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함께 시간을 견디는 일 [내 인생의 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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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한센병 요양원에 사는 할머니와 도라야키 가게 주인, 그리고 한 소녀의 이야기다. 할머니가 팥과 대화하듯 정성껏 앙금을 만드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 영화를 보는데 30년 전 소록도에서의 하루가 떠올랐다.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이라 녹동에 방을 잡고 배를 타고 들어갔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할아버지와 집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를 촬영하게 되었다. 가족사진을 보여주시겠다고 해서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앨범 위로 손가락이 사라진 뭉툭한 할머니의 손을 정신없이 찍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박카스와 떡을 내왔다.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네요.” 나는 먹지 못했다. 몇 번이나 사양한 끝에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그 후에 중증 환자들이 수용된 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적막한 복도 끝의 세면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쪽 팔은 손목만 남아 있었고 다른 손에는 냄비가 들려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그제야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두 눈은 희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그날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우호적인 말들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고맙습니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병에 옮을까 싶어서 할머니가 건넨 음식조차 거절했던 내가, 카메라를 드는 데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소록도의 가장 깊고 외진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보았다.

영화 후반부에 가게 주인과 소녀는 요양원을 찾아가 할머니와 함께 음식을 나눈다. 나는 울었다. 내 안의 손상된 자기 환멸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함께 앉아 음식을 먹고, 함께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사진은 그 시간의 기록일 뿐이다.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늘 빚진 기분이 든다. 그 빚은 아직도 다 갚지 못했다.

박태희 사진가·안목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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