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단기 점포에서 여는 개인전 ‘점포 정리'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스트리트 아티스트 구헌주 전시
30일까지 남포동 빈 점포 개최
1층에는 상품 위장한 신작 4점
2층은 20년 궤적 모은 아카이브
“투병 중에도 동료 응원으로 성사”

스트리트 아티스트 구헌주(활동명 Kay2)가 지난 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장소 특정적 전시: 점포 정리’를 열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외부 전경. 임소영 제공 스트리트 아티스트 구헌주(활동명 Kay2)가 지난 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장소 특정적 전시: 점포 정리’를 열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외부 전경. 임소영 제공
2층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구헌주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2층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구헌주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중구 남포동의 한 빈 점포가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갤러리로 변신했다. 한국 그라피티 1세대를 잇는 대표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 구헌주(활동명 Kay2)가 지난 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장소 특정적 전시: 점포 정리’를 열고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구 작가는 건강 문제로 한동안 활동을 줄이기도 했지만, 올여름 부산문화재단 예술기획 지원 ‘상시 지원’ 공모에 선정되면서 다시금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부산 온천천 ‘똥다리’에서 시작된 실험적 모색과 거리 기반 그라피티 활동, 스프레이 페인트를 매개로 구축한 독창적 회화성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구 작가가 2010년 대안공간 반디 전시 이후 15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20년에 걸친 작업 궤적과 지금의 현실을 ‘점포 정리’라는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키워드로 풀어낸다. 1층에는 신작 4점, 2층에는 20년간의 작업을 모은 아카이브를 배치해 길거리와 전시장,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 외부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장 외부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장 외부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장 외부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15년 만에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그것도 남포동의 빈 점포를 단기 임대해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이 중구라서 늘 보는데 남포동 분위기가 옛날 같지 않아요. 한때는 번화가였는데, 지금은 임대가 쏟아지면서 매장도 텅텅 비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관광객은 계속 유입되는 걸 보면서 전시로 다뤄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빈 점포는 제가 스트리트 아티스트다 보니 맥락이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전시 제목에서도 이번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잘 드러난다. ‘점포 정리’라는 익숙한 문구는 재고를 털어내는 마지막 세일을 떠올리게 하지만, 구 작가에게는 지난 20년간의 작업과 시간,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투병과 일상의 균형을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는 “여러 사정으로 전시 준비에 걱정이 많았는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 빠듯한 일정에도 잘 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간 계약, 공사, 설치, 아카이브 정리까지 혼자 감당하기엔 벅찼지만, 아내이자 기획자인 임소영 씨, 그리고 동료 작가와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지인들이 힘을 보태면서 ‘점포 정리’는 오히려 ‘연대의 재확인’이 되었다.

1층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K2 코인'. 김은영 기자 key66@ 1층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K2 코인'. 김은영 기자 key66@
구헌주 작가를 응원하는 전국의 작가들이 보낸 라이트박스 작품으로 쇼윈도를 꾸민 전시장 외부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구헌주 작가를 응원하는 전국의 작가들이 보낸 라이트박스 작품으로 쇼윈도를 꾸민 전시장 외부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장 1층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 만든 신작들로, 빈 점포라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품처럼 보이지만 상품이 아닌 것들’을 내세운다. ‘박스 탑 구조’는 빈 점포의 기본 소재인 박스를 활용해 하청 구조를 시각화하는데, 블록 쌓기 ‘젠가’처럼 불안정하다. ‘K2 코인’은 작가 활동명 K2 로고를 패러디한 실물 코인을 50개 한정 판매한다. 오픈 때 5000원이면 살 수 있던 코인이 현재는 5만 원대로 껑충 뛰어 투기를 풍자한다. 라이트박스 ‘쇼 머스트 고 온’ 작업은 12명(스피브, 제바, 조대, 위제트, 딤즈, 사비, 쎄미, 모트, 지알원, 골드원, 바사라, 진스)의 전국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협업한 레터링이다. ‘쇼는 계속된다’는 메시지로 투병 중인 구 작가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화환’은 개업 축하 화환을 스트리트 아트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인 스텐실로 표현한다.

윈도에서 들여다본 전시장 안 모습. 임소영 제공 윈도에서 들여다본 전시장 안 모습. 임소영 제공
인터뷰 중인 구헌주(왼쪽) 작가. 임소영 제공 인터뷰 중인 구헌주(왼쪽) 작가. 임소영 제공

취재하는 동안에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유리창에 이마까지 바짝 대고 상점 안을 두리번거리며 들여다보는데 쉽사리 들어오진 못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점포 정리’ 현수막도 생경하지만, 점포 안으로 들어서면 상품 대신 진열된 작품이 낯설기는 매한가지이다.

2층은 ‘스트리트 아티스트 구헌주 아카이브’라는 부제를 실감하게 하는 공간이다. 지난 20여 년간 거리와 벽, 도시 곳곳에 남겼던 작업을 문서와 이미지, 일부 오브제로 묶어 놓았다. 현존하지 않는 벽화 작업은 사진과 기록을 통해 재구성된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이들에겐 반가운 복습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작가의 세계를 한 번에 따라는 입문서다.

2층 전시장 모습 일부. 김은영 기자 key66@ 2층 전시장 모습 일부. 김은영 기자 key66@
2층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 김은영 기자 key66@ 2층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 김은영 기자 key66@

한편, 구 작가의 바깥 대형 벽화 작업은 항암 투병으로 2022 군산(10m×20m)과 2024 달맞이길 작업 이후 중단됐다. 내달 중순엔 새 책 <한국 거리예술의 사적인 순간>이 나올 예정이다. 전시장 주소는 부산 중구 해관로 14. 관람 시간은 낮 12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닥터 Q

    부산일보가 선정한 건강상담사

    부산성모안과병원

    썸네일 더보기

    톡한방

    부산일보가 선정한 디지털 한방병원

    태흥당한의원

    썸네일 더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