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와 부산 출판사가 뭉쳤다
곳간 출판사 그린피스와 협업
유명 소설가 기획 소설집 발간
그린피스, 문학과 첫 시도 기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독특한 시각
그린피스와 부산의 곳간 출판사가 협업한 소설집 <한 사람에게> 표지.
김멜라
김보영
김숨
박솔뫼
정영선
부산의 출판사 ‘곳간’의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대성. 2년 전 김 대표는 다큐 영화를 찍는 감독이자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받는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제작한 다큐 촬영이 모두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그린피스가 영상과 공연을 통해 환경 메시지를 자주 전했지만 왜 문학과는 협업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 길로 김 대표는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를 찾아가 그린피스의 환경 메시지를 색다르게 전달할 수 있는 소설집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지역의 작은 출판사의 제안, 그것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영역이기에 그린피스에선 한편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고, 한편으론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직접 행동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주요 활동 방식으로 삼아 온 그린피스가 한국 문학과의 협업으로 기존 방식과 다른 결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라는 틀을 통해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시도이다. 이벤트적인 협업이 아니라 한국 문학과 어깨동무하며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린피스 한국 사무소를 넘어 국제 본부까지 여러 번 논의를 한 끝에 부산 작은 출판사의 시도는 전진할 수 있었다. 김멜라, 김보영, 김숨, 박솔뫼, 정영선 등 중요 문학상을 휩쓸며 한국 소설계 중심에 서 있는 다섯 명의 작가를 먼저 선정했다. 소설집의 기획 의도로 “희박해지는 환경과 사라지는 생명체, 소수 민족과 언어, 삶터에서 흔적을 찾기 어려운 장소, 어느 사이에 사라진 감정과 마음, 더 이상 품지 않는 꿈과 희망을 다섯 소설가의 고유한 목소리를 통해 부르고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직접 기록했다.
기획자로서 김 대표는 작가들에겐 작품이 다다를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고, 소설에 대한 일체의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린피스 역시 작가를 존중해 그 어떤 제약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한 사람에게>라는 앤솔로지 소설집이 탄생했다. 5명의 작가는 신기할 만큼 완전히 다른 색깔과 형식으로 단편 소설을 완성했다. 책 제목인 <한 사람에게>는 사라져가는 세계의 끝에서 다섯 명의 작가가 당신이라는 ‘한 사람’에게 편지를 띄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멜라의 ‘물 먹은 편지’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이가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며 남긴 마음을 글로 옮겨 썼다. 몸이 물결에 깎여나가며 점점 희미해져 가는 동안 그이가 남기는 유언이자 고백 같은 글들은 강렬하고 신비하다.
김보영이 쓴 ‘축제’는 상반신은 포유류, 하반신은 어류인 인어들이 번식을 위해 성지 아우라지로 향하는 험난한 순례를 다루고 있다. 한 종족이 멸종위기에 처한 상황 앞까지 우리를 이끌지만 그럼에도 뚜렷하게 남는 건 신성한 생명의 축제, 삶이 꽃처럼 피어나고 물처럼 어우러지는 순간, 낯선 이와 친근한 이가 하나 되는 기적을 보여준다.
김숨의 ‘이곳은 정류장이 아닙니다’는 한국 사회의 경계에 머무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의 삶을 여러 버스 정류장을 배경으로 그려낸 시적 산문이다. 파편화되고 조각난 한국어로 표현된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온전하게 편입되지 못하는 현실을 비춘다.
박솔뫼의 ‘까마귀에게’는 기후 변화로 커피가 귀해진 근미래 배경 속에서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는 인물이 편지와 산책이라는 느린 행위를 통해 서로에게 닿으려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정영선은 ‘매축지 마을 수국 화분’은 일제강점기 때 매축되어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에 많은 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 마을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장소의 풍경을 기록하며 애도한다. 텅 비어가는 마을에 버려진 식물을 주유소 화단으로 옮겨 심으며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물의 애씀은 사라질 생명과 기억을 구출하고 보존하는 행위지만 현실에서는 절도라는 범법 행위로 비난받는다. 부산 작가로서 부산의 익숙한 지명과 풍경이 등장해 부산 시민에겐 좀 더 강력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김 대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문학이라는 가장 느리고도 내밀한 직접 행동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생명의 터로 다시 불러들이는 손짓이 되길 바란다. 문학이 건네는 느리고도 오랜 연대가 허물어져 가는 행성 위에서 우리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질긴 힘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