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여섯, 첫 책을 출간하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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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반에 글쓰기반 참여
인생 처음 접한 글쓰는 재미
10년만에 ‘얼어붙은 입’ 출간
나와 그리운 가족 이야기 가득

여든 여섯에 첫 에세이집 <얼어붙은 입>을 출간한 권영현. 산지니 제공 여든 여섯에 첫 에세이집 <얼어붙은 입>을 출간한 권영현. 산지니 제공

여든 여섯에 첫 에세이집 <얼어붙은 입>을 출간한 권영현. 산지니 제공 여든 여섯에 첫 에세이집 <얼어붙은 입>을 출간한 권영현. 산지니 제공


“내 글은 저승에 가져갈 거고, 나는 염라대왕께 글공부를 하다 온 사람이라고 말할거야”

글쓰기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드러난다. 얼마나 대단한 작가일까. 최근 출간한 에세이 <얼어붙은 입>의 저자 권영현 씨. 작가라는 호칭은 아직 어색하다는 손사레에 인터뷰내내 권 선생으로 불렀다. 권 씨는 매일 창작을 이어간다는 건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얼어붙은 입>은 권 씨가 여든 여섯 인생에 처음 낸 책이다. 권 씨는 10년 전만 해도 창작으로 글을 쓴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스무 살에 한약사 자격증을 딴 후 66년동안 영도 한 자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다. 타고난 성실성과 실력덕분에 손님은 이어졌고 세 자녀 모두 전문직으로 성장시켰다.

무탈하고 안정적인 삶이었지만, 허전한 느낌이 몰려 왔다. 10년 전인 일흔 여섯살에 부산문화회관 글쓰기 교실을 찾아갔다. 당시 강사였던 정영선 작가는 20~30대 수강생들 속에 한 번도 창작 글쓰기를 해 본 적이 없다는 70대 노인을 발견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매번 숙제를 냈는데 도덕을 이야기하는 딱딱한 한두 문장이 전부였죠. 글쓰기는 다양한 형식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죠. 합평회 시간이면 매번 곤란했어요. 젊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상황이 몇 번 이어지자 안 오겠다 했는데 그래도 계속 나오시는 겁니다.”

그렇게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정 작가와 권 씨는 10년째 글을 매개로 교류하고 있다. 문화회관 이후로도 정 작가가 강사로 참여하는 다른 기관의 글쓰기 수업을 계속 따라다니며 들었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던 권 씨의 글이 어느날 정 작가의 가슴에 꽂혔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삼 년이 넘은 어느 날, 아버지가 네 엄마다 하며 마흔 살 정도 아주머니를 데리고 오시었다. 할머니께서 나를 부르며 새엄마이니 이제부터 엄마라고 불러야 된다고 하셨다. 나도 부르고 싶다. 그런데 안 된다.참 희한한 일이다. 아주머니 보기 죄송하다. 얼어붙은 입은 언제 녹을까.’ (‘얼어붙은 입’ 중에서)

책의 표제작인 ‘얼어붙은 입’이라는 몇 줄의 글을 들고 왔다. 추천사에서 정 작가는 “‘얼어붙은 입’ 몇 줄로 책을 몇 권이나 낸 소설가의 ‘야코를 죽여놓는 것 같았다. 얼어붙은 입이 언제 녹을까라는 마지막 문장을 볼 때 내 입이 얼얼해졌다”라고 표현했다.

아파서 한 번도 놀아주지 못하고 매일 투병하던 엄마만 기억하던 8살 아이에게 새 엄마가 생겼지만, 좀처럼 엄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솔직한 고백. 여든이 넘은 권 씨의 글에서 묻어나는 아이같은 순진함과 그리움은 강렬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 삶이 글로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힘들고 어려운 시절 묵묵히 함께해준 아내에 대한 마음, 딸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서툴고 투박한 표현으로 남긴다.

‘나는 할머니의 분신이다. 수유만 안 했다 뿐이지 나의 엄마다. 나는 할머니의 ‘그래 그래’였고 ‘하모 하모’였으며 ‘다독 다독’이었고 예쁜 강아지였고 예쁜 손자였다. (…) 나는 여태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친구를 만나지 못해 한스럽고 서글프다.’ (‘손’ 중에서)

‘나는 갈치의 가운데 부분을 아내의 접시에 담아주고 꽁지 부분은 내가 먹습니다. 고구마도 제일 못생기고 작은 게 나의 차지입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사랑의 표현이고 나름의 실천이었지요.’ (‘부부’ 중에서)

‘형수는 22살에 시집오셨으니 나에게는 65년 전 애인이다. 볼 것도 없는 시골 집에 요객도 많이 왔다. 나는 수줍어 근처에도 못 가고 저 멀리서 야 예쁘다고 했다. 겨우 불려 나와도 할머니 뒤에 숨기 바빴다.’ (‘형수의 초대’ 중에서)

‘내가 어느 날 사랑하는 당신을 남겨두고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한 번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너무 서운하고 안타까울 것 같아 이렇게 적어보오. (…) 혹 나를 다시 만나는 것이 당신에게 지겨울지 모르지만 나는 좋다오. 원컨대 당신도 어느 날 이생과의 인연이 다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겠소.’ (‘짝지에게’ 중에서)

책은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해 평생 삶의 터전이었던 부산 영도와 영세당 한약방 이야기, ‘저승으로 가져갈 노’라고 표현한 글쓰기로 확장된다. 저자는 “글쓰기를 만나고 마음 깊은 곳에 숨은 진짜 나를 찾고 그리운 엄마,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글쓰기반 동료가 신춘문예 최종심사에 오르면, 꼭 축하금을 전달하고 요산문학관이 힘들다는 소식에 조용히 후원금도 전달하기도 했다. 글쓰기 스승으로 만난 정영선 작가에게 자주 글 쓰는 이야기 좀 하자며 식사 초대를 한다.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첫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써 놓은 원고가 많아 벌써 두 번째 책을 고민하고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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