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총선 '색깔 투쟁'? 중요한 건 알맹이!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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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부터 13일 동안 공식 선거운동
각 정당 정체성 담은 색깔 싸움 치열
겉치장보다는 내실 다지기 주력해야

“색으로 표심을 꽉 잡아라!”

바야흐로 ‘색깔 투쟁’의 시즌. 색깔은 4·10 총선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띄운 승부수다. 눈에 단박에 각인되는 색은 백 마디 말보다 호소력이 짙은 법. 지지층 규합에도 이미지 쇄신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선거 때마다 ‘컬러 마케팅’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 14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을 찾아 부산지역 총선 후보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 14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을 찾아 부산지역 총선 후보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 정치적 무기, 색깔

색깔이 얼마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지 최근의 ‘신경전’ 사례가 잘 보여준다. 지난 9일 프로축구 충남아산FC 개막전 현장. 국민의힘 소속인 김태흠 지사와 박경귀 아산시장이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나와 시축을 한 게 문제가 됐다. 원래 홈팀 유니폼은 파란색인데 굳이 붉은 옷을 착용한 것은 선거용 아니냐는 의혹. 파장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29일 MBC 뉴스 일기예보 화면에 미세먼지 농도를 나타내는 숫자 ‘1’이 커다란 파란색으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이나 기호와 유사하다는 의심이 터져 나왔다. 이를 놓고 사람들이 이편저편으로 나뉘었다. 지금도 갑론을박, 설왕설래가 계속된다.

28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색깔 투쟁은 이제 전초전을 지나 막판 전면전으로 치닫는다. 전국 곳곳이 빨주노초파남보, 알록달록 색상의 향연. 정당 현수막과 당을 상징하는 점퍼·선거복, 선거 관련 유세 용품들이 유권자들의 망막을 물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15일 부산 기장군 기장시장을 방문해 지역 총선 후보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15일 부산 기장군 기장시장을 방문해 지역 총선 후보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 정당 상징색 변천의 역사

정당 색깔은 눈에 잘 띄는 원색이 대부분이다. 상징색은 대체로 갈린다. 보수는 붉은색 계열, 진보는 푸른색 계통. 이는 곡절의 변천사를 겪은 끝에 굳어진 것이다.

가장 극적인 색을 꼽자면, 단연 빨강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0년간 사용해 오던 파랑을 과감히 버리고 빨강으로 상징색을 교체했다. 보수의 색깔은 한나라당 때까지 파란색이었다. 불온의 상징이던 빨강의 족쇄를 벗어던진 결과는 총선 승리였다. ‘레드 콤플렉스’로부터의 정서적 해방. 보수가 스스로 빨강을 품으니 진보 쪽에서도 한결 홀가분해질 수밖에. 이후 빨강은 보수의 색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 국민의힘은 ‘ㄱㅎ’ 로고와 파란색의 결합을 시도했지만 현재는 단일한 빨간색으로 돌아온 상태다.

그 파랑을 상징색으로 가져온 것은 민주당이다. 원래 1987년 평화민주당 때부터 녹색과 노란색을 썼는데 2012년 총선·대선에 패하고는 파란색을 전면에 내걸었다. ‘안정’ ‘신뢰’ ‘청년’ 등의 이미지가 중도를 품는 외연 확장에 보탬이 됐는지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된다. 민주당은 ‘바다파랑’(2014년), ‘이니블루’(2016년)를 거쳐 여전히 파랑 계열을 견지한다. 지난 1월 파랑에다 보라와 초록을 보태 세 가지 색깔의 상징색을 내놓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002년 12월 19일 밤 서울 광화문 인근에 모인 노사모 회원들이 노무현 후보의 당선 확정이 발표되자 노란 풍선을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002년 12월 19일 밤 서울 광화문 인근에 모인 노사모 회원들이 노무현 후보의 당선 확정이 발표되자 노란 풍선을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 연합뉴스

■ 진보-보수 또렷한 색깔 구도

노란색은 어떨까. 노랑은 노무현의 색이었다. 대선 승리로 전국에 노랑 물결이 넘쳤던 2002년,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노랑의 주인은 2013년부터 정의당으로 넘어갔다. 초록은 2016년 안철수 대표가 만든 국민의당 색깔이다. ‘녹색 돌풍’이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수당 합당 과정에서 다른 색에 섞이고 만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노란색과 녹색은 서로의 단짝이 되었다. 정의당과 녹색당이 뭉친 녹색정의당에서 두 색깔은 함께 쓰인다.

지금 제3정당을 노리고 있는 정당들의 색깔 싸움도 치열하다. 돌풍의 조국혁신당은 짙은 파란색(트루블루)을 중심으로 한 파란색 계열을 당 색깔로 채택했다. 주황은 개혁신당에서 오랜만에 빛을 봤다. ‘개혁’ 혹은 ‘대담함’을 상징하는 ‘개혁 오렌지’라는 별칭이 붙었다. 새로운미래는 밝고 역동적인 민트색(튀르쿠아즈 블루)을 선보였다.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표 색을 각각 따른다.

이로써 이번 총선의 색깔 투쟁은 진보의 푸른색 계열과 보수의 붉은색 계열의 대비라는 선명한 구도를 형성했다.


왼쪽부터 녹색정의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새로운미래의 정당 로고. 부산일보DB 왼쪽부터 녹색정의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새로운미래의 정당 로고. 부산일보DB

■ 화려한 외관보다 내실 기해야

색깔 정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선거철만 되면 유독 극성인데, 당의 정체성과 쇄신의 이미지를 통해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데 목적이 있다. 심지어 정당의 간판 색깔을 통째 바꾸는 시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표절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색깔은 곧 정치적 무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색깔이 정당의 본질일 수 없다. 중요한 건 구태를 벗고 쇄신 의지를 다져 실제 현실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의 사례가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진 보수 진영의 재건을 목표로 파격적인 색을 내놓았는데, 그 이름도 거창한 ‘밀레니얼 핑크’였다. 승부수는 통하지 않았다. 자기반성은 부족했고 내실 다지기보다는 겉치장에 치중했던 탓이다. 선거 참패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외관이 화려하다 해서 저절로 변화가 오는 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현실을 바꾸려면 그에 걸맞은 정책, 정강 등을 통해 내실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 진짜 실력을 갖춘 정당만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알맹이는 부실한데 겉만 바꾼다면, 그건 꼼수 아니면 속임수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했다. 국민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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