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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고등어는 수산업의 희망!
봄이 되면 입맛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봄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봄이 되면 생리적인 피로감, 춘곤증으로 입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럴 때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있다. 달콤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각종 봄나물과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고등어구이는 떨어진 입맛을 되돌리는 데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무엇보다 고등어는 보리처럼 영양가가 뛰어난 데다 쉽게 구할 수 있고 값도 저렴해 서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어종이다. 우리 민족이 고등어를 즐겨 먹은 역사는 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황해도, 함경도 지방의 토산물로 기록돼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지방의 토산물이라고 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의 밥상에 오른 고등어는 지금은 우리나라 제주 인근 해역에서 많이 잡힌다. 주로 대형선망 어업으로 잡는데, 선망은 어군(魚群)의 존재를 확인한 뒤 이를 포위해 잡는 어망을 총칭하는 말이다. 본선과 2척의 등선, 3척의 운반선까지 모두 6척이 선단을 이루는데, 본선은 고등어를 찾는 역할을 하고 등선은 불을 밝혀 고등어 떼를 모은다. 어군에 그물을 던져 잡은 고등어는 운반선을 통해 항구의 위판장으로 간다. 주로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잡은 고등어의 90% 이상은 부산공동어시장으로 향한다. 고등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붉은 살이 많고 지방질도 풍부해 쉽게 부패하는 특성이 있어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선도 유지의 관건이다.
대형선망들은 다음 주부터 두 달간의 휴어기를 갖는다. 해양수산부는 산란기의 어미 물고기와 성장기의 어린 물고기 보호를 위해 총 44종에 대해 금어기를 규정하고 있다. 고등어의 올해 금어기는 이달 23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로 돼 있지만 대형선망들은 기간을 조금 더 보태 6월 22일까지 휴어기로 정했다.
연근해의 어획 고등어 대부분이 모이는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고등어로 가장 유명한 도시다. 2011년부터는 고등어가 부산을 대표하는 시어(市魚)로 지정됐다. 어획 고등어의 90% 이상이 부산공동어시장을 거쳐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고 접근성도 좋다 보니 고등어 가공 업체도 50여 곳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산 고등어 맛을 쉽게 볼 수 없다. 식당과 마트는 이미 노르웨이산 고등어에 의해 점령된 지 오래다. 노르웨이 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노르웨이 고등어의 한국 수입량은 1만 6867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했다. 노르웨이 고등어의 국내 점유율은 매년 늘고 있다. 노르웨이가 고등어 수출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차갑고 청정한 바다 환경을 비롯한 기술력, 젊은 어업인 육성 등 국가적 차원의 연구와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수산물 유통의 허브인 부산공동어시장은 시설 노후화와 비위생적인 유통 환경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 1963년 개장한 공동어시장 시설은 곳곳이 낡았고 경매 시스템도 60년 전의 방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은 대형선망 소속 선단들이 부산을 이탈해 다른 위판장으로 가도록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한림, 경남 남해와 삼천포, 통영, 전남 진도 등 5~6곳의 위판장으로 선단이 옮겨갔다. 지자체들도 다양한 지원을 약속하며 대대적인 유치 노력을 벌이는 중이다. 전남 장흥군은 136억 원의 위판시설투자와 콜드체인 물류시스템 구축 등을 약속하며 대형선망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부산 수산업계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 수협중앙회 수협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부산공동어시장은 직접 생산 유발액 4580억 원, 유통가공이나 기자재 등 후방산업까지 포함하면 연간 최대 1조 원의 산업가치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동어시장의 경매량이 위축되면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악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아프리카 시장에서 국산 고등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산 수입 제재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로 인한 외부효과 때문이다. 게다가 가격이 저렴하고 풍부한 단백질 등 맛도 좋은 국산 고등어의 인기도 한몫했다.
이처럼 새로운 해외 시장의 개척은 국내 수산업계의 발전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고등어 도시’인 부산은 이런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공동어시장의 현대화 사업을 서둘러 시작해 위판·물류 자동화시스템과 전자거래 도입, 비대면 경매체계 구축 등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고등어를 대하는 방식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탈피해 부산 수산업의 미래가 달린 성장 산업으로도 키울 수 있음을 유념해 볼 때가 됐다.
2024-04-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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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오션 인텔리전스와 AI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를 두고 여야는 “정권 심판” “야권 심판”의 증거라면서 ‘제 논에 물 대기’에 바쁘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막말이 난무하고 ‘시대를 읽는’ 공약은 실종된 작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선거 뉴스에 가려져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5일 부산신항 7부두 개장은 부산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항만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 선박부터 컨테이너 이송 장비까지 모두 AI(인공지능)와 ICT 기술로 통제하는 스마트 항만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이다. ‘세계 9번째 스마트 항만’에 많은 언론이 방점을 찍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순위’가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기술의 강을 건넌 데 있다. ‘항만 AI’ 시대의 도래다.
선거 때문에 개장식이 미뤄졌지만 부산 기장군에 설립된 에코아쿠아팜의 양식 시설 완공도 ‘수산 AI’ 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수온과 수질, 사료 등을 AI와 ICT로 자동 관리하는 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천 특송물류센터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해 수천만 장의 엑스레이 통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기술 시연회가 지난해 말에 열렸고, 국립수산과학원은 독도수산연구센터를 통해서 AI 기반의 수중영상 분석 기술을 곧 개발하겠다고 지난 2일 발표했다. 지난달 8일에는 국내 자율운항선박 각 세부 기술을 실증할 1800TEU급 컨테이너선 명명식이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열렸다. 이르면 오는 9월부터 국제항로에서 실증 작업이 시작된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상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이 시행될 내년부터는 해기사 자격증이 없어도 AI로 구축된 선박이라면 운전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법제처의 ‘자격, 면허 업무 영역에서의 AI 활용 가능성에 관한 연구’ 용역 결과도 흥미롭다. 사람이 없는 선박 운항뿐 아니라 도선과 같은 안전 면허도 AI로 대체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역량 면에서 사람 전문가와 AI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AI 챗봇이 변호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는 기사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인간의 모든 자격 시험을 통과하는 AI가 5년 안에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창의력과 소통력을 두루 갖춘 이른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각 국가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 1월 미국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는 AI가 산업을 넘어서 생활로 진입했음을 확인하는 축제였다.
지난 4일 출범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축의 ‘AI 전략 최고위 협의회’는 그래서 더 주목된다. 사회적 혼란과 막연한 우려에 매몰되지 말고 통합된 시각에서 국가 전체의 AI 혁신을 추진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범정부 AI 거버넌스다. AI반도체, R&D, 법·제도, 윤리·안전, 인재, 정책 등 모두 6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 23명과 과기정통부, 기재부, 산업부, 중기부, 교육부, 개보위, 방통위 등에서 고위직 공무원 7명이 참여했다. 민관 공동위원장 2명을 포함하면 모두 32명이 국가 AI 전략의 틀을 짜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양수산부는 배제됐다. 해운, 항만, 조선, 수산은 물론이고 해양과학 분야 전문가도 포함되지 못했다. 해양과학은 수년 전 정부의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에 당초 빠졌다가 뒤늦게 우주항공에 덧붙여 ‘우주항공·해양’으로 포함된 전례가 있다.
해양과학에 대한 국가 관심을 이끌어낼 주역 중 한 명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이 공석이라고 해서 같은 실수를 허용할 수는 없다. 게다가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전임 원장이지 않은가. AI 바이오 분과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마지막 기회라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항만 AI, 수산 AI, 통관 AI 등이 구축되고 있는 시점이라서 더더욱 해양수산부와 해양산업계의 관심이 요구된다. AI 활용이 늦어지면 ‘해양강국’도 멀어진다. AI 활용에 대한 벽이 높을수록 AI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오는 9월로 예정된 제18회 세계해양포럼(WOF)도 ‘오션 인텔리전스(Ocean Intelligence)’를 대주제로 선정했다. WOF가 해운, 항만, 수산, 조선, 해양과학 등 해양산업 전반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논의하는 지식 축제와 네트워크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4-04-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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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 꼭 이뤄지길
중국 고사에 ‘화이부실(華而不實)’이라는 성어가 있다. 말 그대로 ‘겉은 화려한데 실속이 없다’는 의미다. 우리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도 맥락이 같다. 여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을 보면서 든 생각이 딱 그랬다. ‘해양강국 대한민국’은 역시 헛구호일까.
선장 출신의 해양법학자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권 여당의 ‘영입 인재’로 발탁됐을 때 전국의 상당수 해양수산단체는 이를 환영했다. 십시일반으로 예산을 모아서 지지 의견 광고를 신문에 싣는 일부 단체도 있었다.
해양산업 관련 의제·범위 대폭 확대
국가 자원의 효율적 활용 위해서는
특정 부서 넘어 범국가적 기획·관리를
해양수산업계 출신이 국회의원이 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처럼 여당 비례대표로 해양수산 전문가가 선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해양에 대한 정부 여당의 인식 변화로 받아들이는 해양수산인이 많았고, 필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여당의 정책 분야 인재로 영입된 김 교수는 붉은색 정당 점프를 입고 꽃다발을 건네받으면서 “해양산업 비중이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15%나 된다. 그 비중만큼만이라도 해양수산 전문가들이 국회에서 활동하게 되면 우리나라 해양산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선장으로 있다가 교수가 됐다. 고려대에선 석탑강의상 4차례, 안암연구상 3차례나 수상한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법학자다. 연구와 강의 성과만으로도 해양 전문가로 충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학자들과 달리 현장에 늘 발을 둔 실천가라는 대목에서 그는 더 돋보였다. 그는 현장 방문을 즐겼고, 그곳에서 크고 작은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기업가이든, 노동자이든 가리지 않았고, 각종 칼럼 쓰기와 좌담회 참여 등을 통해서 해양인의 목소리를 꿋꿋하게 전했다.
그러나 아쉽다. 해양수산인의 열망과 기대는 여기까지였다. 그는 집권 여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어렵게 선택됐지만, 그가 받은 배정 순위로는 당선권에 턱걸이하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화이부실이 되었다고나 할까. 김 교수는 결국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책 분야 인재로서 그의 역할은 유효하다.
총선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지역구 254명과 비례대표 46명, 즉 300명의 새로운 국회의원이 곧 탄생할 것이다. 국민 선택이 어떤 정치적 지형도를 그려낼지 짐작할 순 없다.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해양수산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정치를 통한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역할 찾기에 나선 그의 도전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참에 정부 여당에 재촉구한다. 대통령 직속의 가칭 ‘해양위원회’ 설치를 검토해 달라. 필자는 앞선 칼럼(〈부산일보〉 2023년 6월 12일 자 ‘오션 뷰’)에서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사안이 수없이 많겠지만 지금의 해양산업은 해양수산부라는 단위 부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하고 다양해졌다.
해양산업의 정의부터 과거와 달라졌다. 해운, 항만, 수산으로 단순히 구획 정리할 수 없다. 해양과학, 해양자원, 해양경계, 해양관광, 해양환경, 해양물류와 기후 문제 등 해양과 관련된 의제와 범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게다가 해양공간은 더 이상 해양수산부 인력과 정책, 정보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영역이 되고 있다. 각종 정책을 다부처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기획하고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을 사전 조정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국가 자원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 해양공간은 특정 부처가 아니라 범국가적으로 기획되고 관리돼야 한다.
국가 경제와 수출 정책의 사활이 걸린 ‘탄소 중립’만 해도 해상풍력을 포함한 해양공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탄소 중립’은 지금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 중 하나다. 실제로 이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크고 현재적이다. 대한민국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에 대해 노광장비 독점 기업 중 하나인 네덜란드 ASML사는 이미 생산품뿐 아니라 사용한 모든 전력에 대해 ‘탄소 중립’을 시한부로 강제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반도체 수출길이 완전히 막힐 수 있다는 경고다.
지금으로선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 해상풍력을 시급히 개발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선 해양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재배치해야 한다. 부처 간, 중앙-지방정부 간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요청하는 이유다.
‘해양’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새로운 인식 전환을 재촉구한다. ‘해양강국 대한민국’은 결단코 헛구호가 아니다.
2024-03-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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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항만 정보화, 왜 이렇게 힘들까
부산항에는 정말 많은 이해 당사자가 존재한다. 수출입 화주, 물류 회사, 트럭 운송사, 철도 사업자, CIQ(세관, 출입국 수속, 검역) 기관, 항만 현장 노동자(항운노조), 컨테이너 부두 운영사, 선사, 항만 부대 서비스 제공자(예선, 도선, 급유, 급수 등), 항만 당국 등 여러 주체가 만나고 부딪히며 상호 작용을 한다. 화주(화물의 주인)나 물류 회사는 컨테이너 화물의 수출 정보를 세관과 항만 당국에 신고하고 트럭 운송사 혹은 철도 사업자를 통해 항만에 가져다 놓는다. 트럭 운송사는 부두 운영사 측에 화물 도착 정보를 보낸다. 화물이 들어오면 부두 내 항만 노동자와 각종 기계 장비의 도움으로 선사가 운영하는 컨테이너 선박에 선적된다.
화물 선적을 완료한 선박은 부두를 떠나면서 줄잡이, 예선, 도선의 도움을 받아 출항을 한다. 바다를 건너 목적지 항만에 다다른 선박은 항만 당국에 입항 신고와 더불어 양하 또는 선적에 필요한 컨테이너 화물의 다양한 정보(양적하 물량, 최종 목적지 등)를 미리 부두 운영사에 전송해 신속하게 양적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또 선박이 정박해 있는 동안 급유나 급수, 혹은 선내 필요 물품을 공급받기 위해 항만 부대 서비스 제공 사업자에 도착 일정과 필요량도 미리 보낸다.
부두 내 이해관계사 정보 공유 체제 'PCS'
세계은행, 세계 우수 3곳 중 부산항 선정
뉴욕·뉴저지항만공사, 자매항 결연 요청
부산항, 해상 물류 혼란 해결사 역할 기대
이 모든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사이에 정보 교환이 원활해야 하며 최대한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유수의 항만은 항만 커뮤니티 시스템(PCS), 즉 항만 디지털 협업 플랫폼 구축에 노력했지만 성공적이지 않다. 이유는 당사자들이 정보 제공에 협조적이지 않고, 국가나 항만 당국이 강제할 수 없어서다. 글로벌 선사는 경쟁사에 정보가 노출될까 우려해 제공을 꺼리기도 하고, 전 세계에 컨테이너 부두를 운영하는 글로벌 부두 운영사는 해외 본사의 규정으로 인해 정보 제공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 세계 모든 항만이 PCS 구축에 있어 수년 전까지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부산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부산항만공사의 끈질긴 설득에 글로벌 기업들과 몇몇 우리 기업들이 협조를 했고, 100%는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실시간 혹은 과거 데이터를 제공받아 ‘체인포털(Chain Portal)’이라는 PCS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해관계자 설득의 키워드는 ‘윈윈’이었다. 정보를 제공하면 통합 플랫폼을 통해 취합된, 고도화된 정보를 다시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 정보 제공 기업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부산항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던 것이 돌파구였다.
지난해 11월 세계은행이 전 세계 PCS 우수 사례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중소 항만 PCS를 제외하고 글로벌 주요 항만 중에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싱가포르항, 그리고 부산항이 뽑혔다. 부산항 PCS의 특징은 컨테이너 트럭의 정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선사, 부두 운영사, 트럭 운송사 정보 연계가 시작점인 것과 보안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부산항의 PCS 수준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저지에서 개최된 한미물류공급망 콘퍼런스에서 뉴욕·뉴저지항만공사 항만 부문 대표가 “부산항과 자매항 체결을 제안한다”고 깜짝 요청했다.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자매 결연 협의가 진행됐고 뉴욕·뉴저지항만공사 본사에서 부산항만공사와의 자매항 체결식이 이뤄졌다.
글로벌 물류 대란을 경험하면서 전 세계 항만들은 그 어느 때보다 PCS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PCS는 기본적으로 ‘항만 내’에서 발생하는 정보 및 데이터 플랫폼이다. PCS 자체도 항만 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기 때문에 당연히 해상 공급망 원활화에 기여하지만, PCS끼리 연결된다면 글로벌 공급망 혼란 완화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산항에 입항 예정인 A선박이 앞선 항만에서 출항을 못하게 됐다면, A선박 입항에 맞춰 미리 장치장을 배치해 둔 부두 운영사는 난처하게 된다. 상호 연결된 PCS가 있다면, 대기 중인 B선박을 우선 접안시킨 후 장치장 배열을 변경할 수 있다. 부두 운영사는 선석을 놀리지 않아 매출이 늘고, B선박 대기 시간은 줄고, 화주는 B선박의 화물을 빨리 받게 되고, 부산항 시설 활용률이 높아지는 연쇄 효과를 얻는다. 그야말로 ‘윈윈윈윈’인 셈이다.
‘항만 내’ PCS 구축도 더딘 상황에서 PCS끼리의 연결은 먼 미래의 일일 수 있지만 글로벌 해상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PCS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모든 항만 당국이 인지하고 있기에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 부산항이 앞으로 해상 공급망 혼란의 해결사 역할에 앞장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4-03-1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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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운' 하기 어려운 나라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의 99.7%를 해상으로 운송하고 있는데, 전략물자인 원유, 가스, 석탄, 철광석은 100% 해상으로 운송된다. 이들 물자 중 원유의 50%, LNG의 48%, 철광석의 65%, 석탄의 94%를 우리 해운기업이 운송한다. 2022년 우리 해운기업 170개 사가 1665척, 992만 2000중량톤의 외항 선박을 보유해 세계 4위(중량톤 기준)에 올라서며 운임수입 38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우리나라 국제수지 중 서비스 부분 외화가득액 1302억 달러의 29%에 해당한다. 품목별 수출실적에서는 6대 산업인 철강 제품 수출액(384억)에 맞먹는 규모다. 2000~2004년 우리 해운기업이 세계 8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이렇게 해운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해양수산부가 ‘해운산업중장기발전계획’(2000년 5월)과 ‘해운수산발전기본계획(Ocean Korea 21, 2001년 6월)’을 법정계획으로 공포하고, 2030년까지 ‘해운 5대 강국’을 이루겠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운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데 따른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해운 하기 좋은 나라’를 기치로 내걸고 제주선박등록제도(2002), 선박투자회사(2002), 선박 톤세제(2004), 해양진흥공사(2018), 국가필수해운제도(2019) 등을 차례로 도입했다. 외항 상선 한 척을 확보할 경우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의 초기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 중 80~90%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뒤에 배를 운항해 번 돈으로 10~12년 동안 갚아나가는 것이 관례다. 또한 해운산업은 화물의 운송권을 놓고 전 세계 해운회사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완전경쟁에 노출된 거의 유일한 산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해운육성정책이란 곧 우리 해운기업들이 배를 확보하고 운항하는 데 소요되는 자본과 이자, 세금을 선진해운국과 비슷한 여건으로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해운산업을 둘러싼 환경을 보면 점점 ‘해운 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근해항로 취항 정기선사 간의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을 담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내외 15개 선사에 총 17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국적선사 10건, 외국적 선사 9건 등 모두 19건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1983년 2월 근해항로 취항 정기선사들이 협의체를 결성한 것은 운임을 담합해 과당 이익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제2차 석유 위기와 세계 경기침체로 해운산업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을 때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의 해운산업합리화정책에서도 협의체를 ‘합리화’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2월 1일 외국적 선사인 에버그린의 행정소송에 대해 재판부가 ‘공정위는 해운의 공동행위에 대해 처분 권한이 없고, 해운법으로 처분해야 한다’고 판결했다는 점이다. 근해항로 취항 선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건과 관련해 공정위는 ‘공동행위에 대한 처분권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상고장을 제출한 상황이고, 13건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사례는 톤세 일몰제다. 톤세제란 해운기업이 영업이익 대신 보유 선박 톤수에 따라 법인세를 납부하는 제도다. 그리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포르투갈, 핀란드, 미국, 영국, 일본, 대만 등 28개국이 톤세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며, 스위스와 이스라엘은 톤세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대부분의 톤세제 시행국들은 일몰제 없이 5~10년 주기로 타당성 검토만 시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톤세제를 도입했다 폐지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 톤세제의 경우, 주요 해운선진국에 비해 세율 자체도 높고 톤세제 적용 대상 선박도 제한적이다. 또 선사의 금융소득은 톤세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처럼 주요 해운선진국에 비해 비교열위인 톤세제마저 2024년 12월 말에 종료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해운 하기 어렵게 된 또 다른 상황은 선박의 침몰 사고에 대해 해운사의 대표 등이 ‘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선박매몰’ 혐의로 제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점이다. 선박 침몰 사고에 대한 대표 등의 책임 여부를 다투는 쟁송은 양측이 고등법원에 각각 항소한 상태다.
해운 5대 강국이 되기 위해 ‘해운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해양수산부의 정책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다. 그러나 정책 목표는 달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해양수산부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야 할 시기이다.
2024-03-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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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운 춘추전국시대 개막
지난해 2월 13일 자 이 지면에서 ‘해운동맹 2M 해체에 대비하자’라는 제목으로 세계 1위 선사 동맹(얼라이언스·Alliance) 2M의 해체와 그 파장을 다뤘다. 주요 내용은 덴마크 머스크(Maersk)와 스위스 엠에스씨(MSC)로 구성된 2M 해체 후 2M 40%,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 35%, 오션 얼라이언스(Ocean Alliance) 20%로 나뉜 해운 삼국 시대에 어떠한 변화가 초래될 것이며, 항만 업계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
머스크와 디 얼라이언스 소속인 독일 하팍로이드(Hapag-Lloyd)는 지난달 17일 새로운 ‘제미니 협력’의 출범을 선언했다. 이후 업계에서는 우리 국적 선사 HMM이 속한 디 얼라이언스가 하팍로이드가 빠지는 자리에 다른 선사를 영입해 얼라이언스의 도미노 붕괴가 진행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진행됐다. 그러던 중 지난달 27일 오션 얼라이언스가 돌연 현 체제를 5년 추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회원사인 프랑스 씨엠에이씨지엠(CMA-CGM), 중국 코스코(COSCO), 홍콩 오오씨엘(OOCL), 대만 에버그린(Evergreen)의 계약이 2027년에 만료되지만 굳이 당겨서 발표한 것은 동맹 체제가 공고하기 때문에 회원 선사 이탈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다.
이제 디 얼라이언스는 2025년 2월부터 이탈하는 하팍로이드의 역할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달 20일 대만 완하이(Wanhai)와 싱가포르 오엔이(ONE)가 미주 노선 공동 운항을 발표해 미주에서 디 얼라이언스와 완하이의 협업을 시사했다. 결국 내년부터 현재의 공고한 얼라이언스 체제 대신 각 운항 선사들이 서로 선박 내 스페이스를 교환하는 느슨한 협력으로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해운의 춘추전국시대가 개막하는 것이다.
이는 부산항과 산하 9개 터미널 운영사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3월 중순부터 신감만부두 운영사는 신항으로, 자성대부두 운영사는 신감만부두로 연쇄 이전이 예정된 상황에서 부산항이 글로벌 해운 시장의 변화 방향과 속도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살펴야 한다. 2M 해체, ‘제미니 협력’ 출범, 오션 얼라이언스 추가 5년 연장 발표는 항만업계의 마음을 설레게도, 답답하게도 한다. 기존 공고한 얼라이언스 체제로 기회가 한정되어 있던 터미널들은 새로운 파트너십을 제안해 볼 수 있어 마음이 설렐 것이다. 반면 기존의 확고한 계약 물량을 처리하던 터미널들은 대형 물량 유실 우려에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여러 개의 터미널 운영사가 경쟁하게 되면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이 추구되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부산항의 고질적인 문제는 선석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탓에 이용 요율이 신항 개장 때인 18년 전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요율 정상화에 나서면 추가 터미널 개장이 반복되는 바람에 이용료에 큰 변화가 없게 된 것이다. 보다 정확한 수요를 예측해 공급 시점을 관리하는 거시적이고 근원적인 국가 사회간접자본(SOC) 정책에 대한 고민과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한다.
부산항은 선사들의 극동아시아 비즈니스에 주요한 거점 항이다. 엠에스씨가 신항 1부두에 지분을 투자해 자산 터미널로 확보한 이후 환적 물량 위주로 2023년에 2022년 대비 30% 이상 물량이 증가한 것이 한 사례다. 전 세계에 수십 개의 터미널을 운영하는 UAE 디피월드, 싱가포르 피에스에이, 홍콩 허치슨이 모두 부산항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 역시 부산항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런 부산항을 관리하는 부산항만공사(BPA)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2040년 세계 3대 항만 도약’의 비전을 선포한 바 있다. 해운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진행 중인 올해 BPA는 지난 20년간 부산항 물량, 특히 환적 물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가 아닌 지속적인 글로벌 선사 추가 물동량 유치 방안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해양수산부 역시 선석당 설계 처리 능력인 50만~70만TEU보다 많은 최대 100만TEU까지도 처리되는 선석 공급 과잉 문제에 대해 각 터미널이 설계된 처리 능력에 한정해서 처리하면 된다는 허울뿐인 해결 방안이 아닌 시장 요구가 반영된 항만 기본 계획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BPA 그리고 해양수산부가 거시적인 정책과 실행 방안을 발표할 때까지 부산항 9개 터미널 운영사들은 해운 시장의 지각 변동에서도 제 역할을 찾아 주주사와 대주단이 기대하는 수익 창출은 물론, 터미널을 터전으로 생활하는 모든 멤버들의 생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해야만 할 것이다.
2024-03-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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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5개의 전쟁, 한국 해양산업의 길
세계는 지금 5개 전쟁이 진행 중이다. 두 개는 소리 나는 전쟁이며 또 다른 세 개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두 개의 소리 나는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각각 벌어지고 있다. 세 개의 소리 없는 전쟁은 에너지 전쟁과 환경 전쟁(일명 환경규제 선점 전쟁), 첨단과학기술 전쟁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내막은 에너지 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러시아의 많은 가스관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통과한다. 세계 인구는 지속 증가세이며, 사회 발달과 함께 에너지 수요 증가는 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에너지 가격 상승은 세계의 물가 상승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각국 정부는 대응책을 쏟아낸다. 우크라이나는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자국 영토를 통과하는 러시아 가스관에 대한 통관세 증액을 러시아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눈엣가시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배경으로부터의 전쟁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는 에너지와 연관되어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가자지구 전쟁도 에너지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 종교적인 갈등에만 국한하여 보기보다는 에너지 자원에 관한 이익과 권력을 둘러싼 경제적 갈등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 사용 석유 전량을 수입하는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의 갈등과 분쟁에 따른 유가 불안이 자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에 항상 민감하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 확보 문제가 고질적인 종교적·정치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가자지구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역시 지역경제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는 이스라엘로부터의 에너지 자원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뼛속 깊이 새겨두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도 에너지 자원 확보 문제가 내적으로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국민의 경제 활성화와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소리 없는 환경 전쟁은 에너지 전쟁과 대척 관계에 있다. 에너지를 쓸수록 환경은 악화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는 이미 80억 명을 넘었다. 지구 스스로 환경 복구가 가능한 최적의 수용 인구는 30억~40억 명이라고 한다. 초과 절반가량의 인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고스란히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2100년이 되면 지구촌 인구가 100억 명이 된다는 보고가 있는데,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자’라는 목표를 설정한 이후 세계 각국은 그야말로 환경 전쟁에 뛰어들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에너지를 더 쓸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환경규제 강화냐 완화냐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도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에너지 소비 증대에 따른 온난화 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고, 선진국에서는 온난화에 따른 혹독한 기상이변이 자국의 경제 기반을 흔드는 관계로 선진국 중심의 환경규제를 후진국에 들이대니 그야말로 에너지 전쟁과 환경 전쟁이 동시에 전개되는 셈이다.
이러한 전쟁에서 우리나라 해양산업 또한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해 7월 선박으로부터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2050년까지 100% 감축하기로 잠정 합의하였다. 이로써 약 3만 척에 달하는 5000 톤급 이상의 디젤연료 추진 선박은 모두 퇴출되고, LNG연료 추진 선박도 2050년까지 모두 퇴출되는 신세로 전락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제시되는 선박환경규제의 대부분은 선진국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선진국 카르텔이 제시하고 있는 규제를 따라가기만 하는 형국이다.
우리는 세계 3대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지만 선진국 카르텔이 정하는 환경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하청업체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도, 동남권에 해운과 조선, 항만과 물류, 조선기자재, 선박관리, 수리조선 등의 연관 산업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골고루 형성되어 있다. 해양산업은 우리나라 경제의 15% 이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전쟁, 그리고 환경 전쟁은 에너지 전쟁에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에너지 전쟁에서의 승자가 독식하게 되는 구조이다. 에너지 전쟁에서의 승자는 에너지 소비와 오염 배출이 적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자다. 결국은 친환경이면서 에너지 효율이 좋은 제품을 내놓아야 생존자가 되는 것이다. 에너지 전쟁에서의 승자로 남기 위해서는 첨단과학기술 전쟁에서의 승자로 남아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해양산업에서의 승자로 남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는가?
2024-02-1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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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특성화 교육을 지켜내자
해양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해양에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상선의 운항 그리고 바다 밑의 어족 자원과 관련된 수산,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 수출입 상품과 바다를 이어주는 항만과 물류, 해양과학과 해양문화도 포섭된다. 한국해양대학은 초기엔 상선의 운항에 필요한 항해사와 기관사만을 양성했기 때문에 해양의 의미는 상선 운항에 국한됐다. 1980년대 이후 학교 규모가 커지면서 해양은 넓은 의미가 됐다.
해양산업은 바다를 활용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바다는 육지와는 다른 환경이라서 위험하지만, 꼭 필요하고 잘 활용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도 특별해야 한다. 바다와 연관된 산업에 진출할 대학생을 특별히 교육하는 것이 대학에서의 해양특성화 교육이다. 해운산업 분야는 한국해양대, 수산 분야는 부경대, 조선 분야는 조선공학과를 중심으로 인력이 양성돼 왔다. 이들 학교와 학과는 훌륭한 인력을 배출해 해양산업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대학 진학생 수가 갈수록 감소하는 가운데 최근 신생아 수도 25만 명 아래로 줄어들면서 해양 분야 인력의 배출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그중에서도 수출입 상품을 실어 나르는 해운 분야의 인력 양성이 많이 논의되고 있다.
인구 절벽 시대 배 탈 젊은이 줄어
졸업한 이도 대학에 편입하게 해야
부산의 경쟁력은 해양산업서 나와
관련 대학의 기능·규모 더 확대를
해양산업 중 해운산업은 전통 있는 산업이다. 우리나라의 해운업 매출은 40조 원 정도인데, 이는 전체 수출의 5%에 해당하는 수치다. 우리나라 수출액이 800조 원이라고 할 때 99%는 해운을 통해 운송된다. 이는 해운이 수출을 달성하는 데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다. 그래서 국가 경제에서 해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가 아니라 절반 이상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수출품은 우리 선박에 실려서 나간다. 험한 바다를 헤치고 누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를 배달해 주어야 한다. 선원이 바로 그들이다.
해운 부분에서 선박을 운항하는 고급 선원을 해기사라 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을 해기 교육이라 한다. 우리나라 원양 상선은 1500척 정도이다. 이 선박에 승선하는 사관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으로는 한국해양대학, 목포해양대학, 부산·인천해사고 그리고 해양수산연수원이 있다. 1년에 약 1500명이 배출된다. 인구 절벽 시대에 배를 탈 젊은이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장차 지원 학생 수가 너무 줄어서 존폐 위기에 이르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면 수출 일꾼인 해양 인력의 배출과 교육기관들이 존속할 묘책은 무엇인가? 우선 선원이 될 학생들이 찾아와야 한다. 바다를 동경하고 기꺼이 선원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한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만큼 육지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다에 있어도 육지와 같은 생활환경을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최근 스타링크와 같은 인공위성 통신망을 활용해 상시 육지와 연결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진전이다. 이를 더 확산시키기 위해 부산시와 선주단체인 해운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해양특성화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교육기관이 존속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교육과 연구 기능이 축적·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대학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줄어드는 학생 수를 최대한 보강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법학이나 경영학 등 학부를 졸업한 30, 40대를 주 대상으로 하는 오션폴리텍 등 단기 과정에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이를 감안하면 대학을 이미 졸업한 사람들도 해양대학에 편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줄어드는 우리 선원들은 외국인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고 현재 상당수 진행 중이다. 외국인 선원들은 교육 수요가 있으므로 국내 대학의 장래 교육 자원으로 포섭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재교육 기능을 대학이 담당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미국에서 이런 사례를 볼 수 있다.
대학은 산업계가 요구하는 사람을 배출해야 한다. 1인 1기가 아니라 이젠 1인 2기를 목표로 교육해야 한다. 선박의 운항은 항해와 기관으로 나누어서 교육한다. 그러나 원격 조종이 되는 자율운항선박 시대에는 항해와 기관은 통합되기 때문에 둘을 모두 교육해야 한다. 흩어져 있는 해기교육기관은 효율화를 위해 통합 관리해야 한다.
대학은 위치한 도시와 운명공동체일 정도로 지역 경제에 중요하다. 대학이 존재함으로써 학생 수만큼 상주인구가 늘어난다. 해운, 수산, 조선업은 부산시 고용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의 핵심산업이다. 부산의 지역 경쟁력은 해양산업에서 나오므로 해양특성화 대학이 꼭 필요하다. 이는 세계를 목표로 더 특화하고 부산 고유의 것으로 키워나가야 할 대상이지 일반대학교와 통합의 대상은 아니어야 한다. 오히려 부산시는 해양수산부와 함께 해양 관련 교육과 연구 기능을 해양특성화 대학과 공동 관리해 대학의 기능과 규모를 확대해 주어야 한다.
2024-02-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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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지속 가능한 해양문화 교육
새해 들어 바다와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련 법안이 시행되고, 또 한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새해부터 시행된 법안은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해양교육문화법)’이고, 이달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해양관광의 체계적인 개발과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해양레저관광 진흥법’이다. 모두 ‘바다의 도시’ 부산에 힘을 주는 법안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관광시장에서 해양관광의 비중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22년 기준 전국 여행자의 71%가 연안 지역을 방문했는데,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해양교육 활성화 법안 새해 시행
미래 세대 위한 정책 마련 시급한 때
‘부산 바다 알기’ 부산의 미래 원동력
과거 바다는 농어민들의 생계유지와 각종 물자 수송 등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우리의 삶과 늘 공존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더 폭넓게 재인식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인 자크 아탈리는 “미래에도 초강대국은 바다를 통해서, 바다 덕분에 솟아오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미래의 초강대국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도 소중한 바다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체계적인 교육 과정과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 등 실질적인 ‘바다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바다의 도시인 부산은 단순히 구호적이고 선언적인 바다 교육이 아니라 ‘부산 바다’를 제대로 알고 배우며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일본에서는 바다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해양정책본부와 국토교통성, 국제교류기금재단이 주축이 돼 바다 오염을 막고 인간과 공유하는 바다를 만들기 위한 ‘바다와 일본’이라는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 330만여 명이 참가하고 있으며 1만 2000여 개의 단체와 기업이 파트너사로 활동 중이다.
그 첫 과제가 바로 ‘바다에 대해서 배우자’이다. 바다의 변화와 문화, 생물 등 10개의 행동 목표가 있는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바다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각 지역의 민관학이 공동 진행한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는 곳과 가까운 바다에서 잡히는 각종 어패류를 확인하고, 이 어패류가 유통 과정을 거쳐 음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또 바닷가를 걸으며 해양 쓰레기에 대한 인식 개선에서 나아가 해안가 쓰레기를 줍는 팀 대회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2년에 한 번 ‘바다와 일본인에 관한 의식 조사’를 실시해 향후 정책과 입법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도 구축 중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아동기의 바다 체험이 바다에 대한 의식 변화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한 항목이다. 이에 따르면 어린 시절 바다를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바다에 대한 애착과 관심도가 높다고 한다. 이처럼 아동기에 바다를 접하고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바다의 다양한 문화와 현상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도 지자체 차원에서 더 구체화한 해양문화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바로 인간과 바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바다에 대한 애착을 생기게 하는 지속 가능한 ‘바다 배우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옛말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표현이 있다. 배워야 알게 되고 알아야 무엇이 문제인지 찾을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바다나 해양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제도가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앞서 언급한 해양교육문화법이 올해부터 시행되면서 해양교육을 위한 기반은 마련됐다.
특히 우리 부산의 미래 먹거리는 누가 뭐래도 바다이고 그 속에서 많은 과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왕 정부에서 관련 법률까지 제정한 만큼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부산만의 시행 계획을 민관학이 서로 힘을 합쳐 수립해야 한다. 다른 지자체보다 먼저 자라나는 아이들이 바다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어린 시절 바다를 알고 체험하는 것은 긍정적인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부산의 아이들이 부산 바다에 관심을 두고 바다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살고 싶은 도시’로 부산에 대한 인식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부산을 두고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표현이 통용된 지 오래다. 청년층의 순유출이 많은 사실이 이런 자학적인 표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부산(釜山)스럽고 소중한 자산인 부산 바다를 알기 위한 지속 가능한 교육은 청년층의 부산 순유출을 막는 데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 부산의 미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2024-01-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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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사라지는 오징어, 그다음은?
기후변화로 인한 전 지구적 영향은 한둘이 아니고 또 영향을 미치는 시기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우리 수산업계는 이미 그 영향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국민들도 식탁 위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는 어종이 있는데, 바로 오징어가 아닌가 싶다. 그리 오래 갈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오징어는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였지만, 지금은 횟집에서도 보기 쉽지 않을 뿐더러 가격이 비싸 부담 없이 먹기도 어렵다.
실제로 어업 현장에서는 오징어잡이를 그만두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예전 오징어가 지천이던 동해로 나가도 오징어를 만나기도 어렵고, 급등한 기름값도 감당할 수 없는 탓이다. 오징어가 금값이 안 될 수가 없다. 하지만 오징어가 아무리 금값이라고 해도, 망망대해에서 만나기도 어려운 오징어를 바라고 조업을 계속할 수도 없는 형편이니 생계를 바꿀 수밖에 없다. 정말 예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우리의 동해가 어떤 바다이던가. 우리나라 연근해 오징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명실상부한 ‘오징어 창고’와 같은 바다였다. 통상 겨울철 동해안 남쪽에서 태어난 오징어는 7~8월 러시아 수역까지 올라갔다가 가을철 다시 따뜻한 물을 찾아 동해안 남쪽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최근 들어 동해안 북위도의 바닷물 수온이 오르는 고온 현상으로 오징어가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동해안의 명물이던 명태에 이어 오징어마저 자취를 감추면서 활기찼던 동해안의 ‘겨울 경기’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도 지역의 오징어 어획량은 1365톤으로 전년도의 3504톤의 39%, 지난 3년 평균인 6064톤에는 23%에 그쳤다. 어획량 감소가 매우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어획량 감소에 따라 어획고도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어획고는 181억 2000여만 원으로, 전년도의 375억 8000여만 원의 48%, 지난 3년 평균치인 545억 5000여만 원의 33% 수준으로 급감했다. 동해를 접하고 있는 강원도와 경북지역 수협의 위판량도 전년에 비해 10%가량 줄었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근해 전체의 오징어 어획량도 10년 전 16만 톤 안팎에서 2022년엔 약 5분의 1 수준인 3만 6000톤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잠정치는 아마 여기서 더 줄었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획량 감소 원인으로는 수온 상승으로 인한 바다 환경의 변화가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18일 동해안의 오징어 급감에 대응해 케냐 등 동아프리카 수역을 대체 어장으로 개척하기로 밝혔지만, 예전과 같이 오징어가 다시 우리 국민들의 ‘심심풀이 먹거리’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멀게만 느껴졌던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가 당장 우리 식탁에서 오징어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런데 고수온 현상으로 인한 어획물 급감은 오징어 한 어종에만 그치지 않을 태세다. 해수 온도 상승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바다 산성화’가 해양 생물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수온으로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면서 해양의 산성도 수치가 점점 높아지는 현상이 바다 산성화인데, 특히 우리 국민들이 즐겨 먹은 굴과 조개류에 매우 해롭다고 한다.
어패류 껍데기는 탄산칼슘으로 이뤄져 산성과 만나면 쉽게 연해지거나 녹아버리는 탓이다. 해양 생태계에 산소를 공급하는 산호가 바다의 산성화 심화로 갈수록 폐사 위험이 높아지는 것도 우리의 해양 식량 자원 확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명태에 이어 이미 씨가 마른 오징어, 거기다 굴과 조개류, 멸치, 갈치, 정어리 등 많은 어종이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조만간 우리 식탁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민들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 국민들의 식량 문제로 번질 게 뻔하다. 지구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로 진입하는 현재의 기후변화가 해양과 육지를 가리지 않고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악영향이 더 즉각적이면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해양이 훨씬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이제 인류의 식량 문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세계 195개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해 온실가스 감축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실질적인 효과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당장 인류의 식량 자원 확보부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식량 가격은 더 급등할 것이고, 이로 인한 다툼과 분쟁도 더욱 늘어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2024-01-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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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 패권과 융복합 인재 육성
충무공 이순신의 노량해전을 다룬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한 이후 우리의 역사 속 바다에서 벌어졌던 전쟁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바다는 항상 글로벌 패권 전쟁의 중심에 있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해양 영토와 관련한 국가 간의 첨예한 대립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바다는 과거부터 국제 무역, 안보, 식량, 생태계뿐만 아니라 에너지, 조선, 관광, 바이오에 이르기까지 경제발전의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이런 바다를 둘러싼 산업은 해양바이오, 수산, 해운, 조선, 해양플랜트 등 개별적으로 인지돼 왔으나 이제는 그런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산업은 IT, 금융, 철강, 화학, 전자 등 개별 산업이 아니라 모두 사슬로 연결되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움직이는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화로 점철되는 빠른 변화 속에 산업 간 융합은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해양수산에도 인공지능과 디지털화의 물결이 거세다. 경계가 저물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차원에서 해양 교육과 연구를 통해 글로벌 패권 경쟁에 나설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는 글로벌 패권 경쟁과 함께 글로벌 인재 전쟁이 도래하고 있다. 이제는 글로벌 기업들도 국가를 가리지 않고, 우수한 디지털 인재를 영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대졸 직원의 60% 이상이 다른 국가에서 온 인재들이다. 테슬라, 구글, 알리바바, 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은 최고의 인재를 직접 기르기 위한 자체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인재 확보 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결국 시대가 요구하는 수준의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대학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산업구조 속에서 지금까지 해양을 둘러싼 교육은 산업별 영역의 인재를 양성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래형 융복합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요즘은 코딩이 기본이라는 말을 어디서나 자주 들을 수 있다. 이제는 인문학 전공자도 기술과 공학을 이해해야 하며, 공학 전공자도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문화를 다루는 인문학을 이해하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미래의 교육은 기계적이고, 공장의 생산라인 같은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이 아니라 디지털 커리큘럼과 같은 시대가 요구하는 유연한 변화를 갖출 필요가 있다.
해양수산 분야의 산업 경쟁력도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서 환경, 디지털, 경영, 인문,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융합적 산업만이 세계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프랑스가 발표한 2024년 전기자동차 구매보조금 지급 대상에 우리나라는 현대 KONA만 포함되었다. 그 이유는 전기자동차일지라도 생산, 수송,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따지면서 친환경 보너스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자동차·운송·해운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해상운송의 탄소배출 절감, 첨단 무탄소선박 개발 등 혁신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스마트 아쿠아 팜의 선진 사례로 노르웨이 연어 산업에서도 융합적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노르웨이 연어 양식산업은 인공부화부터 기르는 과정까지 바이오, IT, R&D, 디지털을 접목하여 스마트 무인 풀 생산 체계를 갖추어 생산성과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최첨단 항공물류 시스템을 통해 디지털화된 최적화 풀 콜드체인을 달성하여 불과 36시간 이내로 전 세계에 도달하고 있다. 또한 시장 확대를 위해 국가의 문화와 소비자를 이해하는 섬세한 영역에서도 높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백화점과 마트에서도 노르웨이산 생연어가 유행하고 있다. 연어에 친숙하지 않은 중국 소비자를 위해 매장에는 노르웨이산 연어 생산 홍보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하고 있다. 이처럼 노르웨이 연어는 모든 분야의 융복합을 이루어내면서 전 세계 150개국 이상에 수출되고 있다.
해양수산 분야만 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첨단 디지털 친환경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가 앞으로 바다와 세계를 둘러싼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위해서는 해양수산이 첨단 AI, 공학, 인문 사회학, 경영학, 환경학 등과 융복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다양한 산업적 역량을 두루 섭렵하고, 산업의 변화와 시대적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융복합 미래 인재 양성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해양의 특정 교육연구 영역을 수행하여 온 국립부경대학교와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담대한 혁신을 도모하여 재학생 4만 명을 넘어서는 해양과학종합대학교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2024년 갑진년은 대한민국 해양수도 부산에 세계 최고의 해양카이스트 탄생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젊은 인재들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도약할 수 있는 ‘청룡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2024-01-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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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수산부 장관'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교체됐다. 새 장관은 최근까지 부산 영도에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을 이끌던 강도형 원장이다. 그는 새해 첫 업무가 시작되는 2일 취임식을 예정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없을 것 같다. 멋진 출발을 기대한다.
그러나 취임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음주 운전, 폭력, 논문 표절, 배우자 위장 전입 등 최소 4가지 이상에 대해 해명하는 곤욕을 치렀다. 여소야대의 국회는 자질과 능력 부족을 탓하며 청문보고서를 아예 채택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임명 강행’이 없었다면 그는 그대로 낙마의 불명예를 안았을 것이다.
해수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사태에 대한 대응 방법을 두고 최근 격론을 겪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야 충돌이 잦은 부처가 아니다. 예산 규모부터 전체 19개 부처 중 14번째로 약골 중 약골로 분류된다. 청문 과정에서도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해수부 장관에 대한 청문보고서는 대부분 채택됐다.
역대 해수부 장관 중에서 이번처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경우는 윤진숙 전 장관이 유일했다. 문성혁 전 장관도 부적격 의견이 나왔지만 적격 의견을 병기하는 해법으로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강도형 장관은 청문 과정에서 “장관 후보 지명을 어떻게 받았느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다른 장관 후보자들이 받지 않은 질문이었다. 의원들이 정말 궁금했다기보다 ‘이력’만으론 자질과 능력이 의심된다는 불신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야당 의원들은 ‘불가사의’ ‘신의 손’ ‘보이지 않는 손’ ‘벼락출세’라면서 조롱했다.
강 장관은 이력이 화려하지 않다. 정치인도, 고위공직자도, 석학급 교수 출신도 아니다. 진즉부터 예고된 장관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1년 남짓의 해양과기원장이란 직책이 없었다면 정말 내세울 이력이 없을 뻔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과거 이력이 아닐 테다. 앞으로 국회보다 더 ‘엄정한’ 국민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해양 산업의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고 바다와 수산물 안전에 대한 국민 눈높이도 달라졌다. 해양 바이오는 ‘전문가’ 강 장관이 진단했듯이 겨우 ‘태동 단계’다. 장관이 된다면 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해양 바이오 예산을 확대하겠다고 말했지만, 6조 원대의 해수부 총예산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 해양 과학이 해수부 핵심 업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예산까지 언급한 것은 성급한 욕심이 아닐까.
‘부실’ 우려를 낳고 있는 HMM 매각 작업은 그의 역량을 검증하는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해운과 금융, 어느 쪽도 ‘전문적’이지 않은 데다 해수부가 단독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해수부는 예산에 비해 현안이 많은 부처다. 해양의 특성상 전체 부처 중에서 관할 권역이 가장 넓다. 1차 산업에서 4차 산업까지 모든 산업 영역을 담당하는 부처이기도 하다. 그는 현안에 대한 이해도를 묻는 질문에 “공부하겠다”고 답했지만 의원들 지적처럼 해양수산부 장관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리는 아닐 테다. 정확히 보고받고, 세밀하게 검토해서,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해양 관련 정보를 가장 체계적으로 보고받겠지만, 오히려 그 속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장관이 있다는 점에서 경계할 것은 경계하면 좋겠다.
그를 믿는다. 그의 자질과 능력보다 그가 부산에서 보여준 열의와 패기, 직접 발로 뛰며 현안을 해결하려던 실천력을 신뢰하고 싶다. 그는 ‘동료’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해수부 공무원들을 동료라고 지칭하며 함께하겠다고 답했다. 해양과기원 원장이 된 뒤 경쟁에서 낙오한 선배 연구자를 보직자로 옆에 두며 함께하는 ‘동료관’을 떠올리게 했다. 독단을 경계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장관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무회의에서 해수부 위상을 끌어올리고, 해수부를 넘어서 다른 부처의 협력을 끌어내는 역량도 기대하고 싶다. 다행히 대통령이 12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부처 간 칸막이를 과감하게 허물고 과제 중심으로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는 억세게 관운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에서 부산으로, 다시 세종으로 권력 핵심이 되는데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바다 빛깔 ‘청룡’의 새해에 ‘국회 불신’을 ‘국민 신뢰’로 화답하고, 해양 강국 대한민국 기틀을 다진 ‘성공한 장관’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당부한다.
2023-12-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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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119 대 29'… 그래도 담대한 도전을
‘119 대 29’는 부산 시민에게 오랫동안 뼈아픈 스코어로 각인될 것이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는 결국 유치되지 못했다. 그것도 너무 큰 격차로 종결됐고, 이로 인한 시민 상실감은 크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오는 2025년이면 세 번째 월드엑스포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본 내 여론이 좋지 않다. 오사카엑스포 개최를 겨우 2년 앞둔 시점인데, 지난달 초 실시된 국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8.6%가 2025오사카엑스포에 대해 “불요(不要)”라고 답했다. ‘불요’란 ‘불필요하다’, 즉 ‘개최하지 말자’는 의미다. 심지어 엑스포 유치 도시인 오사카를 기반한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 지지층 65%는 엑스포 개최를 노골적으로 반대했고, 시민 9만 명의 ‘반대’ 서명 명부가 오사카 당국에 제출되기도 했다.
최근 오사카엑스포 반대 여론 높아
일본, 철회 않는 건 ‘유발 효과’ 때문
부산엑스포 유치 성적 실망스럽지만
과정만큼은 진심… “다시 시작하자”
가장 큰 반대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자재비와 노무비가 당초보다 거의 배나 올라 국민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일본 지인들을 만나면 결이 조금 다른 얘기를 종종 듣는다. 월드엑스포를 두 차례나 개최한 일본은 2025년 오사카엑스포에서 세계 최고 지도국 지위를 선양하고 싶은데, 딱히 ‘꺼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일본 특유의 자괴감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최첨단 기술은 물론이고 세계를 향한 예지력도 내세울 게 없다는 걱정과 불만이 엑스포 개최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제 와서 오사카엑스포를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공익재단법인 2025일본국제박람회협회는 자국의 국가전략 ‘소사이어티 5.0’ 실현을 목표로 일본을 세계에 다시 알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이 기대하는 오사카엑스포 유료 입장객도 아이치엑스포보다 무려 1000만 명 더 많다. 투입 비용이 적지 않지만, 유발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긍정적’ 신호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릿쇼대학 오오이 교수는 오사카엑스포의 투입 대비 생산 효과가 1.3배라고 주장했다.
부산이 유치하려 한 ‘등록엑스포’를 일본은 이미 1970년 오사카, 2005년 아이치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오는 2025년 다시 오사카에서 개최한다. 대전과 여수에서 ‘인정엑스포’만 치른 대한민국과는 엑스포에 한해서는 격(格)이 다르다.
부산엑스포 유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30’ 대신 ‘2035’ ‘2040’으로 숫자만 달라졌다.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은 ‘도전’이고 ‘성취’다.
부산은 엑스포 유치전에 늦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각료, 부산시장, 기업인, 시민단체까지 오랜만에 똘똘 뭉쳐서 응원했다. 성공의 쾌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샘솟은 ‘도전 아드레날린’은 적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허망하게 졌고 아쉬움과 허탈감이 컸지만, 대통령과 부산시장이 공동 목표를 향해서 그렇게 고군분투한 모습을 최근 수십 년간 본 적이 없다. ‘119 대 29’라는 숫자에서, 허탈감이 컸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그 낯설고 뜨거운 장면들은 우리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누구보다 국제 뉴스에 민감해서 일찍부터 엑스포 유치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엑스포 유치 사절단이 외국을 순방하고 영향력 있는 인사를 만나 환담을 나누는 장면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때때로 빙의의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발로 뛰고 머리를 맞대면서 빚어낸 서사다. 설령 기대와 실망감이 교차한 서사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작가 김주영의 단편소설 중 〈머저리에게 축배를〉이란 묘한 제목의 작품이 있다. 될 수 없고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드디어 그 목표가 달성된 날, 자신을 위해 준비된 술판을 갑자기 뒤집자 순간 동료들이 중의적으로 내뱉은 건배사가 바로 ‘머저리에게 축배를’이었다.
어쩌면 우리보다 일찍 유치전을 시작한 사우디를 상대로 한 우리의 엑스포 도전이 다소 무모하고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가 그랬다.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란 장미꽃을 피워냈다. 대한민국은 이제 끝났다고 했던 외환위기 속에서도 ‘금 모으기’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오 대 영(5 대 0)’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거스 히딩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119 대 29’는 머저리 같은 성적이 맞다. 그러나 그 머저리들을 위해 축배를 들고 싶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외치고 싶다.
2023-12-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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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니어쇼어링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까?
10여 년 전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듯하다. 니어쇼어링이란 생산 기지를 소비지 근거리 또는 소비지 인접국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즉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을 먼 중국이 아닌 멕시코와 같은 인근 국가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많은 공산품이 부산항을 거쳐 북미, 유럽 등으로 환적되는데 만약 니어쇼어링이 심화되어 탈중국 현상이 일어난다면 이는 부산항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수년 전부터 니어쇼어링의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뒤져봤으나 마땅히 니어쇼어링 현상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에 더해 글로벌 물류 대란까지 겪자 니어쇼어링이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아졌다. 부산항 환적 수요가 실제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 또 한 번 인터넷을 검색해 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니어쇼어링을 보여 주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었다.
미국 등 소비국 주변에 생산 기지 이전
중국 수출품 부산항 환적 감소 우려돼
낮은 운임에 운송 거리는 예상 밖 증가
공장 이전,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 가능
그러던 중에 약 2주 전 부산항만공사가 주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서 한 연사가 이례적 주장을 했다. 니어쇼어링 현상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컨테이너로 수출입되는 화물의 가격에 비해 현재의 컨테이너 해상 운송 비용은 미미한 수준이다. 글로벌 제조 기업들은 여전히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등 기존의 생산 기지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주 극히 일부의 니어쇼어링 사례를 일반화해서는 안되며, 나아가 니어쇼어링 발생 시 수혜를 입을 수 있는 특정 국가들의 정치적인 희망 사항이 마치 사실인 양 호도되고 있다고도 했다.
조금 놀라운 주장이기도 했지만 내심 반갑기도 했다. 니어쇼어링 현상은 장거리 해상 운송 수요 감소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생산 기지가 집적된 중국의 생산 물량 감소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부산항으로서는 중국발 환적 물량이 감소할 수 있는 악재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 주장을 180도 뒤엎는 주장이기에 대단히 신선하기도 했지만 그 연사의 솔직함이 오히려 더 놀라웠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자리잡은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박하는 것은 대다수 전문가가 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사는 논리정연하고 자신감 있게 본인의 의견을 개진했다.
상기 주장의 강력한 근거는 최근 덴마크 해운조사분석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북미 지역 수입 컨테이너 화물 1TEU당 평균 해상 운송 거리는 약 1만 2000㎞로 지난 5년 간 계속 증가했다. 반면 전체 북미 수입 컨테이너 물량 중에서 북미 역내 항로 운송 물량 비중은 5년 연속 감소했다. 즉 니어쇼어링 현상으로 중국에서 생산되어 북미로 수입되던 화물이 인접 국가인 멕시코 생산으로 전환됐다면 장거리 해상 운송 거리는 줄어들고 근거리 역내 운송 비중은 늘어났겠지만 반대의 데이터가 나온 것이다.
데이터를 보면서 필자는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의 지위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유지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세청 자료를 역산해서 보면 부산항을 통해 연간 수출입되는 컨테이너 화물 1TEU 속 평균 화물 가격은 대략 6000만 원이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 화물을 태평양을 건너 북미까지 보내는 해상 운임은 최근 시세로 150만~200만 원 정도다. 즉 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이 태평양을 건너는 비용은 컨테이너 속 화물 가격의 평균 약 2%에 불과하다.
최신 유행하는 나이키 운동화로 컨테이너를 가득 채운다면 그 가격이 소매가 기준 최대 5억 원에 달하고 이 경우에는 해상 운임이 컨테이너 속 화물 가격의 0.3%도 차지하지 않는다. 기계 설비는 10억~20억 원을 호가하니 화물 가격이 고가라면 해상 운임은 비용 측면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일반 제조업에 있어서 생산 기지로서의 최우선 고려 대상은 저렴한 노동력과 해당 지역의 제조 생태계 조성 여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이 부분에서 중국을 대체할 만한 나라는 많지 않다. 미중 갈등이 변수가 될 수 있겠으나, 현재 미국의 입장을 보더라도 최첨단 장비가 아닌 일반 제조업의 중국 생산에 대해서는 큰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1956년 4월 컨테이너로 최초 운송을 시도했던 미국의 말콤 맥린이 컨테이너 시범 운송 후 기존 대비 운송 및 하역 비용이 97% 감소했다고 했다. 글로벌 아웃소싱 생산을 가능하게 해 준 건 바로 컨테이너로 인해 해상 운송비가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저렴함 때문에 니어쇼어링은 아주 제한적이거나 혹은 훨씬 더디게 진행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2023-12-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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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선원 해외 취업 60주년' 지금부터 준비를
1960년대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30% 내외로 대학생 수는 10만 명 정도였고, 대졸 취업률은 50%가량 됐다. 이는 해양 관련 대학도 비슷한데 1962년과 1963년 한국해양대 졸업생 취업률은 50%였다. 그러나 이 두 해를 제외하면 상황은 좋지 않다. 앞서 2년을 제외하곤 1955년부터 1964년까지 한국해양대 취업률은 대략 5%에 지나지 않았다. 취업하지 못한 항해과 졸업생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거나, 기관과 졸업생은 목욕탕 등에서 일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항해과 졸업생을 ‘지게꾼’, 기관과 졸업생을 ‘보일러쟁이’라는 자조적인 말로 부르기도 했다. 1965년 6월엔 선장 39명, 기관장 20명 등 갑종 해기사 144명이 실업 상태였다. 당시 해양 분야 고등교육기관의 경우 수업료는 면제됐고 제복비, 기숙사비 등은 국비로 지원되고 있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양성한 고급 해기 인력인 해양 분야 대졸자들이 실업 상태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적 재원을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964년부터 우리나라 선원 외국 나가
국내 해사 산업 고도화·선진화에 기여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1세대 선원
자료 수집·정리해 기념관 건립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반전도 있었다. 협성해운(설립자 고 왕상은)이 홍콩의 풍성선무(豊誠船務)에 한국 선원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게 1964년이었다. 협성해운은 해외 선주사에 우리나라 선원을 처음으로 공급하는 만큼 대한해기원협회(현 한국해기사협회)에 가장 우수한 해기사를 선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협회는 당시 한국해양대 교수로 있던 김기현을 선장으로 초빙해 1항해사와 기사, 기관장 등을 선임토록 하고, 2, 3항해사·기사는 시험을 쳐 선발했다. 이렇게 모인 김 선장과 이상래 기관장 등 28명의 선원이 1964년 2월 10일, 2700톤급 룽화(Loong Wha)호에 승선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선원의 해외 취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최초의 일이다.
김기현 선장이 교수직을 버리고 해외 취업선 선장으로 이직하게 된 데는 높은 급여 때문이었다. 당시 국적선 선장 월급은 1만 9000원 정도였지만, 룽화호 선장 월급은 7만 원 정도로 3.5배가량 많았다. 한국 선원의 저렴한 인건비와 근면·성실함을 확인한 일본과 미국의 대형 선사들이 잇달아 한국 선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선원의 해외 취업에 앞서 간호 인력과 광부들의 독일 취업이 먼저 이루어졌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1만 8000여 명의 광부와 간호 인력이 파독 근로자란 이름으로 파견됐다. 파독 근로자들은 14년간 총 1억 15만 달러의 외화를 국내로 송금했다. 이들의 노고와 희생을 기려 파독근로자기념관(서울), 파독전시관(남해), 파독광부기념관(태백) 등이 마련됐다. 1965년 10월 6일, 국내 잉여 인력을 해외에 진출시킴으로써 실업자 감소, 인구 증가 억제, 외화 획득, 교역 증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세계 속에 한국을 심자’는 기치를 내걸고 해외개발공사가 설립되었다. 선원 해외 송출 업무는 1966년부터 한국선원해외진출진흥회가 도맡아 하다 해외개발공사 설립 뒤인 1966년 12월 15일에는 공사로 업무가 이양되었다. 해외개발공사는 이후 한국해외개발공사를 거쳐 1991년 현재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 취업 선원들은 1965년부터 1999년까지 모두 82억 6178만 1343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고, 지금도 해외 선주의 선박에 승선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해외 취업 선원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제조업의 평균이익률을 10%로 가정할 경우 820억 달러 상당의 수출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해외 취업 선원들은 또한 해외 선주의 다양한 최신 선박에 승선해 선박 운항 기술을 습득해 왔을 뿐만 아니라, 국적선사들이 초기 자본을 확보하고,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을 통해 국적 선대를 확충할 수 있는 인적 자본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나아가 선원선박관리업, 선박대리점업, 선용품공급업, 선박수리업과 조선업 등 해사 산업의 고도화와 선진화에도 기여했다. 미국의 대형 선사 라스코와 MOC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까지 국내 조선소에서 34척의 선박을 새로 만들고 90척의 선박을 수리했다.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 해사 산업은 해운 세계 6~7위, 조선 1~2위, 항만 7위 등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제 2024년 2월이면 우리나라 선원이 해외 취업에 나선 지 60주년이 된다. 사람에게도 60주년은 환갑에 해당하는 의미 있는 해로 여겨지고 있다. 1세대 해외 취업 선원들이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해외 취업 선원들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 해외 취업 60주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마도로스기념관을 건립했으면 한다. 이것이 그들이 우리나라 해사 산업과 국민 경제에 기여한 바를 기리고 기억하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2023-12-03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