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과 평민이 함께 만든 정신 문화 본향’ 안동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하면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곳이다. 하지만 어떤 마을인지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강물이 마을을 휘감은 멋진 풍경’, ‘하회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서애 류성룡의 고향’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방문지’…. 이 정도면 많이 아는 편이다.
하회마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조상들의 정신 문화 유산이 깃들여져 있다. ‘양반과 평민이 함께 만든 정신 문화의 본향’이 바로 안동 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은 태백에서 시작한 낙동강이 남쪽으로 흐르다 잠시 동북쪽으로 선회해 만들어진 곳에 터를 잡고 있다. 강물이 S자형으로 돌아나간다고 해서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해서 해설사의 도움을 받았다. 관람객들이 원하면 매일 6~7차례 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이날 동행한 안동시 류시대 문화관광해설사는 시민단체 안동문화지킴이에서 2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낙동강물이 마을을 휘감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 전경.하회마을보존회 제공
■한옥·초가 공존한 풍산 류씨 집성촌
마을 입구에 세워진 하회마을 안내판에서 해설사의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마을 탐방에 나섰다. 집집마다 매단 문패를 보니 한결같이 류(柳)씨 성이다. 그렇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집성촌이다. “안동 풍산 상리에서 살던 풍산 류씨는 고려 말 전서 류종혜 공이 자손 대대로 머물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화산에 수년간 오르며 관찰해 지금의 터를 마련했습니다” 류 해설사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해설사도 이 마을 출신이다.
류시대 해설사가 풍산 류 씨 큰 종갓집인 양진당을 소개하고 있다.
하회마을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길을 중심으로 크게 북촌과 남촌으로 나뉜다.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물게 초가집과 기와집과 잘 어우러져 있다. 하회마을의 초가집들은 주로 종갓집들에서 부리던 사람들이나 소작인들이 살던 살림집이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전통마을로 인정받아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래된 고택 사이에 주민들의 차량이 주차돼 있어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마을에는 현재 120가구 23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하회마을 고택들은 외지인들에게 거래가 가능하다.
하회마을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늪지대에 마을이 들어서다 보니 마을 가운데가 불록하게 솟아 있고, 길은 방사형이다. 배수를 감안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남향인 집이 드물다. 길에서 대문이 보이지 않는 집도 많아 골목을 누비는 재미도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돌담보다는 흙담을 쌓았다고 한다. 돌은 배를 가라앉힌다는 생각이 주민들 사이에 팽배해 흙담을 선호했다는 게 류 해설사의 설명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고 있는 마을의 지형적 특징 때문일 것이다.
한옥과 초가, 흙담과 돌담 등이 잘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구조의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유서 깊은 고택들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곳이 풍산 류씨의 대종가인 북촌의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임진왜란 때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 일컬었던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이다. 충효당의 바깥마당에는 영국 여왕과 아들 왕자의 방문을 기념하는 ‘로열 웨이’(왕의 길) 표시와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의 기념식수가 심어져 있다. 이밖에 하동고택과 북촌댁(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 남촌댁(국가민속문화재 제90호) 등도 있다. 양반 가옥의 전형을 이루는 이 집들 가운데는 보물로 지정된 곳이 2곳,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9곳이나 된다.
보물과 국보 등으로 지정된 서애 류성룡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 전시관.
■600년 된 당산목과 선유줄불놀이
마을 중앙에는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 당산목과 아기를 점지해 주는 삼신당이 자리 잡고 있다. 나무 주위로는 방문객들이 소원을 적어 놓은 하얀 종이들이 빽빽하게 매달려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을 더한다.
소원을 빌고 낙동강쪽으로 나오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기념관인 화수당이 보인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의 전통 잔칫상을 받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마을을 둘러보고 낙동강 쪽으로 돌아 나오면 마을의 약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소나무 만 그루를 심었다는 만송정 솔숲과 제방길을 만난다. 만송정 숲은 마을의 서단부에 있어 풍수적으로는 수구막이 기능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방풍·방수재 효과를 지닌다. 강 건너 부용대 절벽도 아주 수려하다.
여름철 이곳은 하회선유줄불놀이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만송정 숲 인근에서 11차례 공연이 열렸다. 사전예약제로 진행했는데 총 3만 여명이 다녀 갔다.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조선시대 양반의 풍류와 강변 선유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동 하회마을의 대표 야간공연이다. 까만 밤하늘, 줄에 불을 붙여 강 위로 흘려보내는 장면이 압권이라 한다. 아쉽지만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 했다.
■하회탈과 별신굿 탈놀이
하회마을에는 그 유명한 하회탈과 별신굿탈놀이가 있다. 선비들의 혼이 깃든 이곳에 이를 풍자하는 하회탈과 탈놀이가 성행하면서 ‘양반과 서민이 함께 만든 정신 문화 본향’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회탈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 신의 계시를 받은 허 도령이 액운을 막기 위해 100일 동안 탈을 만들던 중 99일째 그를 사모하던 여인이 탈을 만들고 있던 허 도령의 방문을 여는 바람에 허 도령이 신의 노여움을 받아 죽고, 탈은 11개만 전해진다는 이야기다.
하회탈을 쓰고 행해지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굿이다. 매년 지내는 동제와는 달리 5년 또는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특별한 굿이다. 여기엔 주술적 행위도 있었지만, 양반을 풍자하는 서민들의 애환도 담겨 있다. 탈을 쓴 평민들이 양반을 풍자해도 이를 본 양반들이 노여워하지 않고 먹을 것을 내어주는 전통이 있었다는 게 류 해설사의 설명이다. 신분 계급이 엄격한 시대 이를 넘어선 조상들의 지혜가 소중하다. 국가무형문화재 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2월은 주말, 3~12월은 매일(월요일 제외) 오후 2시에 열린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