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 대통령, 기자회견서 영수회담 무성과 대안 내놔야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0일 취임 2주년에 앞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데 따른 소식이다. 이 수석은 “(기자회견을) 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는 식으로 다소 애매하게 말했지만,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공개 발언인 만큼 빈말은 아닐 테다. 윤 대통령이 실제로 기자회견을 가진다면 2022년 8월 17일 가졌던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무려 1년 9개월 만의 기자회견이 된다. 지난달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데 대한 실망과 아쉬움이 컸던 터라,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자못 크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행적에는 불통이라는 이미지가 늘 따라붙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 당시 약속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역대 대통령들이 통상적으로 해오던 신년 또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아무런 설명 없이 열지 않았다. 한때 관심을 모았던 출근길 ‘도어스테핑’도 2022년 11월 이후 중단했다. 윤 대통령의 말은 국무회의 모두발언 등을 통해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전달될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처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는다는 게 세간의 화제가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앞으로도 언론의 비판이나 제언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과 민심 사이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와의 지난 영수회담에서도 윤 대통령은 민심과 다소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년여 만에 열린 영수회담이라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지만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민생과 국정 현안에 대한 의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대신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여러 제안에 난색을 표하거나 침묵했을 따름이었다. 2시간 넘은 대화에도 합의문 한 장 나오지 않았다. “영수회담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차담회에 불과했다”는 일각의 혹평에도 달리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이 가졌던 기대와 관심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영수회담이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는 형편이다. 총선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게 이를 증명한다. 국민이 윤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불신의 고리를 끊으려면 윤 대통령 스스로 달라진 태도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취임 2주년에 즈음해 갖겠다는 기자회견은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진정한 민심을 접하는 최선의 통로가 기자회견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보여주지 못한 국정의 비전과 대안을 기자회견을 통해 충실히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다소 민감하더라도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그게 대통령으로서 민심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다.
[사설] 온라인에 맞선 동래 마트·전통시장 상생 협력 바람직
중국계 쇼핑 플랫폼 알리와 테무의 직격에 소규모 인터넷 쇼핑몰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알리·테무는 초저가 생필품을 앞세워 회원을 늘린 다음 신선식품 유통에까지 뛰어들어 파상 공세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상권까지 존폐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이미 모바일 앱 기반으로 식료품을 유통하는 ‘새벽 배송’ 등 온라인에 매출을 뺏긴 부산 도심의 대형마트는 줄줄이 폐점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망이 끊기면서 거주지 주변에서 음식 재료를 구입할 곳이 없어지는 ‘식품 사막’ 현상까지 나타난다. 일자리 감소와 정주 환경이 악화되는 것도 반갑잖은 부작용이다. 지역 경제의 실핏줄인 동네 유통망의 활로 모색이 시급한 이유다. 부산 동래의 전통 유통업계가 상생의 기치하에 온라인 플랫폼 공세에 공동 대응을 선언해 성과가 주목된다. 동래시장번영회, 명륜1번가번영회, 메가마트 동래점은 지난달 29일 ‘지역 상권 활성화와 동반 성장을 위한 상생 협력’ 협약식을 가졌다. 핵심은 ‘골목 상권의 적은 대형마트’라는 그간 인식과는 정반대로 ‘온라인 공세에 오프라인 공동 대응’ 깃발 아래 똘똘 뭉친 것이다. 예컨대 메가마트는 700여 곳의 음식점이 밀집한 명륜1번가에 주차 할인권을 제공하고, 상가는 메가마트에 별도 식자재 주문을 넣는 식이다. 메가마트 전단지와 광고 스크린에 동래시장 맛집·대표 상품을 소개하고 야외 행사장에서 특설 행사까지 추진한다. 동래의 시장·상가·마트는 3자 상생 전략으로 공동 이벤트와 홍보를 통해 상권 활성화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부산시가 기존 둘째·넷째 주 일요일인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5월부터 16개 구군별로 순차적으로 평일로 전환하기로 한 시점과 맞물려 확산 효과도 기대된다. 고물가로 전통시장 매출이 줄고, 상가는 휴·폐업이 늘어나 골목 상권이 고사 위기에 몰리는 가운데, 대형마트 역시 온라인의 공세로 폐점의 위기에 내몰리는 동병상련의 처지다. ‘지금은 온라인에 맞설 때’라는 동래의 의기투합 정신이 부산 전역에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 업계의 생존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의회는 대형마트도 새벽 배송 영업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중국계 쇼핑 앱의 공세에 발이 묶여 있던 대형마트 규제를 풀어 준 것이다. 법 개정을 기다리지 않고 지자체장에 있는 규제 권한의 틈새를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부산 유통가가 다시 활기를 찾으려면 ‘동래 사례’가 확대·발전된 제2, 제3의 상생 협력 모델이 자꾸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부산시 등 관련 당국이 행정·제도 측면의 오프라인 활성화 대책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조정되는 것으로 침체되어 가던 지역 상권이 활성화될 리 만무하다. 관련 당국이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 명심해야 한다.
[사설] 가덕신공항,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 도약 엔진 돼야
가덕신공항건설공단 출범에 맞춰 신공항의 건설과 운영 방향, 비전과 발전 전략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덕신공항 개발은 그저 지방 공항 하나를 더 건설하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다. 신공항이 24시간 안전한 관문공항과 부산 경제 도약을 이끌 엔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 부산일보사와 (사)동남권관문공항추진위가 29일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가덕신공항 비전포럼’을 갖고 신공항 발전 방향에 대한 모색에 나선 것은 뜻깊은 일로 평가된다. 이 자리에서는 가덕신공항 운영권 확보 및 지역 참여와 공항복합도시 구축 방안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공항 운영은 국내선은 한국공항공사, 국제선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전담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작용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인천공항을 통해 모든 장거리 국제노선을 장악하고 대형 항공사는 물론이고 LCC(저비용항공사) 허브까지 독점하는 구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공단 출범이 향후 부산시가 주도하는 부산국제공항공사 설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건설 공사 과정에서부터 지역 업체의 참여를 늘리고 건설 후 공항 운영도 시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부권 관문공항 위계와 독립적 운영권 확보는 2단계 확장과 글로벌 관문공항 육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가덕신공항은 배후에 678만㎡에 이르는 공항복합도시를 아우른다. 애초 초대형 항만과 스마트 공항을 중심으로 글로벌 물류 기업과 비즈니스가 어우러지는 글로벌 물류 비즈니스 거점으로 추진됐다. 이를 통해 남부권 혁신의 동력인 글로벌 허브도시로 비상한다는 전략이다. 세계 물류 시장에서도 항만 대형화와 항공 운송 수요 증가로 해운·항공·육상의 글로벌 복합운송 거점화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공항과 항만 배후의 자유로운 투자와 비즈니스 환경 조성을 위한 부산형 특구 개발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공항 개발 과정에서도 스마트 물류 혁신이 반영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핵심 전략은 서울 중심 수도권과 부산 중심 남부권의 두 경제 축으로 국가 발전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 남부 경제권을 이끌 핵심 인프라가 가덕신공항이다. 가덕신공항 개발과 운영의 지역 주도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과 부산의 두 바퀴로 국가 성장을 이끌 듯이 인천공항과 가덕신공항의 두 날개로 국가 도약을 견인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중앙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신공항의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부산시 참여를 보장하고 가덕도를 중심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물류 허브가 조성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이다. 이는 국가균형발전의 주요 전략인 남부 경제권 성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밀물썰물] K성형의 명암
서울 강남 압구정동은 ‘세계 성형수술 중심지’로 불리는 한국에서도 ‘성형 1번가’로 꼽힌다. 그 비싼 임대료에도 건물 1곳당 성형외과가 하나꼴로 입주해 있을 정도다. 건물 전체를 성형 등 미용 관련 콘셉트로 채운 곳도 있다. 전국에서 전교 1등 한 애들은 다 압구정에 모여 있다는 우스개도 성형외과 의사들을 빗댄 말이다. 이런 압구정이 최근 외국인 성형 관광객들로 다시 북적인다고 한다. 호텔마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다니는 외국인이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란다. 한국은 명실공히 성형 대국이다. 최근 미국 매체 〈인사이드 몽키〉가 국제성형의학회 데이터를 근거로 ‘미용성형 대국 톱 20’을 선정했는데 한국이 인구 1000명당 8.9건으로 1위였다. 20대 한국 여성 4명 중 1명이 쌍꺼풀, 코 수술을 받았을 것으로 매체는 추정했다. 한국은 성형외과 의사들의 기술력도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미국은 물론이고 남미나 동남아시아 의사들이 배우러 온다. 이런 배경 때문에 K팝 아이돌이나 K드라마 주인공처럼 되겠다며 한국을 찾는 성형 관광이 성황을 이루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성형 대국으로 급성장하는 동안 한국의 성형 문화는 외신의 조롱과 비난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참가자들의 외모에 차별성이 없다며 ‘성형 시스터즈’로 조롱하는 보도가 논란을 촉발했고 강남 성형외과에 설치된 턱뼈를 가득 담은 유리 상자를 ‘턱뼈탑’으로 희화화하는 보도도 있었다. 여성들의 뾰족해진 턱을 빗살무늬토기에 비유하며 놀리는 글이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대한민국 성형 대국이 자부심이자 고통인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성년자까지 성형으로 몰리는 외모지상주의 문화의 이면을 비판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가 처음으로 60만 명을 넘어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지난 29일 발표했다. 그런데 이들 한국 의료 관광에 나선 외국인 환자 중 절반 이상은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찾았다. 국가별로는 일본, 중국, 미국 순이었다. 필수의료 공백에 따른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의정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마냥 반길 수만도 없는 소식이다. 28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피부비만성형학회 춘계학술대회 경연장에 의정 갈등으로 사직한 전공의들이 줄을 섰다는 소식까지 들려 씁쓸함을 더한다.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 의료 민낯이다.
논설실장
강병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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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22대 국회의원의 십계명
지난 4·10 총선으로 정치권 제 세력 간 위상이 결정된 이후 관심은 자연스레 제22대 국회로 집중된다. 국민들은 새롭게 형성된 정치 구도가 잘 작동할는지 걱정스러운데 정치권 제 세력 간에는 벌써 경쟁과 견제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현 정부와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약진으로 22대 국회는 21대보다 정치적 풍랑과 격동이 더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22대 국회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얘기인데 국민들이 또 정치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른바 ‘십계명’을 촉구하고 이에 반박해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대변인 출신의 김연주 시사평론가가 조국 대표에게 ‘오계명’을 제시하면서 서로 십계명 또는 오계명 형식의 요구 사항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조국 대표가 제시한 십계명은 몇 가지 특검법의 수용과 민생 회복 및 과학기술 예산 복원, 야당에 대한 표적수사 중단 등 정치적 사안부터 대통령의 음주 자제, 극우 유튜브방송 시청 중단 등 사적인 것까지 다양한 요구 사항을 담았다. 이에 반격한 김연주 시사평론가의 오계명은 2심 재판부의 징역 2년 실형 선고에 대한 조국 대표의 입장과 대국민 사과, 대통령과의 만남 조르기 금지와 같은 정치적 성격부터 SNS 과다 사용 금지, 컴퓨터 스킬을 이용한 특정 목적 문서의 작성 자제, 웅동학원의 사회환원 약속 실천을 담았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앞둔 조국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을 꼬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을 향한 십계명이나 조국 대표에 대한 오계명이나 모두 총선으로 변화된 정치 구도를 투영한 것으로 일견 경청할 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상대를 몰아세우려는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인다고 해도 스스로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의정 활동의 꿈에 부풀어 있을 22대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십계명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십계명으로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거창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닐 테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다양하게 분출된 민의의 최대공약수가 그 바탕이다. 이런 관점에서 22대 국회의원의 십계명을 고려해 본다면 당연한 사항을 조금 정제해서 말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참고할 만한 십계명은 이미 몇 가지가 나와 있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가나안농군학교장 김평일 장로가 제시한 십계명이 있는데 주요 내용은 이렇다. 윤리, 도덕, 가정생활의 모든 일에 모범이 되고 인성이 바로 된 사람,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겸손하고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 정치 입문 당시 초심의 자세로 일하는 사람을 열거하면서 인성과 초심을 우선하여 강조했다. 이어 자존심을 버리고 일꾼의 자세로 항상 연구·노력하는 사람, 100년이 지난 후에도 잘했다는 칭찬을 받는 사람 등 의정 활동의 자세까지 성직자다운 내용을 담았다. 정치권에서도 스스로 부과한 십계명의 사례가 있다. 2016년 1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내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뉴파티위원회가 표방한 ‘거부 십계명’이 그것이다.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막말 거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정치방언 거부, 보좌진이나 공무원 막 대하기 등 정치갑질 거부, 선거 때만 얼굴 비추고 끝나면 외면하는 속물정치 거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과만 밥 먹고 소통하는 행위 거부, 패권정치와 진영논리 거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치인답게 의정 활동에 기반한 십계명으로, 지금 그대로 원용하더라도 괜찮은 내용이다. 당시 십계명에 동참한 의원들이 이를 얼마나 명심하고 잘 지켰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십계명을 추출해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를 의정 활동의 나침반으로 삼겠다고 다짐한 점은 평가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도 지금쯤 스스로 십계명을 고려해 볼 때다. 선거 기간 본인이 내뱉었던 수많은 공약과 다짐, 선언을 정리해 매일 되새기면서 스스로 각인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지난 총선 기간 밑도 끝도 없는 온갖 말들을 짜증과 피곤함 속에서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던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이다. 십계명이든 오계명이든 어떤 형식으로라도 임기 시작 전 공복으로서 최소한의 자기규정을 엄격하게 세운다는 의미는 본인은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매우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공약 실현과 의정 활동의 각오부터 현안 처리에 대한 나름의 기준까지 각자 처지에 맞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해도 좋겠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일단 한 번 시도해 본다면 분명히 그 전과 이후의 차이는 스스로 확연해지리라 여겨진다.
[조소영의 법의 창] 상속 자격에 대해 국회가 답할 차례
4월 25일에 선고된 헌법재판소의 한 결정이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가족공동체 중심의 가정을 사회의 기본으로 여기고 가족 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중시해 왔던 우리 사회의 제도적 변환의 필요성을 헌법재판에서 확인하게 된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구조가 변하고 가족제도의 모습 등이 크게 달라지면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인정하는 게 맞는 것인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47년 묵은 제도에 관한 결정이었다. 바로 유류분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불합치결정이 그것이다. 민법의 유류분제도는 망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배우자나 자녀 등 상속인들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상속 비율을 권리로 보장해 주는 제도다. 즉 망인(피상속인)의 법정상속인 중 일정한 범위의 상속인에게 법정상속분의 일부가 귀속되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망인이 증여나 유증으로 자유로이 자기 재산을 처분하는 것을 제한하는 결과가 되었다. 민법은 자녀·배우자·부모·형제자매가 상속받을 수 있는 지분(법정상속분)을 정하고 있고, 망인이 사망하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게 되면 이 지분대로 재산이 배분된다. 하지만 망인의 유언이 있더라도 민법의 유류분 규정에 따라 일정 범위의 법정상속인은 상속재산의 일정 비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망인의 자녀와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유류분제도는 1977년 민법 개정으로 신설되어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당시 유류분제도의 도입 취지를 보면, 공동상속인 간의 공평한 이익이 피상속인의 증여나 유증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나아가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거래의 안전과 가족생활의 안정·상속재산의 공정한 분배라는 대립하는 이익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유류분 권리자는 일반적으로 혈연이나 가족 공동생활을 통하여 망인(피상속인)을 중심으로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유류분제도는 망인(피상속인)이 법정상속과 상관없는 형태로 자기 재산을 처분하는 것을 일정 부분 제한함으로써,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및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보장, 가족의 연대가 종국적으로 단절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 등의 기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4월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일응 인정된 바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사회는 구조적으로도 가정 형태로도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농업사회가 아닌 산업화·정보화사회, 일반화된 핵가족 중심 가족제도, 1인 가구 수의 증가 등, 이것이 오늘의 사회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유류분제도의 위헌성이 계속 문제가 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앞선 2010년과 2013년에는 합헌 결정을 내렸었다. 그런데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새로운 번복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제도 자체는 여전히 정당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재산 형성에 관여하지 않거나 핵가족화되면서 남처럼 지냈던 형제자매의 유류분 인정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거·간호 등 망인(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한 상속인들의 기여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특히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 학대 등 패륜적 행위자인 상속인에 대한 유류분 인정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는 것(유류분 상실 사유 규정 필요성 인정)을 위헌의 이유로 판시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유류분 상실 사유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2025년 12월 31일까지 입법 개선 시한을 뒀다. 다시 국회를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 후엔 관련 입법이 탄력을 받기도 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후 ‘교권보호법’ 통과, 영유아 살해 사건 이슈화 후 ‘출생통보제’ 입법이 있었다. 하지만 부양의무를 게을리한 부모를 상속 결격자로 정하는 ‘구하라법’처럼, 더 많은 경우에 우리가 뽑은 입법자들은 직무 유기 상태였다. 헌법재판소의 공식 통계에 의할 때, 현재까지 위헌결정된 법률의 미개정 건수가 21건, 헌법불합치결정된 법률의 미개정 건수도 18건에 이른다는 건 뭘 말하나.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가 인정되는 경우일지라도, 입법자가 그 위헌적 상태를 제거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고려한 여러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 권력분립 원칙과 민주주의 원칙의 관점에서 예외적으로 입법자의 형성권을 존중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곤 한다.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하는 22대 국회는 과연 이 존중을 지켜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독자의 눈] 어린이날 맞아 동심을 떠올리다
[오늘을 여는 시] 윤사월(閏四月)
[데스크 칼럼] '중·수·청 선거'에 계륵된 부산
“당원의 한 사람으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부산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비 확보와 부산 현안 해결 측면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앞에서 끌고, 지역 민주당 의원들이 지원하는 방식이 최적의 구도인데, 황금비가 깨진 점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최근 만난 부산 국민의힘 원로 정치인이 ‘4·10 총선’ 결과를 두고 내놓은 평가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부산 18개 선거구 중 17석을 싹쓸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단위의 대승에도 최소한 부산만 놓고 보면 고작 1석을 건지는 예상 밖 참패로 가까스로 명맥만 유지한 모양새가 됐다. 남부권의 스윙보터로 일컬어지던 부산에서 이처럼 ‘원사이드 선거’가 펼쳐진 것을 두고,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에서조차 ‘17대 1의 미스터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투표 결과를 자세히 뜯어보면 상반된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당 후보가 출마한 연제구를 제외한 17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총 80만 7990표를 얻어 44.9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부산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40% 이상을 얻으며 선전했다. 부산 전체를 묶어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정했다면 민주당을 위시한 범야권이 8석을 가져갔을 것이다. 부산도 민주당 지지 기반이 탄탄하고, 여차하면 민주당에 표를 던지겠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부산과 반대로 대전은 국민의힘 후보들이 42%를 득표하고도 7석 중 1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대전이 호남과 같은 ‘민주당 텃밭’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부산을 보수 텃밭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특히나 부산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긴 만큼,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때보다 민주당으로서는 해볼 만한 선거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민주당 지도부 태도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철저히 부산을 패싱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 초 부산에서 흉기 피습을 당한 이재명 대표는 서울대병원 헬기 이송으로 ‘지역의료 무시’ 논란을 촉발시키며 부산 시민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이 때문에 그가 당 대표로서는 물론, 개인적인 부채의식에서라도 이번 총선을 통해 부산 민심을 다독일 선물 꾸러미를 내놓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은 깡그리 무너졌다. 선거 유세차 부산을 찾은 이 대표는 “오만불통의 윤석열 정권 심판”을 목 놓아 외치면서도, 부산 현안인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서는 애써 언급을 회피했다. 산은 이전은 민주당 부산시당의 1호 공약임에도 말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최악의 시정 파탄으로 향후 10년간 민주당이 부산에서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싸늘한 분위기에서도 전재수 최인호 박재호 같은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마치 대신 속죄라도 하는 것처럼 지역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부산 민주당의 그간의 노력으로 이반됐던 지역 민심도 상당 수준 누그러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 대표를 비롯한 친명 지도부는 철저하게 부산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심하게 말하면 부산 민주당이 지역에서 어렵게 지켜온 싹을 작심하고 자르고 나선 듯한 인상이었다. 가덕신공항 건설에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최인호 의원은 불과 693표 차로 고개를 떨궜다.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자녀들이 취업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생겼으면 하는 기대감에 이번 선거에서는 산은 이전에 적극적인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민주당 중앙당의 태도 여하에 따라 부산의 선거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이번 선거는 중앙당에 짓눌린 부산 민주당의 답답한 무기력에 대한 또 다른 민심의 심판이기도 했다. 부산 사람으로서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당이 전국적으로는 압승을 거두면서 ‘부산 패싱’이 고착화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표심’을 얻으면 이긴다는 선거 공식이 민주당 선거의 새 표준이 된다면, ‘보수세 강한 노인 인구가 많은 지방’ 부산은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딱히 먹을 건 없는 ‘계륵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으로서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과 산은 이전, 에어부산 분리 매각 등 지역 현안 처리를 위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주당도 2년 남은 지방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부산 없이도 낙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면 부산 현안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고작 한 석 주면서 부산 발전을 위해 도와 달라 하느냐”고 원망하기에 앞서 “이렇게 부산을 무시하면서 표를 달라고 하느냐”는 시민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노트북 단상] 도서관에 가자
매년 4월 12일 ‘도서관의 날’부터 일주일간인 도서관 주간에 공공도서관에서는 ‘대사면’이 이루어진다. 대출 기간을 넘기면 연체한 일수만큼 도서 대출이 정지되는데, 이 기간에 연체 도서를 반납하면 밀린 기간이 얼마든 즉시 대출 정지를 풀어주는 것이다. 책을 빌렸다 하면 대출 기간 2주가 너무 짧게 느껴지고 다음번엔 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대출 기기 화면에 경고 신호가 뜨지 않을까 가슴 졸여 보았다면 반가울 행사다. 대출 정지는 도서관 이용자에게 가장 큰 벌칙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것 말고는 어떤 제재도 없는 관대한 곳이 도서관이다. 공공 소유의 책을 오래 들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읽을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벌금을 물리지도 않고, 이름을 써 붙이지도 않으며, 도서관 출입을 금지하지도 않는다. 물론 블랙리스트에 올려 다음 대출에 제한을 두지도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공도서관이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서다. 도서관에서는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대접을 받는다.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고, 카드키 없이도 화장실을 쓸 수 있다. 나이나 옷차림으로 박대를 받을까 봐 쭈뼛거리지 않아도 된다. 결정적으로 구독료를 내지 않아도 책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고, 책을 보는 대가로 광고를 볼 필요도 없다. 공공의 공간은 갈수록 희귀한 것이 되어간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하루 종일 코를 박고 있는 스마트폰 속 온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주의력을 갖가지 형태의 광고에 팔아넘기고, 구매력과 구매 의사로 우리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시대에 아직 동네마다 도서관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건 새삼 놀라운 일이다. 도서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환대의 경험 말고도 많다. 책 속에서 동서고금의 지혜를 만나는 건 모범 답안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인권 기록 활동가 홍은전은 〈그냥, 사람〉의 서문에서 13년 동안 활동하던 노들장애인야학을 그만두고 도서관을 다니던 시절을 말한다. 처음에는 신문을 읽고 특강을 들으면서 우물 밖 넓은 세상을 신나게 배웠다고 했다. 그러다 유학파 저자가 보는 세상과 자신이 인권 운동 현장에서 본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머물렀던 우물을 처음으로 들여다본다.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한다. 그렇게 얻은 ‘세계관’을 갖고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도서관에 가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 경험을 경유해 자신의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그것을 세상에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가지 않아도, 이제는 교과서도 선생님도 없는 머리 굳은 어른이 되었더라도, 도서관에 가면 그 길로 가는 샛길이 있다. ‘고객님’을 환영하는 인사는 없지만 질문을 하면 기꺼이 도움을 줄 전문가들도 있다. 부산에는 교육청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서관 말고도 서울 말고 한 곳뿐인 국회부산도서관, 책과 보기 힘든 영화도 볼 수 있는 영화의전당 라이브러리, 오션뷰를 자랑하는 국립해양박물관 해양도서관도 있다. 산책 삼아, 마실 삼아 도서관에 가자.
[2030 칼럼] ‘반대’와 함께 살아가기
올해 초 한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였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예능인데, 설정이 매우 파격적이다. ‘정치, 젠더, 계급, 사회윤리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12명의 젊은 남녀가 9일 동안 리더를 선발하고 상금을 분배하는 정치 서바이벌 사회실험’이 프로그램 취지다. 가령 좌파와 우파, 페미니즘과 이퀄리즘(평등주의), 서민층과 부유층 등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한 데 모아놓고 토론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다. 생각만 해도 뭔가 답답하고,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장면들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입소문을 타고 급부상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예능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낼 수 있을까?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은 왠지 피하게 된다는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혹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거든 정치나 종교 얘기는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다른 의견을 가졌을 때 수용 받는 경험도, 누군가를 수용하는 경험도 좀처럼 하기 힘들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화를 나누게 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꽤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2030 청년층은 양극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2022년 대선 당시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20대 여성의 진보화가 메인 화두였다. 이번 달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고 정치평론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30대의 사전투표율은 50·60대에 비해 10% 이상 낮게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다른 세대에 비해 높지는 않은데, 양극화는 뚜렷한 상황이다. 단순히 평론가들의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양극화를 현실에서 체감할 만한 순간도 꽤 많았다. ‘이대남’과 ‘이대녀’ 등 성별에 따라 이념 대립이 뚜렷한 편이다. 그리고 사는 지역과 경제적 상황에 따라서도 성향이 나뉜다. 문제는 정치 성향은 다를 수 있지만 다 함께 모여 토론하거나 유의미한 합의점을 도출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2030 청년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대안 없이 서로 심판만 한다. 이번 총선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안을 가지고 오지는 않고, 거대 양당 둘이서 싸우기만 한다. 그 분열의 산물로 제3 정당들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 역시 매끄럽지는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어떤 정당을 찍어야 할지 공부할 겸 뉴스를 틀고 기사를 읽어 보고 토론회들을 보았지만 금방 피로해져 질리고 말았다. 토론이 부재한 자리에 싸움만 남아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지 모른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갈등하느니, 차라리 피해버리는 게 낫다고 모두들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이들이 대화를 나누지 못하면 논쟁은 자꾸 음지로 숨는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다.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나보다 힘없는 약자에게 튄다. 그런 뉴스를 지금도 많이 접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토론 교육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의견을 듣고 건강하게 반박해 보고, 또 수용할 것은 수용할 줄 아는 자세. 이런 걸 누군가가 알려주면 좋겠다. 애석하게도 그렇게 대화하는 방법을 공교육 과정에서 배우지는 못했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이런 교육이 시작된다면, 국회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아주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상검증구역’ 예능에서는 출연자들이 한 공간 커뮤니티에 생활하며 세금도 징수하고 대표도 선출하는 모습들이 연출됐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한 나라를 꾸려갔다. 낮에는 공동체 게임을 하고 밤에는 첨예한 주제를 놓고 익명으로 토론한다. 이들은 같이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들켜서는 안 되는 규칙 안에서 존재했다. 이 과정에서 절대 말을 섞어보지 못할 것 같은 두 사람이 협력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사상보다는 한 인간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이게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상은 달라도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그런 대한민국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편집국에서] 부산 민주 패배한 4·10 총선 복기
22대 부산 총선은 17(국민의힘) 대 1(더불어민주당)이란 결과로 마무리됐다.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 국민의힘 완승이었다. 175석(민주당) 대 108석(국민의힘)이라는 전체 결과와는 상반되는 결과였다. 당초 민주당이 부산 대부분 지역에서 선전하며 최대 절반가량의 의석을 기대했던 것을 고려하면 초라한 결과다. 19대 2석, 20대 6석(재보궐 포함), 21대 3석으로 부산에서 점차 존재감을 보이던 민주당의 의석수는 당시 통합민주당 소속이던 조경태(사하을) 의원 혼자 당선된 2008년 18대(1석)로 회귀했다. 22대 총선 직전 부산을 비롯한 PK 지역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돌풍은 매서웠다. 전국적인 정권 심판 바람에 조국혁신당까지 가세하면서 야권은 부산에서도 일을 낼 것 같았다. 실제 선거 직전 부산 야권은 4곳을 우세로 전망했고, 5곳을 경합 우세로 거론했다. 국민의힘도 확실한 우세 6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박빙 승부로 예상하며 최소 2~4곳 정도는 내줄 것이라 우려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와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와는 달리 전국적으로 야권이 192석을 얻어 압승을 거뒀지만, 부산은 정반대였다. 전재수(북갑) 의원 홀로 당선돼 전패를 면하는 데 그쳤다. 전국 민심과 달랐던 부산의 표심에 대해선 대체로 ‘샤이 보수’의 쏠림이 거론된다. 정권 심판론이 거센 상황에서 의견을 드러내길 꺼리는 숨은 보수들이 본투표는 물론 사전투표까지 적극 참여했다. 오류가 있었던 출구조사는 샤이 보수들이 대거 참여한 사전투표 표심을 잡아내지 못했다. 특히 부산의 경우 일부 지역 국민의힘 공천 잡음에도 개헌저지선(100석)이 뚫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 여권의 한 당선자는 “불통의 대통령실과 오만한 공천을 한 국민의힘을 심판하긴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는 야권에 브레이크 없이 독주하는 상황도 만들어줄 수는 없다는 유권자들의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1대 총선 때 평균 44.3%였던 부산 민주당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은 이번에는 45.1%로 소폭 증가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후보들과 대부분 한 자릿수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민주당 후보들로선 중앙당의 부산 지역 총선 전략 부재가 아쉬웠다. 야권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를 두고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며 단순히 고령층의 표 쏠림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수도권 중심 선거 캠페인에 부산 등 PK는 소외된 감이 적지 않다. 월드엑스포 유치전이 맥없이 실패로 돌아가긴 했으나 국민의힘에선 줄곧 산업은행 이전과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추진 등을 강조하며 부산에 공을 들인 반면,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외면했다. 급기야 민주당 부산시당이 총선을 앞두고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부산 이전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워 급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 등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쇠락하는 지역 부활을 위한 별다른 공약도 없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부산에 올 때마다 “부산에 진심”이라고 했던 말이 갈수록 알맹이 없이 공허하게 들리긴 했지만, 민주당에선 이러한 시늉조차 거의 없었다. 부산 유권자들에게 정권 심판론 말고는 민주당에 투표할 명분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부산 공약’에 발목을 잡는 민주당이 날개를 달면 오히려 부산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여야의 전쟁 같았던 4·10 총선이 끝난 지 20일 가까이 흘렀지만, 정국 상황은 선거 전과 별 달라진 게 없다. 반성한다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여전히 친윤(친윤석열) 체제의 스크럼을 짜고 있고, 민주당은 각종 법안을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회부한 데 이어 22대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론을 꺼내며 독주하고 있다. 부산의 현실은 더 암담하다. 이번 총선 과정과 결과대로 국민의힘은 무력하고 민주당은 부산에 관심이 없다. 2년 전 대선 때 대통령 핵심 공약이었던 산은법 개정은 이번 국회에서 자동폐기되고, 차기 국회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하다. 29일 열리는 짧은 영수회담에서도 온갖 현안들 속에 지역 문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산은 이전과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추진 등은 쓰러져가는 부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은 PK 정치권은 응집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더욱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해 중앙무대에서 지역 현안들을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부산 야권 승리를 염원하는 지지자들을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민주당 부산시당이 1호 공약으로 들고나온 ‘산은 이전’ 염원은 부산의 확실한 민심이다. 산은 이전에 진척이 없다면 민주당은 2년 뒤 지방선거에서도 핸디캡을 안고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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