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에게 인생 배웠다”…부일시네마가 전한 '크레센도' 감동
영화 ‘크레센도’ 스틸컷. 오드 AUD 제공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일보> 독자를 극장으로 초대하는 ‘BNK부산은행과 함께하는 부일시네마’(이하 부일시네마) 올해 첫 상영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27일 오후 7시 부산 중구 신창동 ‘모퉁이극장’에 모인 관객 70여 명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우승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2023)를 관람했다.
혜성처럼 나타난 ‘피아노 천재’ 임윤찬은 2022년 6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만 18세)로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국의 역대 최고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리는 경연이다. 전 세계 클래식 유망주 30명이 본선에 진출하고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18명, 12명, 6명으로 줄어든다.
영화는 여느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처럼 주요 참가자들의 사연과 퍼포먼스를 조명한다. 참가자들이 피아노에 입문한 계기를 소개하는 전반부가 다소 흥미롭다. 참가자들의 연주 장면과 개별 인터뷰 등을 활용해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안긴다.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진심이고, 다음 라운드 진출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생존자는 한정적이다. 진출자와 탈락자가 갈리면서 참가자들의 희비도 엇갈린다. 진한 아쉬움을 남기면서도 도전 의식과 긍정적인 인식을 잃지 않는 참가자들의 태도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영화 ‘크레센도’ 포스터. 오드 AUD 제공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주자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16회 대회 당시 러시아는 올림픽 출전 금지 등 국제적인 제재를 받았으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측은 러시아 연주자들의 참가를 허용했다. 애초 클라이번도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결선에서 만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주자가 최선을 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후 포옹하는 장면은 음악이 가지는 포용과 화합의 힘을 보여준다.
영화를 연출한 헤더 윌크 감독은 “국경과 문화 등 수많은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해주는 음악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젊은 도전자들의 놀라운 재능을 담아내고 음악이 개인과 공동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선 ‘인간 임윤찬’도 엿볼 수 있다. 임윤찬은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천재이지만 인터뷰에선 늘 겸손함을 유지한다. 속도는 느리지만 울림과 깊이가 있는 그의 화법은 스타 셰프 최강록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영화 클라이맥스인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D단조 연주 장면은 압권이다. 영화관 스크린과 음향 시설로 감상할 가치가 있다. 대회가 끝난 뒤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극찬을 쏟아내는 장면에선 괜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느낌이 든다.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진심을 고백하는 인터뷰 역시 감동을 준다. 관객들로 하여금 삶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 상영 뒤에는 관객끼리 감상을 공유하는 시간인 ‘커뮤니티 시네마’가 진행됐다. 동아대학교 음악학과 진소영 교수가 모더레이터로 나섰다.
진 교수는 “음악회에 가면 여러분은 무대에서의 모습만 볼 수 있는데, 그 무대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 영화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는 것이라는 대사가 와닿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관객들도 하나둘 소감을 공유했다. 이날은 영화 특성상 음악계 종사자나 마니아가 많았다.
연주자라고 소개한 한 관객은 “무대 뒤 준비 과정이 잘 드러나는 영화였고, 임윤찬의 아티스트로서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임윤찬의 공연을 보고 왔다는 관객은 “유튜브로 콩쿠르 결선 영상을 봤는데, 영화를 통해 대회의 의미와 과정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관객들을 관통한 공통적인 소감은 ‘교훈’이었다. 18세 청년 임윤찬이 예술가로서 자신의 업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은 역시 본받을 점이 있다” “어른이지만 임윤찬에게 인생을 배웠다” 등의 소감이 공감을 얻었다.
관객들의 소감을 들은 진 교수는 영화 제목인 ‘크레센도’가 ‘점점 강하게’를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라흐마니노프의 인생 이야기를 소개했다. 1번 교향곡을 공개한 초연에서 혹평을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증과 자괴감에 빠져 한동안 곡을 쓰지 못했다. 그를 구한 것은 자기최면과 암시요법이었다. “매일 스스로에게 ‘나는 다시 곡을 쓸 거고, 그 곡은 최고의 곡이 될 거야’라는 말을 반복하라”는 심리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의 말을 새기면서 작업 끝에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2번 교향곡이다. 초연에서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고, 상승세 이후에 내놓은 3번 교향곡이 바로 임윤찬이 결선에서 연주한 곡이다.
진 교수는 이러한 스토리를 설명하며 관객들에게 “여러분의 2026년도 ‘크레센도’가 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커뮤니티 시네마가 마무리된 뒤 인상적인 소감을 남긴 관객 5명은 <부산일보>가 준비한 송도해상케이블카 탑승권을 경품으로 받았다.
BNK부산은행이 후원하는 부일시네마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오후 7시 모퉁이극장에서 열린다. 부산닷컴(busan.com) 문화 이벤트 공간인 ‘해피존플러스’(hzplus.busan.com)에서 관람을 신청할 수 있다. 참가자를 추첨해 입장권(1인 2장)을 준다.
오는 2월 상영작은 아카데미 수상작인 ‘타인의 삶’(2007)이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