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어떻게 미국 의회를 움직였을까
액세스/우정엽
액세스/우정엽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 쿠팡을 차별한다? 대체 이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인가. 쿠팡은 한국에서 장사를 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번다. 정부는 쿠팡을 이용하는 대다수 국민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자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쿠팡이 대미 로비로 미국 의회를 움직여 프레임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일단 화를 참고 ‘워싱턴은 로비로 움직인다’라는 부제가 달린 책 <액세스>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미국에서는 수녀들도 로비한다. 공교롭게도 저자가 근무한 현대차 워싱턴사무소 바로 앞에 수녀들의 로비 사무소가 있었다. 석유와 자동차업계는 규제 완화를 위해, 환경 단체는 규제 강화를 위해 로비한다. 심지어 연방 대법원도 의회를 상대로 로비한다. 로비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고, 하나의 정치적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미국에서는 로비하지 않는 쪽이 불리해진다.
미국에 아직도 고속철도망이 없다는 사실이 참 이상했다. 알고 보니 1989년 댈러스에서 휴스턴까지 90분에 달리는 고속철도 사업이 추진되어, 프랑스의 TGV 기술이 채택됐다. 고속철도가 달리면 비행기를 덜 타니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필사적이었다. 의회 로비로 주 예산을 쓰지 못하게 하는 입법이 추진됐다. 농지가 수용될지 모를 농민들도 반대 운동에 끌어들였다. 호텔, 패스트푸드 업체들도 불러왔다. 결국 텍사스 TGV 사업권은 5년 만에 취소되고 말았다.
지난해 3월 워싱턴의 한 저택이 워싱턴 역사상 세 번째로 비싸게 팔린 이야기도 흥미롭다. 구글맵에서 그 집의 위성 이미지는 바로 지워졌다. 마크 저커버그가 집주인이기 때문이다. 저커버그의 집에서 백악관까지는 차로 불과 10분 거리. 제프 베이조스, 에릭 슈도 워싱턴으로 이사 왔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식탁에 앉아 있지 않으면 메뉴에 오른다’라는 속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로비를 한국식 청탁과 뒷돈으로만 생각하면 번지수가 틀렸다. 미국에서 로비는 제도 안에서 움직이고, 정치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돈이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접근권을 만들고, 접근권이 영향력을 만든다’라는 표현이 절묘하다. 특히 국가 대 국가의 로비 성과는 단기적인 활동에서 나오지 않는다. 수십 년에 걸친 관계의 축적이 중요하다.
일본이 대미 로비에 쓰는 돈만 놓고 보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한국보다 로비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에 일본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 워싱턴의 싱크 탱크를 지원하고, 미국 의원과 의회 보좌관을 일본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수십 년째 이어 오고 있다. 일본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일본이라고 단기 성과를 중시하지 않을 리 없다. 이들도 당장의 성과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장기 투자를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단기 성과만 요구하고 장기 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면, 이미 수십 년 동안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 한국이 일본 수준의 영향력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고, 중단없이 지속하는 것뿐이다”라고 조언한다. 선거는 정치인을 바꾸고, 로비는 정책을 바꾼다. 우정엽 지음/수연사/264쪽/2만 5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