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공지능' 신진서 "내게 가장 중요한 승부는 바로 다음 대국"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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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부산서 본인 이름 딴 첫 어린이대회 '주목'
24일 전국서 400여 명 참가, 성황 속 첫발 디뎌
내달 최종 라운드 ‘농심배’ 19연승 늘릴지 주목
이세돌-알파고 대결 10년 맞아 재대결 제안도
“이겼다 지기 반복하며 결정력 키우는 게 중요”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신진서 9단.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신진서 9단.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전경.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전경. 한국기원 제공

“제가 태어나고 자라고 바둑을 둘 수 있게 했던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첫걸음을 내디딘다는 사실이 저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산은 서울을 제외하면 그다음 대도시인데 바둑 열기는 그렇지 못해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해 주신 부산시바둑협회와 ‘신진서 사랑회’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 바둑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고 있는 세계 최강 신진서 프로 9단의 이름을 딴 뜻깊은 대회가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부산시바둑협회(회장 김대욱·TM마린 대표)와 ‘신진서 사랑회’가 주최·주관한 이번 대회는 지난 24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교육지원청 스포츠교육센터에서 바둑을 사랑하는 전국의 꿈나무 400여 명이 전국부와 부산지역부로 나눠서 최고위부, 유단자부, 학년부 등 총 12개 부문으로 기량을 겨뤘다. 대회 당일은 참가 어린이와 학부모 등 8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신진서 9단은 대회 개회식 참석과 팬 사인회 등으로 부산을 다녀갔다. 팬 사인회는 추첨을 통해 선발한 50명 한정으로 진행되는 등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가 열린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교육지원청 스포츠교육센터 로비에서 팬 사인회를 열고 있는 신진서 9단. 부산시바둑협회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가 열린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교육지원청 스포츠교육센터 로비에서 팬 사인회를 열고 있는 신진서 9단. 부산시바둑협회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어린이 바둑대회라고는 해도 전국 규모여서 개최가 쉽지 않은데, 제 이름을 딴 대회여서 더욱 책임감도 느껴지고, 영광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바둑을 두어 나갔으면 좋겠고, 부산바둑 발전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고, 부산에 계신 많은 분이 바둑의 재미를 느껴 보셨으면 합니다. 성인이 된 후엔 서울에서 생활하지만, 고향은 부산은 제가 나고 자란 것 외에도 어린 시절 연구생 생활을 하며 기본기를 다지는 등 저에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곳입니다.”

김대욱 부산시바둑협회장. 한국기원 제공 김대욱 부산시바둑협회장. 한국기원 제공

대회장을 찾은 김대욱 부산시바둑협회장도 “부산의 보물인 신진서 9단의 이름을 딴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가 개최돼 매우 기쁘다”며 “부산에서 제2의 신진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2000년생인 신진서 9단은 부산에서 기원과 바둑학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인터넷 바둑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 하지만 급성장하면서 더 강한 상대가 필요해졌고, 주말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바둑을 익히던 중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 서울 이주라는 큰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때가 신진서 9단의 나이 열두 살이었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다. 그는 서울로 이사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제1회 영재 입단대회(2012년 7월 17일)를 통해 프로의 문턱을 넘었다.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플래카드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진서 9단.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플래카드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진서 9단. 한국기원 제공

신진서 9단과 부산의 각별한 인연은 이것만이 아니다. 기억에 남는 주요 대국 중 하나인 2024년 2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이하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 라운드가 있다. 농심배는 통상 중국(칭다오, 상하이)과 한국(부산)을 오가며 3차전을 개최하는데, 2라운드(본선 5~9국)는 부산 농심호텔에서 연다. 25회 대회에서 신진서 9단은 일본 기사 1명, 중국 기사 5명 등 6명을 연속으로 격파하며 기적 같은 역전 6연승으로 한국팀에 우승컵을 안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그는 “식사 메뉴를 고르는 에너지조차 소모하지 않으려고 카레와 한식으로 식사를 통일하고, 그렇게 비워낸 공간을 오로지 바둑으로 채웠다”고 한다.

신진서 9단은 현재 이창호 9단의 전설적인 연승 기록 14연승을 넘어 18연승(제22~26회)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 중이며, 내달 2일부터 중국에서 열릴 제27회 최종 라운드에서 자신의 연승 기록을 19연승으로 늘릴 수 있을지도 전 세계 바둑 팬들의 관심사이다. 현재 한국(신진서, 박정환), 중국(딩하오, 왕싱하오), 일본(이치리키 료, 이야마 유타) 세 나라 모두 2명씩 생존하며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신진서 9단에게 농심배는 어떤 의미일까. “농심배가 저를 키워준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자신감을 얻게 했고, ‘폭발력’ 부족이 6연승을 하며 어느 정도 해결됐으니까요. 사실 개인전도 중요하지만, 농심배는 국가 대항으로 상징성이 워낙 크다 보니 제 커리어 못지않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였다는 점도 주효했습니다.”

다만 신진서 9단은 지난해 8월 창설해 현재 진행 중인 제1회 신한은행 세계기선전에서 중국 왕싱하오에 패해 8강 탈락이라는 이변을 낳았고, 지난달 열린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1라운드에서 랭킹 31위 강유택 9단에 충격패를 당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2025 바둑대상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신진서 9단은 상금·승률·다승 3관왕에 올랐다. 한국기원 제공 2025 바둑대상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신진서 9단은 상금·승률·다승 3관왕에 올랐다. 한국기원 제공

하지만 신진서 9단의 성장은 멈출 줄 모른다. 2026년 새해에도 여전히 세계 바둑계의 ‘절대 1강’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 6일 한국기원이 발표한 프로기사 랭킹에서 73개월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2020년 1월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최장기간 랭킹 1위 기록을 매달 경신 중이다. 또한 2025년 최종 성적이 67승 11패(승률 85.90%)이고, 상금, 승률, 연승 부문에서 모두 1위(3관왕)를 차지하며 ‘기록 제조기’의 면모를 보였다. 전 세계 바둑 팬들과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비공식 세계 랭킹 사이트인 ‘고레이팅즈’(Go Ratings)도 신진서 9단을 압도적 1위에 올려놓고 있다.

지난 연말 세간을 달구었던 화제의 뉴스에 대해서도 물었다. 2026년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있었던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신진서 9단과 한국기원은 구글 딥마인드 측에 “10년 전 이세돌 9단을 이겼던 당시의 알파고 버전과 대결하고 싶다”는 제안서를 발송했다고 한다. 구글의 공식적인 수락 여부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만약에 성사된다면 또 다른 세기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세돌과 달리 신진서 9단은 AI(인공지능)의 수법을 완벽히 체득한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프로기사 중에서는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둑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진서 9단. 신진서 제공 바둑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진서 9단. 신진서 제공

신진서 9단에게 친구이자 스승이자 넘어서야 할 그것인 AI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신진서 9단은 “어려서는 AI 없이 바둑을 두었기에 처음에는 반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지난한 과정 끝에 AI를 내 바둑에 도입하는 법을 습득했고, 이후에는 완전히 새로운 공부 방법으로 바둑을 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블루스폿과 같이 인공지능이 꼽은 추천 수만 따라가면 공부가 한정적이어서 그것을 뛰어넘는 수를 계속해서 상상하고 계산하며 내가 가진 수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진짜 AI 공부이며, 정답 너머의 정답을 바라보는 방식 등 좋은 활용 방안을 찾는 쪽으로 AI를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바둑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진서 9단. 신진서 제공 바둑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진서 9단. 신진서 제공

신진서 9단의 다음 목표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질문했다. 신진서 9단이 2024년 펴낸 <대국-기본에서 최선으로>라는 책에서 “아버지와 나의 목표치는 비슷하다. 세계대회에서 최소한 10번은 우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던 게 생각나서다. 신진서 9단은 “이미 8번 우승했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바둑하는 이유가 뭔지를 자꾸 묻게 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일인자라는 생각을 최대한 안 하려고 한다. 국내에선 계속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은데, 중국세가 워낙 강해서 계속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승부는 바로 다음 대국이다. 시합이라는 게 결국 이겼다 지기를 반복하며 결정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전경.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전경.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최고위부 수상자 기념사진(왼쪽부터 김태윤, 김태우 공동 3위, 김대욱 부산시바둑협회장, 준우승 김의준, 우승 이서준). 한국기원 제공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최고위부 수상자 기념사진(왼쪽부터 김태윤, 김태우 공동 3위, 김대욱 부산시바둑협회장, 준우승 김의준, 우승 이서준). 한국기원 제공

한편, 한국 바둑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9단의 이름을 내건 어린이 바둑대회가 속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각 기사의 고향이나 상징성을 담아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창호 9단의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열리고 있는 ‘이창호배 전국 아마 바둑대회’(어린이부 포함)가 가장 오래되었고, 신진서 9단도 초등학생 시절 여러 번 참가했다. 조훈현 9단의 고향인 전남 영암군이 개최하는 제1회 조훈현배 전국 어린이 바둑왕전은 내달 28일~3월 1일 열릴 예정이다. 전남 신안이 고향인 이세돌 9단은 은퇴 이후 특정 후원사와 함께하는 전국 단위 이벤트로 어린이 바둑대회를 몇 차례 개최했다. 이 외에도 신진서 9단은 부친의 고향인 남해군 홍보대사와 모친의 고향인 합천군 홍보대사로 위촉돼 있다. ‘제1회 신진서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단상에서 신진서 9단이 “바둑은 한 수 한 수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스포츠”라며 “자신만의 바둑을 완성하고 멋진 기보를 남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것처럼 그의 앞으로 행보도 더욱 기대하게 된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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