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진짜 '1억짜리' 프리미엄 소음입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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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사회부 차장

부동산 커뮤니티나 임장 카페를 둘러 보기 전 원소기호처럼 외워야 하는 말이 있다. 이름하여 ‘브역대신평초’다. 이는 부동산에서 투자 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고를 때 자주 쓰는 6가지 핵심 요소를 줄인 말로 브랜드·역세권·대단지·신축·평지·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뜻한다.

이 공식에서 주목할 점은 ‘초’의 위상이다. 당당히 육각형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품아 아파트들은 안전한 등하굣길이 보장되고, 학교를 중심으로 학원가와 상권이 형성돼 주변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초품아는 인근 단지보다 상당한 수준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자산 가치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인 셈이다.

하지만 프리미엄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균열은 학교가 가장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일 때 발생한다. 바로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운동회날이다.

요즘의 초등학교 운동회는 풍경부터가 예전과 다르다. 호루라기를 입에 문 선생님 대신, 마이크를 잡은 전문 사회자들이 운동장을 진두지휘한다. 아이들의 문화를 꿰고 있는 이들은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을 틀고 ‘랜덤플레이 댄스’로 흥을 돋운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비트와 사회자의 재치 있는 입담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몇 옥타브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운동회의 백미인 계주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절정에 달한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치고,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들 역시 자식의 질주 앞에선 목소리 톤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활기찬 소동은 담장 너머 아파트 단지에 닿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소음으로 변질된다. 즐거운 비명 소리가 커질수록 학교 교무실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려댄다.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 “애들 목소리와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 좀 조용히 시켜라”는 민원 때문이다. 축제가 한창인 운동장이지만 선생님 한 명은 교무실을 지키며 이 날 선 항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대응이 미흡하면 더 날카로운 항의로 돌아오거나 교육청, 국민신문고로 민원이 옮겨가기 때문이란다.

민원을 의식한 사회자는 결국 흥이 오른 아이들에게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니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흥을 올리기 위해 섭외된 사회자가 힘들게 끌어올린 흥을 가라앉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된다.

물론 평온한 일상을 방해받는 주민들의 스트레스를 무시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휴식 시간일 것이고, 소음에 예민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회는 1년에 단 하루다. 과거처럼 한 달가량 ‘칼각’을 맞추던 연습 기간도 없다. 많아야 운동회를 앞두고 간단한 연습 1~2회와 당일의 소동이 전부다. 게다가 점심 시간 전에 행사는 종료된다.

우리가 ‘초품아’라는 이름표에 지불한 그 프리미엄 안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활기, 그리고 학교라는 공동체가 주는 유무형의 혜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루 반나절만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저 시끄러운 함성을 ‘1억짜리 소음’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겨 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동네야말로, 당신의 재테크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값비싼 신호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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