계열·자연계열) 졸업자를 보면 여성 비율은 2023년 31.9%까지 늘어났다. 인력은 배출되는데 타 지역으로 유출되거나 전공을 살려 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로 부산에서 과학기술을 전공하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2023년 기준 25.4%에 불과하다. 정보통신기술 전공자 중 관련 직업 종사율은 15.7%까지 떨어진다. 임금 차이도 크다. 부산의 정보통신 전문가의 월평균 임금은 350만 원으로, 전국 평균 450만 원보다 100만 원 낮다. 연봉으로 치면 1200만 원이 차이가 난다.

부산 과학기술 관련 전체 직종의 여성 종사자는 2023년 기준 전체 7만 9423명 중 1만 790명(13.6%)인데,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이공계 현장에서 사라지는 양상도 나타난다. 여성 비율이 20~24세(46.9%)에서는 남성(53.1%)과 비슷하다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점차 낮아져 65세 이상에서는 3.9%로 뚝 떨어진다.

■지방민·여성 ‘이중 장벽’

부산연구원은 경력준비기, 경력형성기, 경력중단기, 경력안정기에 해당하는 부산 이공계 여성 19명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방 이공계 여성이 지방민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주해야 하는 ‘이중 장벽’을 보여준다.

나노융합전공 4학년생인 C 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공모전·인턴십·자격증 등 기회와 정보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수도권 학생들보다 시간과 비용을 더 들여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부산 사기업은 여성을 안 뽑는다는 말에 대학원을 택하거나, 남성이 다수인 전공에서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문화나 남성 신체 기준의 실험 장비 때문에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대학원생도 있었다.

부산에서 취업해도 구직 활동은 끝나지 않는다.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한 지 9개월 차인 개발자 D 씨는 “우선 서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체계가 잡힌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다음 경력직으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목표인데, 그런 회사는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고 생각해서다. 남성 동료와의 임금 격차와 그것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도 이직을 결심한 이유였다.

건축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건축사무소에 취직한 30대 E 씨는 잦은 야근과 과중한 프로젝트에도 인력이 충원되지 않자 입사 5년차에 퇴사했다. 이후 다시 얻은 건축설계 계약직에서는 노력 끝에 성공한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1년 만에 만삭인 상태에서 계약 종료를 통보 받았다. 그는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다시 건축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연구진은 “부산 지역 이공계 여성들의 경력은 지역적 불리함, 성별 차별, 생존 전략의 필요, 출산·돌봄의 부담, 그리고 미비한 지원체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며 “이는 이들의 경력이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성별, 가족 구조가 교차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복잡한 진로 과정이라는 점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성차별 없는 일자리가 도시 경쟁력

보고서는 이공계 여성 인력의 유출과 경력 단절은 결국 지역 경제 전반에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고 강조한다.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부산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2차전지, 인공지능(AI) 등 미래 전략산업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 인재 양성과 경력 유지가 어려운 구조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부산연구원은 지난해 시작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 사업을 계기로 이공계 여성의 경력을 대학 단계뿐 아니라 전 생애주기로 통합 지원하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부산시도 2011년 제정한 ‘부산광역시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 조례’를 구체화하고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 등 관련 기관과 연계해 이공계 여성을 위한 부산형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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