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요 확대’ 국내 조선업 20년 만에 호황 누리는데… 부산 조선기자재 업계엔 ‘그림의 떡’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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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조선기자재 업체 360여 곳이 밀집된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 일대 전경. 정종회 기자 jjh@ 부산지역 조선기자재 업체 360여 곳이 밀집된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 일대 전경. 정종회 기자 jjh@

“친환경 선박 수요 확대와 글로벌 해운사 발주량 증가로 국내 조선업계도 모처럼 호황을 기대하고 있지만, 부산의 조선기자재 업계엔 ‘그림의 떡’입니다.”

최근 조선업 호황으로 수주 물량이 크게 늘었지만, 정작 낮은 국산화율로 인해 조선업 후방에 위치한 부산지역 기자재 업계는 그 낙수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인공지능·디지털 전환(AX)과 연계한 생산 효율화와 더불어, 국내 공급망 생태계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내용은 한국해운협회 부산본부 주최로 22일 오후 2시 부산 중구 중앙동 한국선원센터에서 열린 ‘부산지역 선사-기자재 상생협의회’에서 나왔다. 이날 부산 소재 선사와 기자재업체 관계자들은 업계 상황을 공유하고, 상생협력과 시장 선도 전략을 논의했다.

이날 발표된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KOMER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기자재의 평균 국산화율은 2020년(74.7%)을 제외하면 대체로 70%를 하회하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 수치인 2023년 기준으로는 69.1%까지 하락하며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부산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360여 개의 조선기자재 업체가 밀집한 지역이지만, 정작 조선업 호황의 낙수효과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글로벌 조선업 호황으로 수주 물량이 폭증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건조 설비는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한화오션의 설비 가동률은 99.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과 HD현대중공업의 가동률 역시 각각 98%와 99.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기자재의 도입이 국내 조선소를 중심으로 크게 늘면서, 국내 조선업과 조선기자재 산업계 간의 상생 생태계가 단절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해운협회 부산본부 주최로 22일 오후 2시 부산 중구 중앙동 한국선원센터에서 ‘부산지역 선사-기자재 상생협의회’가 열려, 부산 소재 선사와 기자재업체 관계자들이 업계 상황을 공유하고, 상생협력과 시장선도 전략을 논의했다. 박혜랑 기자 한국해운협회 부산본부 주최로 22일 오후 2시 부산 중구 중앙동 한국선원센터에서 ‘부산지역 선사-기자재 상생협의회’가 열려, 부산 소재 선사와 기자재업체 관계자들이 업계 상황을 공유하고, 상생협력과 시장선도 전략을 논의했다. 박혜랑 기자

금액 기준 국산화율을 선종별로 살펴보면, 컨테이너선이 71%,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이 65%, LNG 운반선이 38%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LNG 운반선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이자 한국이 세계 시장 점유율을 압도적으로 높여가고 있는 주력 선종이라는 점에서 저조한 기자재 국산화율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선박에 들어가는 세부 기자재별로 따져보면, 선박 내·외부 설비(의장)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국산화율이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선박의 핵심 자재인 두꺼운 철판 ‘중후판’의 중국산 대체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후판의 국산화율은 2020년 81.3%에서 2023년 63.2%로 급감했으며, 이후로도 하락세가 이어지는 추세다.

자율운항과 친환경 선박의 핵심인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도 국산화율은 2020년 49.8%에서 2023년 10.9%로 급락한 상황이다. 상생협의회에 발표자로 나선 박창민 KOMERI 책임연구원은 “소프트웨어는 현재 기자재 산업에서 차지하는 금액 비중이 크지 않지만, 향후 자율운항선박 등의 시장이 확대되면 국산화율이 매우 중요해진다”며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특정 회사의 소프트웨어가 선박에 탑재되면 관련 하드웨어도 함께 공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자재 업계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인공지능 전환(AX) 지원과 함께 기존 조선소 중심에서 벗어나 해운사와 해외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는 등 구조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조선기자재 산업이 주로 조선소와의 협력에만 의존해 왔다면, 이제는 전방 산업의 범위를 해운사로까지 확장해야 한다”면서 “국내 해운사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해운사가 필요로 하는 선박 유지·보수(MRO) 수요 등에 적극 대응하는 새로운 상생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황선우 한국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실장은 “기자재 업체의 90%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라며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국내 조선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해외 수출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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