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목숨 건 사진 찍기 놀이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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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콘텐츠부 선임기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디에서나 휴대폰으로 이른바 ‘셀카’를 찍는 사람을 많이 본다. 이곳저곳에서 셀카를 하도 많이 찍어대는 바람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다. 셀카는 남에게 불편을 주는 걸 넘어 위험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여행 전문가들은 ‘완벽한 셀카를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려는 사람들 때문에 여행은 어느 때보다 위험해졌다’고 지적한다.

국제여행의학학회가 발간하는 〈여행의학저널〉 2022년 발행본에 따르면 2008~2021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셀카를 찍다 목숨을 잃은 사례는 379건에 이른다. 이후에도 사망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인도 서쪽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숲’으로 유명한 프라갈바다 포트에서는 20대 여성이 조금이라도 더 아찔한 셀카를 찍으려고 절벽 끝으로 가다 6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전문가들은 실제 셀카 사고 사망 건수는 드러난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인도의 가정의학과협회가 발행하는 〈가정의학과 1차 의료〉라는 학회지에 따르면 셀카 관련 사망 사고는 대개 사망 원인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셀카를 찍다 절벽에 떨어져 사망하는 경우 ‘추락사’로 집계되고 ‘셀카사’라고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법이나 조례로 셀카 촬영을 금지하는 곳이 늘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포르토피노는 관광객이 셀카를 찍느라 좁은 골목을 막고 통행을 방해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자 인파가 몰리는 일부 구역에서 셀카를 찍지 못하게 했다. 일본의 서일본여객철도회사는 셀카봉이 머리 위 전선에 닿아 감전사하거나, 사람이 철로에 떨어져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빈발하자 승강장에서 셀카봉 사용을 금지시켰다.

셀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인도 뭄바이는 해안, 축제구역이나 여행자 명소를 셀카 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스페인 팜플로나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황소가 질주하는 ‘산 페르민 축제’ 기간 중에 셀카 촬영을 금지시켰다. 미국 네바다주와 캘리포니아주에 걸친 레이크 타호 일대에서는 곰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행위가 금지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셀카 사고 관련 통계가 제대로 나온 게 없다. 사고가 적지 않을 텐데도 알려진 게 없을 가능성이 높다. 호주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연구팀 조사를 참조하면 충분히 이해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언론은 셀카 사고사를 ‘어리석고 이기적인 행동 때문’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짙다. 이 때문에 여행객이 셀카를 찍다 사고를 내더라도 셀카 때문이라고 밝히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셀카 명소로 알려진 곳에 안전 관련 시설을 갖추거나 셀카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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