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션 뷰] 해사법원, 이젠 경쟁력 갖춘 설계 필요하다
2015년 처음 제기된 해사법원 설치 논의가 마침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최근 제출된 여섯 개 법안을 검토한 뒤, 박찬대 의원안을 중심으로 단일안을 마련했다. 남은 몇 가지 쟁점만 정리되면 올해 안에 해사법원 설치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크다. 논의가 장기간 이어진 만큼, 이제는 해사법원의 구성과 기능이 어떻게 설계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논의의 가장 큰 변화는 명칭에서 드러난다. 해사법원은 해사국제상사법원으로 명칭이 확대돼 논의되고 있다. 이는 해사 사건뿐 아니라 국제상사 사건까지 포괄하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국제거래전담부 등에서 처리해 온 국제상사사건을 해사법원의 기능과 결합해 사건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로, 21대 국회에서 한국해법학회와 이수진 의원이 처음 제안한 모델이기도 하다. 새롭게 구상된 해사국제상사법원은 해사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과 국제상사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이 함께 설치돼 두 축으로 운영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1심 재판은 부산과 인천이 분담해 맡게 된다. 토지관할 구역을 나누어 부산은 영남·호남·제주 지역을, 인천은 수도권·충청·강원 지역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러한 해사국제상사법원 사이는 전속관할이 아닌 임의관할이기 때문에 원고는 부산해사법원과 인천해사법원 중 보통재판적이나 특별재판적이 인정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선택해 소를 제기할 수 있고, 해사법원 내에서의 합의관할이나 변론관할도 허용된다. 두 해사법원은 각각 단독부 3개, 합의부 1개, 항소부 1개로 구성될 것으로 추측된다.
해사법원을 둘러싼 쟁점도 남아 있다. 해사법원은 1심 사건만을 전담하며, 별도의 해사고등법원은 설치되지 않는다. 따라서 항소심은 일반 사건과 동일하게 처리된다. 부산해사법원에서 나온 항소 사건은 부산고등법원이, 인천해사법원 사건은 서울고등법원(또는 향후 설치될 인천고등법원)이 맡게 된다. 다만 국제상사사건에 한해 서울고등법원의 전담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쟁점은 ‘전속관할’이다. 해사법원은 해사사건에 대해 전속관할을 갖게 돼, 앞으로 상법 해상편 손해배상·책임제한·선박충돌 등 해사민사사건과 각종 해사행정사건은 모두 부산·인천해사법원에서만 다뤄진다. 다만 전속관할로 인한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일부 사건은 중복관할을 인정했다. 소액사건, 등기 가능한 선박 외 재산에 대한 집행·보전처분, 일부 선원법 적용 사건 등이 그 대상이며, 등기 외 소형선박에 대한 가압류처럼 현장에서 빠른 처리가 필요한 사안은 일반 지방법원 지원에서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롭게 법률안에 포함된 국제상사사건 범위도 쟁점이다. 국제상사사건이 해사국제상사법원의 전속관할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어떤 사건을 그 범주에 넣을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법무부는 ‘해사국제상사법원에 관할합의를 한 사건만’ 전속대상으로 보자는 입장으로, 당사자가 서울중앙지법 관할로 합의했다면 그 사건은 기존대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처리된다. 반면 법원행정처는 국제상사사건을 ‘외국적 요소가 있는 상사법률관계’ 자체로 파악해 관할합의 요건을 두지 않으려 한다. 이 경우 해당 사건은 모두 해사국제상사법원으로 이송되거나, 서울중앙지법은 소를 각하해야 한다.
해사법원은 2030년 개원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설치 배경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해사·국제상사 분쟁을 국내에서 처리해 외화유출을 막고, 동시에 국민이 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재판청구권을 강화하려는 데 있다. 2030년까지 해사법원이 실질적인 선택을 받는 전문법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충분히 사건 기반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사건 수 확대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해운회사와 조선소 역시 분쟁 해결을 부산해사법원에서 진행하도록 약정을 체결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해상운송약관이나 용선계약서에도 해사법원을 관할로 하는 조항을 반영해 자연스럽게 사건이 해사법원으로 모일 수 있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해사법원은 신속성과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전문 해사판사를 안정적으로 확보·육성할 체계 마련이 핵심 과제다. 압류 선박을 휴일에도 해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등 실무 대응력 강화도 필요하다. 특히 해상법 강의가 거의 없는 로스쿨 현실을 고려하면 전문 인력 양성은 더욱 시급하다. 결국 해사법원이 성공하려면 법률 수요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신뢰할 만한 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오랜 염원이었던 부산해사법원의 설치가 우리 해사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5-11-23 [18:06]
-
[오션 뷰] 잠자던 무인도 '보전' 넘어 '활용'으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무인도서가 2910개 있다. 480개의 유인도를 포함해 모두 3390개의 섬 가운데 86%를 차지하는 규모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이 무인도서는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히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을 넘어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다채롭다.
먼저 국가 영토 주권 측면에서 무인도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영해를 설정하는 23개 영해기점 가운데 13개가 무인도서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육지 면적의 4.4배에 이르는 해양 관할권을 확정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이러한 무인도서가 없다면 우리 해양 영토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생태적 측면에서도 무인도서의 가치는 매우 크다. 고립된 환경 덕분에 무인도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멸종위기 야생생물과 천연기념물의 서식지이며 고유 식물의 자생지이자 희귀 조류의 산란지 역할도 한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서들은 말 그대로 다양한 생물종의 마지막 보루이자 낙원이며 안식처인 셈이다.
관광 자원으로서의 잠재적 가치 또한 주목할 만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과 고유한 생태계는 지속가능한 해양관광 혹은 생태관광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무인도서가 수려한 경관과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어 관광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무인도서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보전하기 위해 해양수산부는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07년 제1차 무인도서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제2차 실태조사(8차년도)가 진행 중이다. 전남대학교 무인도서연구센터가 주관하며, 인문·사회, 지형·지질·경관, 식생, 식물상, 육상동물, 해안무척추동물, 해조류 등 생물상, 수질, 시설물, 해양쓰레기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매년 300여 개의 무인도서를 직접 방문해 영상 촬영부터 보고서 제작까지 실태조사의 전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는 무인도서의 관리 유형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보전 가치에 따라 절대보전(출입 자체를 제한해야 하는 지역), 준보전(일정 행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 지역), 이용가능(훼손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 출입과 활동이 허용되는 지역), 개발가능(조건부 개발이 가능한 지역) 등 네 가지 유형으로 지정되며, 이러한 분류는 무인도서를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
관리 기반 구축과 더불어 해양수산부는 무인도서의 숨은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2017년부터는 매월 ‘이달의 무인도서’를 선정해 생태·지질·환경은 물론 문화, 역사, 인문·지리적 스토리까지 소개하고 있다. 2021년에는 최초로 ‘무인도서 백서’를 발간했고, 2022년에는 생태·경관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가 높은 100곳을 선별해 ‘무인도서 100선’을 펴냈다. 나아가 이러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무인도서 종합정보제공’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2024년부터는 무인도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무인도 LIVE’ 캠페인도 추진하고 있다. ‘무인도 재발견, 나와 대한민국이 더 커집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민이 직접 무인도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인도서를 직접 방문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체감하도록 하는 교육적 성격의 캠페인이다. 전국 공모로 선발된 참가자들이 무인도서의 안보·생태·관광적 가치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함으로써 올바른 이용과 가치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무인도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정책 방향을 기존의 ‘보전’ 중심에서 ‘보전과 활용의 조화’로 확대했으며, 2020년에 수립된 ‘제2차 무인도서 종합관리계획(2020~2029)’에서는 ‘자연과 사람,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무인도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정책 전환의 핵심은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보전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활용이다.
무인도서는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력의 중심을 떠받치는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양한 생물의 피난처이자 생태적 보고라는 본래의 가치에 더해,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핵심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시대를 넘어섰다. 보전의 원칙을 확고히 하되, 국민과 함께 그 가치를 체감하고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보전과 활용의 조화’라는 정책 전환은 이러한 흐름에 힘을 보태며 무인도서의 확장성을 한층 넓혀 주고 있다. 우리가 무인도서의 잠재력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5-11-16 [18:18]
-
[오션 뷰] 대전환의 시대, 기술혁신으로 파고를 넘자
2003년, 필자가 청년 공직자로서 부산해수청에 발령받아 마주한 바다는 거칠고 역동적이었다. 그해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장기간 이어진 화물연대 파업이 있었고, 9월엔 최악의 태풍으로 불린 ‘매미’가 부산항을 할퀴고 지나가 크레인 붕괴로 인해 일부 부두 기능이 멈춰 서게 되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부산항의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부산항과 이곳에 삶의 터전을 둔 노동자들은 하나가 되어 이를 극복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말, 부산항은 우리 항만 역사상 최초로 연간 1000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하며 기적 같은 회복력으로 세계 항만물류업계를 놀라게 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부산으로 돌아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의 최선봉에 섰던 이 도시는 이제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가 나붙고, 청년층의 이탈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할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며, 미래를 이끌 스타트업 기업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게 현실이다.
부산항 '디지털화' '탈탄소화' 혁신 속도
지능형 물류 플랫폼·친환경 벙커링 인프라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결단과 실행을
새로운 성장 동력 원천은 '바다와 청년'
지난 30여 년간 해양 정책에 몸담고 살아온 탓일까? 필자는 부산이 다시 도약할 기회를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항은 지난 십수 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있는 항만 중 하나이다. 개항 이래 한 세기 반 동안 대한민국 수출입 관문으로서 국가 경제를 뒷받침해 왔고, 글로벌 환적항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지키며 수십 년간 견조한 성장세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항만을 가진 도시가 바로 이곳 부산이다.
하지만 지역 항만물류 산업이 국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견주어 보면, 아직 고삐를 늦추긴 이르다. 로테르담항이 창출하는 경제효과는 네덜란드 전체 GDP의 약 7%를 점유하고, 싱가포르항의 경우는 6%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산항의 경우는 0.2%대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1월 발표한 ‘부산 지역 항만물류 산업의 현황 및 발전 방안’에 나와 있다.
싱가포르와 로테르담이 항만을 통하여 각각 동아시아 해운의 중심과 유럽의 산업 허브로 자리 잡았듯이 부산 또한 항만을 성장축으로 하여 다가오는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으로 대표되는 세계 산업사에서 유례없는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혁신’을 촉매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가속화되며 이 기술혁신은 청년 과학자의 열정과 틀을 깨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청년들이 기술혁신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구축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만들어지고 무르익는다. 이러한 규모 있는 R&D 투자는 정부와 공공기관, 대학과 대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또 하나 세계사적 패러다임 전환인 친환경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싱가포르는 이미 수소·암모니아 벙커링 허브 조성을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로테르담항도 액화 암모니아의 STS(Ship-To-Ship) 벙커링 실증 단계에 들어서는 등 두 항만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도 세계 항만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두 선진 항만이 대전환기를 맞이하여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감탄스럽다.
부산항도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 ‘탈탄소화(Decarbonization)’를 양대 축으로 하는 항만의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기반의 지능형 물류 플랫폼과 스마트 자동화 터미널 구축,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벙커링 인프라 조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지금 우리의 결단과 실행이 부산항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물류·조선·에너지 등 바다에 기반하고, 청년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기술혁신에 의한 ‘디지털과 탈탄소화’라는 부산항의 패러다임 전환은 궁극적으로 항만과 지역의 지속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앞으로 그려질 지역 미래상(未來像)의 중심에는 ‘청년’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150여 년간 부산항은 대한민국 경제의 관문이었다. 이제는 대전환의 파고를 넘는 범선이 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이라는 돛을 펼쳐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양을 항해 출항해야 한다. 항만을 통한 도시의 성장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한 산업의 도약을 이루어 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파고를 헤치고 지역과 국가의 새로운 100년을 이끄는 성장 동력의 원천은 결국 바다와 청년으로부터 시작되는 기술혁신에 있다.
2025-11-09 [17:59]
-
[오션 뷰] 부산항 위기 극복, '영토' 확장이 핵심
최근 부산항의 물동량에 경고등이 켜졌다.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블록화·파편화되고, 2월 이후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이라는 이중 압박이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올해 부산항의 물동량은 등락을 반복하며 소폭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6월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심화는 중국발 미국향 물동량 감소로 이어졌고, 글로벌 선사들이 얼라이언스 기항 항만에서 부산항을 제외할 경우, 얼라이언스 선사 간 연결 물동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부산항은 미국향 환적 물동량 감소 가능성과, 제미나이 얼라이언스 협력 대상에서 부산항을 주로 이용하는 HMM 등 디 얼라이언스 선사들이 제외되면서 물동량 감소라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일시적인 현상이든 구조적인 변화든, 이제는 능동적인 전략을 통해 부산항의 물동량 안정화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미중 갈등 속 물동량에 경고등 켜져
싱가포르, 항만공사 주도로 위기 극복
해외 거점 확보 사례 벤치마킹 시급
부산항의 위기는 단순한 항만 운영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첫째, 대한민국은 2023년 기준 GDP 대비 무역 의존도가 약 88%에 달하며, 이는 미국(24.9%)이나 일본(45.2%) 등 선진국 대비 2~3배 높은 수준으로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둘째, 우리나라 수출액의 약 70.3%가 전자 부품, 화학 소재 등 중간재에 집중되어 있어 글로벌 가치사슬(GVC) 내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외 무역의 99% 이상이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극도로 취약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수출입의 약 80%가 경유하는 대만해협이 봉쇄될 경우, 대만(GDP 43% 하락)에 이어 가장 큰 경제적 피해(GDP 23.3% 하락)를 입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상 물류망의 안정성 확보는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내 제조기업들은 미중 갈등에 따라 북미(미국, 멕시코), 동남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으며, 분산된 생산 거점과 해외 물류 거점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 위기를 기회로 삼아 혁신에 성공한 싱가포르항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가 과도한 비용과 혼잡 문제를 이유로 거점을 말레이시아의 탄중 펠레파스항(PTP)으로 이전하면서, 싱가포르항은 약 170만 TEU의 물량이 단숨에 이탈하는 위기를 겪었다. 당시 싱가포르항만공사(PSA)는 이 위기를 발판 삼아 단순한 항만 운영자를 넘어 ‘글로벌 항만 투자자이자 운영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PSA는 2024년 기준 45개국 77개 항만 터미널을 운영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싱가포르항과의 환적 연결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PSA와 같은 국영 물류기업을 통해 싱가포르가 서비스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공공 부문이 주도하는 글로벌 물류 거점 확보가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핵심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PSA의 매출액은 우리나라 최대 항만공사인 부산항만공사(BPA) 대비 20배 이상, 종업원 수는 200배 이상으로 싱가포르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BPA가 이 정도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부산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해양수도 부산의 성장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지역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전국 및 전 세계의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기능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취약하다. 국적 10대 물류기업의 해외 물류센터 중 자영 비율은 5.8%에 불과하며, 글로벌 항만 터미널 운영도 4개소에 불과하여 글로벌 네트워크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국가적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하고 궁극적으로 부산항의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BPA를 포함한 4대 항만공사가 중심이 되어 글로벌 물류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항만공사법상 외국 항만 건설·관리·운영 사업 범위 내에서 법적으로 추진이 가능하며, 해외 진출 리스크가 큰 민간 기업들을 대신하여 ‘앵커 투자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다.
2010년 이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순위가 급락했던 대만의 카오슝항 사례 역시 대만국영항만공사(TIPC)가 투자 자회사를 통해 해외 물류 거점을 확충하여 물동량 창출과 국가 공급망을 안정화시키고 있다. 해외 거점 확보는 궁극적으로 부산항 물동량 확충과 국가 공급망 안정화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미래 국가 공급망 안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부산항을 포함한 대한민국 항만의 미래를 결정지을 전략적 투자 실행에 나설 때이다.
2025-11-02 [18:27]
-
[오션 뷰] 공해·심해저의 새로운 거버넌스 시대
전 세계 해양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공해와 심해저에 대한 새로운 법질서가 시작된다.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에 따른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 및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협정(이하 BBNJ 협정)이 발효를 앞두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모로코와 시에라리온의 비준서 기탁으로 60개국 비준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BBNJ 협정은 2026년 1월 17일부터 발효된다. 이는 단순한 하나의 국제 협약 발효가 아니다. 약 20년간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자, 인류가 공유하는 바다를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 국제법 체계가 마련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역사적 여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올해 3월 19일, 우리나라는 전 세계 21번째, 동아시아 최초로 BBNJ 협정 비준서를 기탁했다. 중국이 아직 비준 절차를 진행 중이고 일본은 서명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신속한 비준은 해양 거버넌스를 선도하는 국가로서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다.
BBNJ 협정은 네 가지 핵심 의제를 통해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닌, 소통과 국제 협력, 그리고 과학 기반 의사 결정을 통한 해양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첫째, 공해 및 심해저의 해양 유전 자원과 디지털 서열 정보에 대한 이익 공유 체계를 수립한다. 통고 제도를 통해 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금전적·비금전적 이익 공유를 통해 개발도상국도 해양 유전 자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해양 바이오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투명하게 공유되는 해양 유전 자원 정보를 적극 활용하고, 우리의 선진 연구 역량을 통해 혁신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익 공유 체계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공해와 심해저에 해양 보호 구역과 같은 구역 기반 관리 수단을 설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당사국 총회는 과학기술 기구의 권고와 폭넓은 이해관계자 의견을 바탕으로 투명한 절차를 통해 보호 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공해의 약 1%만이 보호되고 있는 상황에서, 2030년까지 해양의 30%를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려는 국제사회의 목표 달성을 위해 BBNJ 협정은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셋째, 공해상 모든 활동에 대해 환경영향평가 수행 의무를 명시한다. 이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통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예방적 접근 방법이다. 산업 활동에 대한 제약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는 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철저한 환경영향평가와 이에 기반한 기술 개발은 국제 표준을 선도하고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넷째, 개발도상국이 협정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와 해양 기술 이전을 의무화한다.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 협력을 통해 전 지구적 해양 보호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의 해양 연구 인프라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개도국에 대한 역량 강화 지원은 단순한 의무 이행을 넘어, 해양 거버넌스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의 목적 달성은 과학적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BBNJ 협정 준수와 이행을 위해 해양 유전 자원 조사·채집 역량, 환경영향평가 수행 능력, 해양생물 다양성 연구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특히 대양 조사 및 관측 기술, 해양생물 다양성 정보 관리 시스템 구축은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분야다. 원양어업, 해운업, 해양 바이오산업 등 관련 산업계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도 필요하다. BBNJ 협정을 제약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선진적인 해양 연구 역량, 세계적 수준의 조선·해운산업, 그리고 성장하는 해양 바이오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BBNJ 협정의 성공적 이행을 통해 해양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새로운 국제 규범의 의무와 규제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과학기술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며,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 모델을 구축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해양 질서 시대에 선도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의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이 이 역사적 여정의 선두에 서서, 해양강국으로서의 책임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2025-10-26 [17:55]
-
[오션 뷰] 자율운항선박과 해양수도권, 한국의 새 항로
몇 주 전, 삼성중공업은 독자 개발한 AI 자율운항시스템을 탑재한 선박이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중공업뿐만 아니라 HD현대, 한화오션 등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자율운항선박(MASS : 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자율운항선박은 기존 선박에 정보통신, 센서, 인공지능 등 스마트 기술을 융합해 시스템이 선박을 제어하고 사람의 간섭이 없거나 최소화하여 운항이 가능하도록 한 선박을 말한다. 이미 자동차의 경우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등 운전자의 개입이 없는 ‘레벨4’ 수준의 기술이 개발되어 상용화를 앞둔 상황이다.
같은 운송 수단으로서 자율운항선박과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핵심 기술은 비슷하다 할 수 있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등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반면, 압도적 스케일 차이로 자율운항선박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난이도는 훨씬 높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경우 적게는 십여 명 많게는 수십 명의 선원이 승선하고 대형 사고 발생 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자율운항선박에 대한 국제적 룰을 만들기 위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새로운 규정(MASS Code) 개발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IMO(국제해사기구)에서 시작되어 내년 5월까지 비강제 코드의 채택을 목표로 회원국 간 열띤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비강제 코드의 채택 이후 일정 기간 경험 축적기를 가진 후 2030년경 강제 코드가 채택되고, 2032년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도 자율운항선박 상용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수부와 산자부 공동으로 자율운항선박 상용화를 위한 1단계 연구 개발 사업을 올해까지 완료할 예정이고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상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이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일 개최된 ‘AI 대전환 릴레이 간담회’에서 2030년까지 완전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이를 위한 ‘K-자율운항선박 얼라이언스’를 구성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필자의 기우(杞憂)일까? 기술 개발 속도나 국제적 논의 흐름에 비하여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혁신은 뒤처진 감이 없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율운항선박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인력 양성부터 선박관제, 항만운영시스템 등 해운항만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도 해운항만과 조선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섭(統攝)적 인재가 필요하다.
연말까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예정되어 있다. 단순한 1개 중앙 부처의 지방 이전이 아니라, 해양수산 유관 기관과 기업의 집적화를 통해 ‘해양수도권’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을 발굴하기 위한 시도로 이해한다. 북극항로 개발 등 여러 이슈가 있지만, 자율운항선박 이슈야말로 해양수산 유관 기관의 집적화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가장 크게 기대할 수 있는 분야이다. 한국해양대, 부경대 등 전통적 해양수산 인력 양성 기관은 물론, KMI, KIOST 등 기존 연구 기관까지 더해져 정책의 수립, 집행 및 실증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이야말로 자율운항선박 상용화라는 복잡한 과제 이행을 위한 최적의 환경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칭 ‘자율운항선박 통합 지원센터’ 구축과 운영을 제안하고자 한다. 동 센터에서는 자율운항선박 및 기자재 안정성 검증은 물론 기존 음성 통신에 기반한 관제 시스템을 넘어선 스마트 해양교통플랫폼 구축, IMO 등 국제기구의 관련 논의 대응과 국내 법제도 개편 등이 주요 기능이 될 것이다. 결은 다르지만 자동차의 경우, 한국교통안전공단(TS)에서 자율협력주행 인증관리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은 IMO의 MASS Code 대응 간사 기관이자 자율운항선박법상 운항 해역 및 운항 승인, 선박 및 기자재 안전성 평가 등을 대행하고 있다. 새 정부의 핵심 과제로서 ‘해양수도권’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지금, 공단도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접목되는 선박 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양수산인력 양성 및 해양안전관리 체제의 근본적 변혁이 불가피한 자율운항선박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핵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부산 시민과 해양수산업계의 높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5-10-19 [18:12]
-
[오션 뷰] 바다를 통한 기후 해법 '바다숲'
바다는 해류 순환과 수증기 공급을 통해 수분과 산소를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지구 생명 순환의 조절자 역할을 한다. 인간의 신체로 생각하면 바다는 심혈관이자 허파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바다는 조용하지만 아주 위험한 재앙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바다 사막화’로 불리는 갯녹음 현상이다. 해양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해조류가 사라지고, 바다 밑 암반이 하얗게 변하기 때문에 백화 현상으로도 불린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이 2024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갯녹음 면적은 이미 약 1만 5907ha로 확대되어 우리나라에서 해조류가 자연적으로 서식할 수 있는 암반 면적의 37%에 달했으며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갯녹음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연안 해역의 약 40%에서 해조류가 감소했다. 호주 남부의 켈프 숲은 지난 50년간 90% 이상 소멸했다. 지중해 연안은 1960년대 대비 해조류 서식지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북미 서부 해안에서도 대규모 해조류 감소가 보고되고 있어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해조류 소멸, 암반 백화 갯녹음 심각
탄소 흡수 못하고 어류 서식지 상실
바다숲 347㎢ 조성 생태계 복원 중
자연 기반 기후변화 해법 가능성 커
공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의 해조류 바다숲은 연간 337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이는 동일 면적의 열대 우림보다 5배 많은 양이고, 흡수 속도는 최대 50배 빠른 것이다. 최근에는 해조류가 녹더라도 해수 속 중탄산 이온(HCO₃-) 및 난분해성 용존유기탄소(RDOC) 형태로 장기 고정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는 미처 몰랐던 해조류의 높은 기후변화 대응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고 새로운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이 될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도 해조류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62차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총회에서 우리가 제안한 해조류의 신규 탄소 흡수원 인정 요청은 일본, 영국, 칠레 등 다수 국가의 지지를 확보했고, 오는 10월 말 페루 리마에서 열릴 제63차 IPCC 총회에서 공식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갯녹음 현상으로 인한 해조류 감소는 탄소 흡수 능력 상실뿐만 아니라, 어류의 산란장과 치어들의 가장 중요한 서식지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연간 약 600억 원 이상의 어업소득 손실로 이어져 1ha당 어업 소득이 평균 40% 이상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이렇듯 갯녹음 확산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해양 생물 다양성 감소와 기후변화 대응 능력 저하라는 심각한 현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갯녹음의 원인은 우선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과 해조류를 먹는 초식 동물의 과도한 섭식으로 알려져 있다. 수온이 오르면 해조류의 성장이 둔해지는 반면 어류, 성게류와 같은 초식성 동물의 먹이 섭취가 늘어나 해조류 군락이 쇠락한다. 그리고 과도한 연안 개발 및 산업·농업 폐수와 비점오염원에서 유입되는 영양 염류·중금속은 해조류 서식지 축소와 생장 저해 요인이 된다.
따라서 갯녹음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육상에서는 하천 오염 저감과 비점 오염원 관리, 적정한 연안 개발 관리가 필요하고, 해양에서는 초식성 동물 개체수 관리, 해조류 이식, 수온 변화에 강한 고수온 내성 품종 개발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직접적인 바다숲 조성을 통해 해조 군락지 복원 및 서식 가능 면적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 연안 263개소에 347㎢ 규모의 바다숲을 조성해 왔고 2030년까지 540㎢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 조성된 바다숲만으로도 연간 약 11만 7000톤의 이산화탄소 흡수에 기여하고 있고, 이는 자동차 약 4만 9000대의 연간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자연 암반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해조류 해면 양식 기반을 활용한다면 잠재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바다숲 사업으로 인한 탄소 흡수량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에 직접 기여하여 국민과 기업에 되돌아갈 것이다.
바다숲 조성은 단순히 바다 생태계 복원만 하는 것은 아니며, 해양 생물의 산란장과 서식지를 제공하여 어업 자원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탄소를 저장하여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자연 기반 해법이다. 이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기후 해법’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해조류 기반 바다숲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바다숲을 잃는다는 것은 수산 자원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바다의 생명력은 물론 미래까지 잃는 것이다. 갯녹음 확산이라는 침묵의 재앙 앞에서 더는 미룰 시간이 없다.
2025-10-12 [17:59]
-
[오션 뷰] 컨테이너 해운, 제2의 '보릿고개' 올까
어릴 적 교과서에서 접했던 단어 가운데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보릿고개’라는 말이다. 직접 겪어 본 세대는 아니지만, 그 말은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가 여물기 전까지 허기를 참아야 했던 농촌의 절박한 시간을 상징한다.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업계에도 자신들만의 보릿고개가 있었다. 필자가 보기엔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5년이 그 시기다. 이 기간 전 세계에 20개 가까이 있던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 중 절반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4~2015년 칠레 선사 CSAV와 CCNI는 각각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함부르크수드에 인수됐다. 2016년엔 중국 차이나쉬핑이 코스코와 합병했고, 싱가포르 APL은 프랑스 CMA CGM에, 한국의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2017년에는 홍콩 OOCL이 중국 코스코에, 아랍에미리트 UASC는 하파그로이드에 합쳐졌다. 함부르크수드도 덴마크 머스크에 흡수됐다. 이어 2018년 일본의 K-Line, MOL, NYK의 컨테이너 부문만 합쳐 ONE가 탄생했다.
그 결과 상위 10대 선사의 시장 점유율은 과거 65%에서 85%로 뛰었다. 구조 조정과 합종연횡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집을 키운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경쟁의 장으로 재편된 것이다.
왜 이런 보릿고개가 왔을까? 가장 큰 원인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운임이었다. 해상 운임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수요는 교역에서 비롯되는 화물 운송량, 공급은 전 세계 컨테이너 선박의 선복량이다.
먼저 수요 측면을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해상 컨테이너 운송량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지역별 편차는 있었지만 약 4~5년이 걸렸다. 그러나 회복 이후에도 이전과 같은 급격한 경제 성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 결과 해상 운송 수요는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반대로 공급 측면에서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국제무역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그 열매를 누린 컨테이너 선사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 호황을 만끽했다. 당시 쌓아둔 현금으로 선사들은 그해 무려 600만TEU에 달하는 신조선을 발주했는데, 이는 당시 전 세계 선복량(1100만TEU)의 6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문제는 이 선박들이 3~5년 후 순차적으로 시장에 투입되면서 2013년부터 수요 대비 공급이 과도하게 늘어나 해상 운임은 곤두박칠쳤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운업계의 보릿고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상황은 역설적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2020년 팬데믹은 북미 소비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왔고, 해상 운송 수요도 급증했다. 덴마크의 해운 조사 분석 기관 씨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팬데믹 2년 6개월 동안 컨테이너 선사들이 벌어들인 이익은 그 이전 60여 년간의 누적 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사상 유례없는 호황이었고, 선사들은 다시 대규모 신조 발주에 나섰다.
그 여파로 2023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인도 선복량이 230만TEU(약 360척)를 넘어섰고, 2024년에는 300만TEU(약 480척)에 육박했다. 2027년 310만TEU, 2028년에는 380만TEU가 발주 선사에 인도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 조선소는 향후 3~4년 치의 일감은 확보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시장에는 막대한 공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묻지 마 발주’라고 비판하며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컨테이너 해운은 규모의 경제가 절대적인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다른 선사가 몸집을 키우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해운동맹 내에서 협상력이 떨어지고,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또 경쟁사 신조계약으로 조선소 도크가 차면 발주가 어려워 내가 원하는 선박 인도 시점을 놓치게 된다.
다만 지금은 많은 글로벌 선사들이 팬데믹 호황기에 쌓아 둔 현금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심각한 수준의 보릿고개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 선복량은 3300만TEU로 2008년 당시의 세 배에 이르며, 여기에 이미 발주된 900만TEU가 추가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해운업은 전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자유시장 체제다. 과거 보릿고개 시절 수많은 선사가 시장 논리에 의해 쓰러져 갔듯, 앞으로도 선사의 운명은 세계경제의 흐름과 해상운임의 향방에 달려 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세계경제가 다시 활황을 맞아 해상 운임이 상승할 때, 화주들이 선사들의 수익을 단순히 ‘바가지’로만 보지 않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버텨낸 이들의 존재를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2025-09-28 [18:02]
-
[오션 뷰] '산업의 바다' 넘어 '시민의 바다'로
9월이 되어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이 보인다. 올여름 부산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화제로 들끓었다. 바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다. 정부 부처의 이전 자체만으로도 부산이 해양수도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항만과 물류, 조선 등 해양 산업 기반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정책과 투자가 앞으로 어떻게 실현될지가 주목된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수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부산시민이 바다를 체감하고 배우며 즐길 수 있는 시민 중심의 공공성과 교육 프로그램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간 부산국제보트쇼와 KIMA(대한민국국제해양레저위크) 등 부산에서 개최되는 행사들의 국고 보조금은 삭감되고 있으며, 행사 자체도 단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시민이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레저 스포츠와 교육 프로그램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해운대와 광안리, 다대포 등 부산의 대표 바다는 여전히 ‘관광객 중심’의 소비 공간으로 머물고 있다. 시민이 바다를 생활 속 문화로 체감하도록 정책적 배려를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몇 년 전 호주 시드니에서 직접 경험한 본다이 비치의 ‘본다이 서프 카니발’은 이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이 카니발은 1915년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행사로, 서핑과 수상 구조 훈련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역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해 왔다. 매년 여름 열리는 축제는 단순히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단발적 행사가 아니었다. 시민들이 바다를 배우고 즐기며 스스로 안전을 지켜내는 문화가 곳곳에 뿌리내린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파도 속 구조 훈련에 참여했고, 청소년들은 팀을 이루어 라이프 세이빙 경기에 도전했으며, 어른들은 해변에서 열린 해양안전 세미나에 참여하며 안전과 교육의 중요성을 직접 체감했다. 음악과 퍼레이드가 더해진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시민 교육과 공동체 경험이라는 목표는 명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단순한 스포츠 대회를 넘어, 시민들이 바다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장이 되었고, 지역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바다는 단순한 관광이나 레저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 생활 속 학습과 공동체 활동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드니는 이러한 시민 중심 해양 프로그램을 각 바다에서 운영하는 동시에, 항만과 물류, 조선, 해양 R&D, 해양 레저 산업을 강화하며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하는 산업적 전략도 함께 추진, 두 가지 전략이 조화를 이루며 시민과 산업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적 해양도시’로 자리 잡았다.
부산도 해수부 이전을 계기로 이러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초·중·고 단계별 바다 교육 과정을 구축하고,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 아카데미를 운영해 바다 안전과 레저 교육을 정규화해야 한다. 축제와 이벤트는 단순한 관광객 유치용에서 벗어나, 시민이 배우고 즐기는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본다이 사례처럼 안전, 교육, 공동체를 핵심으로 삼는 부산형 해양 축제가 요구된다. 또한 항만과 조선 등 산업 중심 개발과 함께 시민이 바다를 향유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에 충분한 예산과 정책적 배려를 투입해야 한다.
만약, 시민의 바다를 충분히 확장하지 못하면 부산이 직면할 위험도 분명하다. 산업 중심 이미지가 고착하면 국제적으로 ‘살기 좋은 해양도시’로 성장에 제약과 함께 바다와 시민 사이의 거리감은 심화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바다를 산업적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되며, 지역 균형발전과 지속가능성 역시 훼손된다. 관광객 중심 이벤트로 정책이 고착될 경우, 비수기나 경기 침체기에 치명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시민 공감대가 부족하면 행정 신뢰가 약화할 우려가 있다. 결국 산업 중심의 해양수도만 강조하고 시민의 바다를 놓친다면, 부산은 내부적으로 시민 체감이 결여된 ‘반쪽짜리 해양수도’로 남게 될 것이다. 시민의 바다가 부재한 해양수도는 결국 허울뿐인 간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해수부 이전은 단순한 행정 이동이 아닌, 부산이 시민과 바다가 자연스럽게 하나 되는 해양도시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산업적 해양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시민 중심의 해양 레저, 교육, 축제, 환경 관리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것이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자리매김하는 핵심 조건이다. 바다는 부산의 정체성이자 미래다. 시민이 직접 체감하고 누릴 수 있는 바다, 즉 ‘시민의 바다’를 만들어 나갈 때, 부산은 단순한 산업도시를 넘어 진정한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다. 산업과 시민이 균형을 이루는 정책이 실현될 때, 부산의 바다는 생활 속 문화이자 안전한 학습 공간, 공동체의 터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2025-09-21 [18:05]
-
[오션 뷰] 세계적인 항구도시 부산에 '이것'이 없다
요코하마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다. 특히 요코하마항은 아름다운 항구로 오래전부터 각인돼 있다. 항구 풍경을 조망할 방법은 많지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요코하마 유람선 여행이라고 한다. ‘시바스’라는 수상버스를 타면 요코하마 베이 브리지와 밤에 더욱 아름다운 붉은 벽돌의 아카렌가 창고, 숲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지에서 발품을 팔면서 쫓아다니는 여행과는 품격이 다른 재미와 감상을 느낄 수 있으니 요코하마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필수 코스처럼 알려져 있다.
요코하마항뿐 아니다. 세계적인 미항에는 그 도시 풍경을 가장 미학적으로 보여주는 여행 수단으로 유람선과 여객선이 꼭 있다. 바다의 시선이 없는 항구는 세계적인 미항이 될 수 없다는 역설이 그래서 가능하다. 그렇게 바다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으로 여행자들은 도시를 오롯이 기억한다.
홍콩,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등도 다르지 않다. 홍콩은 특히 초고층 금융 스카이라인이 수평으로 길게 이어져서 유람선 선상에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다 담기 어렵다. 해 질 녘 레이저쇼에 흥분한 마천루 풍경이 사진에 담겼다면 그 여행자는 유람선을 탔다는 증거가 된다. 항구도시는, 특히 세계적인 항구도시는 바다의 시선으로 바다를 활용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며칠 전 재미 삼아 AI에게 물었다. 바다에서 사진을 찍기에 좋은 부산 해안선 포인트를 추천하고 언제, 어떻게 촬영하면 좋으냐는 질문이었다. AI는 짧은 시간에 태종대, 오륙도, 다대포 해안과 갯벌, 광안대교, 해동용궁사 암벽 등을 손꼽았고 촬영 기법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중에서 태종대는 육지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AI는 바다에서 바라보는 풍경, 특히 수직 절벽과 거친 파도가 쉴 새 없이 부딪히고 교감하는 사진을 배 위에서 촬영하라고 조언했다. 오륙도는 실루엣이 아름다운 군도다. 오륙도 하면 부산, 부산하면 오륙도가 연상될 정도로 부산 시민들에게는 친숙한 표상 같은 존재다. 그러나 서면 로터리를 장식한 그 표상이 로터리 철거와 함께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순간, AI는 일출과 황혼 때 흐릿한 도시 풍광을 배경으로 군도의 실루엣을 역광으로 조심스럽게 담으면 오륙도를 왜 부산의 표상으로 옛사람들이 첫손에 꼽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한 광안대교의 야간 조명 사진은 해변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테다. 다대포 해안과 갯벌은 이미 수많은 사진작가의 작품에 스며들었다. 대형 선박과 크레인, 컨테이너가 조화를 이루는 역동적 장면은 부산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사진 포인트라고 AI는 알려줬다.
부산은 요코하마나 홍콩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장면을 보유한 항구도시다. AI조차 부산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정작 부산 사람들이 품 안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는 거들떠보지 않은 감천문화마을, 영도 흰여울이 ‘재발견’되는 시대다. 새로운 세대의 감성으로, 바다의 시선으로 부산의 관광 자원을 추슬러 보면 좋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산은 유람선 운항과 경영이 여의치 않은 항구도시다. 그나마 크고 작은 유람선과 요트가 그 자리를 힘겹게 메우고 있지만, 부산을 대표할 만한 유람선은 아닌 것 같다. 외국 관광객의 사진에 담겨서 오랫동안 기억될 선박은 아직도 없다. 특히 고급 유람선 운영은 쉽지 않은 도전 과제다.
유람선과 여객선이 없어서 운영이 중단된 ‘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은 부산의 바다 시선을 깡그리 삭제한 증거다. 대형 유람선이 2척이나 동시에 기항할 수 있는 시설이고, 건물 그 자체로도 훌륭한 관광 자원이지만 관광객을 이곳으로 끌어모으고 시민 자존심을 높여줄 유람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과업을 수행할 선사와 선박을 유치하겠다는 노력을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시가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도 없다.
바다에서 관광 자원을 찾겠다는 의지가 없으니 정작 잘 지은 시설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도시를 모방하는데 한눈팔지 말고, 차라리 AI에게 물어서라도 그 답을 찾기를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은 바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북 안동 출신의 정치인이다. 그러나 부산의 잠재력으로 바다를 지목했고, 경쟁 도시의 거친 항의에도 불구하고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감행했다. 해수부 이전을 통해 해양 행정의 응집력을 높이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부산 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하자는 의도라고 이해한다. 그것이 북극항로 개척의 전초기지가 될지, 남북 관계를 새롭게 개선할 모항이 될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부산항을 통해 경제 성장의 활로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도시인 부산으로선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시나브로 든다.
2025-09-07 [18:05]
-
[오션 뷰] 해양인재가 대한민국 흥망 가른다
세계 해운·조선 생태계가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3년 개정 온실가스 전략에서 2050년께 넷제로 달성을 명시하고 올해는 연료 기준과 배출 가격을 결합한 글로벌 규제틀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규제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인력·표준 경쟁의 문제다. 누가 연료 전환과 운영 안전, 디지털 최적화 역량을 먼저 확보하느냐가 시장지배력을 좌우한다.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해운을 EU 배출거래시스템(EU-ETS)에 편입했고, 올해는 유럽연합온실가스저감규제를 본격 가동하며 선박 에너지의 탄소집약도 저감을 의무화한다. 규제 타임라인은 이미 돌아가고 있으며, 단지 ‘새 연료를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새 연료를 안전하게 다루고, 데이터로 운항·정비를 최적화하며, 국제규정과 계약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국내 정책 환경도 ‘인재’로 초점이 모인다.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K-해양강국 건설이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해양수산부 2025년 업무계획은 ‘민생에 온기, 경제에 활력’을 내걸고 글로벌 선도 해상물류 공급망, 깨끗하고 안전한 바다, 연안·어촌 활력, 글로벌 해양 리더십 등을 핵심축으로 제시했다. 이는 곧 스마트 항만·친환경 선박·자율 운항 등 전환 영역에서 교육·훈련·실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다.
부산시는 ‘글로벌 해양수도’ 도약을 선언하고 북항·신항·영도·남항 등 5대 항만을 잇는 혁신거점을 재편, 공간혁신·산업혁신·인재혁신 3대 전략과 12개 실행과제를 가동했다. 해양금융·본사 집적, 해양신산업 육성, 해양과학기술 축을 연결해 세계 5위권 해양도시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국정과제인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흐름을 지역 전략에 내재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선언의 성패는 결국 ‘인재혁신’이 쥐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 조선해양 협력이 새로운 스케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정상외교를 계기로 한국 조선사들은 미국 조선소 현대화·공급망 강화·첨단조선기술 투자 및 합작펀드에 참여하며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조선 협력의 생산능력 회복과 기술이전을 시도한다. 이는 생산설비 이전이 아니라 인력과 표준의 공동생태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교육·훈련의 초국경 체계를 요구한다.
따라서 해양분야 인재육성은 ‘미래 대비’가 아니라 ‘현재 대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상은 첫째, 암모니아·메탄올·수소 등 위험물 대체연료를 안전하게 취급·운영할 수 있는 연료전환 안전 전문가이고, 둘째, 자율운항·예지정비·항로·기상·벙커링 데이터를 통합하는 디지털 해기·항만 운영자, 셋째, 해사분야 국제협약을 이해하고 해상운송계약·해상보험·해사분쟁까지 다루는 규제·법무·금융 융합형 인재다. 이 삼중 역량을 대학·기술교육·현장학습으로 연결하는 지산학 협력 모듈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첫째, 국가 해양인재 전략펀드를 가동해 ‘그린×디지털×글로컬’ 핵심전공과 대학원·폴리텍·해기사 교육을 통합 지원해야 한다. 장학·채용연계·장기현장실습을 묶고, 연료전환·안전·규제과목을 국가 표준 커리큘럼으로 인증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둘째, 해사분야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해 교육-실증-자격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자율운항선박 촉진법이라는 기둥이 서 있는 만큼, 실증특례를 인력 자격·훈련과 바로 연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셋째, 한미 조선해양 협력 연계 인력 공동양성 프로그램을 국책과제로 상향해 공동학위·상호인정·표준훈련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해사청(MARAD)의 ‘국내 해양인력 양성 우수기관(CoE)’ 지정제도와 연계해 양국 실습선·시뮬레이터를 공유하면 교육의 신뢰성과 이동성이 높아진다.
부산시 차원에서는 북항·신항을 잇는 인재혁신 허브를 조성해 교육·실습·채용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캠퍼스형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항만 디지털 트윈, 연료·안전 실습센터, 국제교육 시설을 하나의 패키지로 배치하고, 부산형 장학·기숙·생활지원으로 청년 정주성을 높여야 한다. 더불어 싱가포르 해사항만청(MPA)·영국 해사기술위원회(Maritime Skills Commission)·미국 상선사관학교와 학점교류·단기 공동훈련을 제도화해, 부산을 동북아 해양인재의 관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결정적 ‘타이밍’ 위에 서 있다. 규제의 시계는 이미 가동됐고, 부산은 세계 해양수도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한미 협력은 거대한 투자를 동반하고 있다. 남은 것은 사람을 앞세우는 일이다. 인재를 먼저 확보하면 규제는 기회가 되고, 한국 해양산업은 세계의 표준을 주도하게 된다. 이 거대한 전환의 열쇠는 설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2025-08-31 [18:18]
-
[오션 뷰] 초불확실성 시대, 파고를 넘어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워진 느낌이다. 오래전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현대의 특성을 불확실성이라고 정의했다. 유명 학자 설명 이전에도 인간을 둘러싼 제반 상황들이 불확실하긴 마찬가지였겠지만 체감적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부문에서 불확실성이 커진다. 특히 경제 불확실성은 외적인 요인에 더 기인한다. 국제 사회 연결성이 예전보다 훨씬 강화됐다. 특정 국가 정책이나 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는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 등이 예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15% 관세율을 적용받았다. 하지만 한미 간 디테일에선 많은 차이를 보인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 25일(미국 현지 시각)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이다.
전 지구적인 불확실성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외교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불확실성은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개인 삶부터 국가 미래까지 직간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마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처럼. 세계는 전에 없던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야말로 불확실성을 넘어 ‘초불확실성’의 시대인 셈이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극복하는 방안은 없을까?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해양포럼이 그 해답을 찾아 나선다. 해양수산부와 부산시, 부산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는 세계해양포럼은 올해 대주제로 ‘초불확실성 시대, 파고를 넘어’로 잡았다. 대주제를 정할 당시, 올 하반기에는 불확실성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럴 기미는 없어 보인다.
제19회 세계해양포럼은 오는 10월 22일부터 사흘간 롯데호텔 부산에서 열린다. 글로벌 토론의 장인 포럼은 올해 해양이 가진 본질적인 특성에 착안했다. 전 대륙을 연결하고, 생명을 포용하고, 오염된 곳을 치유하는 역할을 말한다. 연결성, 포용성, 회복력 등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 불확실성과 난제를 누그러뜨리고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연다.
해양은 예로부터 대륙과 문화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사람과 물자, 문화가 오가며 문명 교류를 촉진했다. 막힌 곳을 뚫어주고, 고립된 곳을 연결했다.
오늘날 전 세계는 의외로 벽을 쌓고 단절된 곳이 많다.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치든 이념 차이든. 여하튼 각자도생의 상황에 놓여있다.
올해 포럼은 불확실성 시대의 극복 방안으로 해양을 매개로 한 국제사회 협력과 이해 증진을 촉구한다. 해양은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공간이다. 반면 개별 국가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포럼은 기후 위기와 국제무역 갈등, 자원 경쟁 등으로 인해 심화되는 해양 분야의 복합 위기 상황을 진단한다. 국제협력과 해양 거버넌스를 모색하고, 혁신적 해결책을 찾는다.
올해 세계해양포럼은 해운항만, 조선, 수산, 블루이코노미 등 다양한 이슈를 토론의 장에 올려놓는다. 불확실한 요인들을 짚고, 국제 사회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이 중 조선 분야와 북극항로 등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분야이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핵심 산업이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우리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얼마 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가려운 조선 분야를 긁었다. 조선 세션은 향후 전개될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대응 방안, 글로벌 공동 프로젝트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포럼이 열리는 부산은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해양수도이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선정한 123대 국정 과제에 부산은 해양에 방점을 뒀다. 해양수산부 이전, 해운물류기업 본사 이전, 해사법원 신설,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등이 계획됐다.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하는 해양 중추도시이자 글로벌 해양 허브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부산의 발전 방안을 들어본다.
역사는 끊임없이 불확실성 시대를 헤쳐 온 인류의 지혜를 증명해 왔다. 포럼은 그동안 다양한 국제 해양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양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댔고,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해양을 매개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통찰을 보여줬다. 올해 세계해양포럼이 초불확실성 시대의 파고를 넘어 ‘K해양강국’으로 가는 길잡이가 되길 기대한다.
2025-08-24 [18:26]
-
[오션 뷰] 북극항로 시대 부산과 부산항
항로(航路)란 선박이 지나다니는 해로(海路)와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를 의미한다. 해운항만 업계에서 북극항로는 말 그대로 북극해를 경유하는 해상 운송 경로로 둥근 지구본에서 유럽과 러시아를 위로 두고 한국을 오른쪽에 두었을 때 시베리아 북쪽 연안에서 남으로 쭉 내려오며 부산까지 이어지는 경로를 주로 말한다. 이 북극항로의 남쪽 끝을 한국의 부산항에 놓고 북쪽 끝을 러시아의 무르만스크항으로 놓으면 그 거리는 1만 5000㎞에 이른다. 한데 이 북극항로는 현재 상업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항로는 아니다. 현재는 북유럽에서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경유해, 중동과 서아시아를 지나 극동으로 들어오는 항로가 가장 짧은 2만 2000㎞다. 따라서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면 거리가 30% 이상 단축되면서 주요 기착지에 위치한 도시와 항만은 그야말로 전례 없는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난 13일 정부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안’을 발표하고 123대 국정 과제와 17개 시도별 공약과 추진 과제를 제시했다. ‘균형 성장’ 분야에 ‘북극항로 시대를 주도하는 K-해양강국 건설’이 포함됐다. 부산지역 7대 공약에는 해양수산부 이전, 해운 물류 대기업 본사 부산 이전, 북극항로 선도 육해공 트라이포트 육성 등이 제시됐다. 신임 해수부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북극항로 시대를 잘 준비하고 선도해서 한반도 남단 여수, 광양, 부산, 울산, 포항에 이르는 북극항로 경제권역을 만들어서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장관이라 스스로를 소개했다. 부산항은 현재 글로벌 2위의 환적항으로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 환적 물량이 처리되고 있다. 한데 부산항의 이러한 글로벌 위상이 부산시나 부울경 경제권역의 성장에 기여하는 바는 한계가 있다. 부산항에 전 세계 283개의 정기 컨테이너 노선들이 기항하고, 국가 수출입 물량의 99.7%가 해상 물류에 의존한다는 사실 역시 부산시가 인구, 특히 청년 인구의 감소로 노인과 바다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을 막지는 못했다.
빠르면 연말에 진행한다는 해수부 부산 이전을 열렬히 환영한다. 청사 인근 지하철역이 붐비고 식당가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회의체와 행사들이 개최될 생각을 하니 설렌다. 해수부 산하 여러 조직 중 직간접적으로 접해 본 해운물류국이나 항만국이 내륙이 아닌 항구 도시에 위치하게 되면 어떤 시너지가 실현될지 기대된다. 부산 이전이 거론되고 있는 국적 해운 물류 대기업 관계자 역시 최근 만날 때 마다 말미에 여담으로 부산 지역별 부동산 시세나 생활권 특징을 묻곤 한다. 이전 시 각 가구별 변화 관리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발생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시작된 변화에 부산시와 업계가 다시 오지 않을 이번 기회를 살려 성장 동력을 반드시 확보해 내기를 소망한다. 부산시에서 북극항로 전담 TF를 꾸려 해수부 이전에 앞서 글로벌 해양도시 전략 구상 회의를 열고 중장기 계획 마련에 나선 것도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올해 5월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가 온다〉는 제목의 책을 발행했다. 저자는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변곡점으로 북극항로 개척과 한국, 미국, 러시아의 합종을 제시했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이 러시아와 관계 회복을 통해 북극항로 거점 도시로 부울경, 거점 항만으로 부산항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 관련 기업과 산업단지가 집적화된다”며 “현행 수도권 중심의 일극 체제가 인구 분산을 통해 서울과 부산의 양극 체제로 전환됨으로써 한국의 가장 큰 당면 과제인 저출산 문제의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직장생활을 꽤 오래 해오고 있다. 정부 여러 부처 중 부산과 인연이 깊은 해수부가 이번과 같은 무게감을 가진 현안을 추진하는 부처로 집중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실제 업무를 같은 도시에 와서 한다고 하니 더 가깝게 느껴진다.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등 각국의 선점 경쟁에 뛰어든 북극항로가 실제 그 상업적 활용도가 높아져 기존 항로를 대체할 수 있을까? 부산항과 부산시, 그리고 대한민국은 변곡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 역시 ‘북극항로 시대를 주도하는 K-해양강국 건설’ 담론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2025-08-17 [18:00]
-
[오션 뷰] 북극항로 연관 산업과 부산의 과제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 자리 잡아 바다를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는 해양 국가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글로벌 무역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조선, 물류, 수산, 해양관광 등 다양한 해양산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축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양산업의 중심에는 바로 부산이 있다. 부산은 지리적으로나 산업 잠재력으로나 국제무역과 해양 물류의 거점이다. 부산항은 연간 2400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세계 제7위의 항만으로서 부산 경제를 견인하고 있으며 그 전략적 가치와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수도권 중심의 행정과 정책으로 인해 부산의 해양산업 역량은 국가 정책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으며, 해양 경쟁력은 날로 쇠퇴하고 지역 불균형은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추진되는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 및 부산 중심의 물류체계 구축은 단순한 지역 균형발전 차원을 뛰어 넘는다.
줄어드는 빙하만큼 커지는 연관 산업
전세계가 뛰어드는 격전의 마당 열려
해안지역 역량 결집하는 게 해양수도
부산의 존재증명은 바로 거기서 시작
해양산업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부산권에 역량을 모으는 것은 국가 전체 산업구조를 개혁하는 국가적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 및 해양 관련 공공기관과 HMM 등 해운업체의 부산 이전은 부산항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부산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여 부산이 싱가포르, 상하이, 로테르담과 같은 해양도시로 가기 위한 초석이다. 부산시민은 이번 기회에 부산을 완전히 탈바꿈하여 해양수도를 뛰어 넘어 경제수도로 도약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크게 기대하고 있다.
지금의 부산은 계속되는 인구 유출로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오명이 지어진 지 오래이고, 부산의 경제를 견인하던 부산의 수산업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수산자원 감소, 어업경비 상승, 유통구조변화 위기 등 우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아 북극항로 개척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극항로와 해양수도 부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반도가 북극항로 거점으로 발전할 기회가 오고 있다며 그 핵심에 부산이 있다고 강조한다. 북극항로 개척의 의미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새롭게 열다. 미개척 분야를 처음 시도하다”는 것이다. 이미 독일 벨루가 해운은 2009년 러시아 국적이 아닌 세계 최초 상업선박으로 북극항로를 완전 횡단한 적이 있고 벤타머스크호는 2018년 최대 내빙 컨테이너선으로 첫 북극항로를 운항했으며, 2024년 중국 대형 컨테이너선 두 척이 북극해역을 교차했다. 기후 변화로 뜨거워진 북극은 개척 경쟁으로 더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북극항로 연관 산업과 어떤 시나리오로 전략을 짜서 수요와 개발을 찾아야 할 것인가? 북극항로 연관 산업이란 북극해를 통과하는 새로운 항로 개척과 함께 발생하는 해운·물류·조선·해양플랜트·첨단 ICT·신재생에너지·자원개발·해양안전·북극항로AI·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되는 새로운 신성장 산업군이다. 시장규모만 2035년 193.4억 달러(약 25조 원), 2050년 5385.3억 달러(약 700.1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쇄빙선 건조에 특화된 핀란드 금융 시스템과 독일의 AI 산업 사례인 자율항로 계획기술, 영국의 혁신적 해빙 예측 시스템, 유럽연합(EU)의 가상 관제실 플랫폼, 핀란드의 SAR위성 기술, 덴마크의 불법 선박 탐지 시스템 등 각국의 활발한 연구가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도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기술 정보인프라 중심의 점진적·실용적 투자로 보수적인 안정을 추구하며 대형조선 해양 중심이 아닌 위성, 기상, 통신 인프라처럼 운영체계의 설계자 역할을 추구하는 중이다. 중국은 빙상 실크로드 중심의 공세 전략으로 일대일로 의 핵심축으로 위치하며 북극 사업과 인프라 투자를 가시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되어 신속한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 부산이 해양수도로서 앞장을 서야 한다.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과제이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부울경 동해안과 남해안과 인근 내륙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해변을 끼고 있는 각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끌어 모아 서로 협조 협력하면서 가는 것이야말로 북극항로 연관 산업과 북극항로 개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지역 간 소모적 경쟁에서 벗어나 부산이 큰 첫발을 내딛으며 국가적 어젠다의 깃발을 흔들되 지역별 특성을 어떻게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인가가 북극항로 연관 산업 활성화를 위한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부산이 ‘해양수도’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으며 이를 잘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야만 개항 150년의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2025-08-03 [17:48]
-
[오션 뷰] 청년을 위한 '바다로 티켓'은 어디로 갔나
2015년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운조합, 그리고 선사들은 청년들이 섬을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바다로 티켓’을 도입했다. 이는 만 25세 이하 청년들에게 일정 기간 참여 항로의 연안여객선 운임을 할인해 주는 제도로, 도입 초기부터 큰 관심을 끌며 청년 해양관광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청년들이 일반열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배낭여행 문화를 부활시키고 전국 곳곳을 누비게 했던 철도 여행 상품 ‘내일로’의 해양과 섬 버전이기도 했다. 도입 당시의 바다로 티켓은 분명 신선하고 파격적인 시도였다.
‘열정! 바다로’(여름), ‘낭만! 바다로’(겨울) 두 시즌으로 운영된 바다로 티켓은 한 장으로 여러 지역의 섬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청년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5년에는 43개 항로, 55척의 선박이 참여하며 시작되었고, 2016년에는 80개 항로 123척, 2017년에는 84개 항로 142척이 참여하는 등 바다로 티켓은 명실상부 해양관광을 위한 대표 할인 티켓으로 자리 잡았다. 이용객이 많아지자, 한국해운조합은 바다로 티켓 전용 헬프데스크를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계절권 중심이었던 판매 방식을 연중 통합권으로 전환하고, 이용 가능 연령대를 확대했으며, 가족 이용권의 혜택 인원을 늘리고 가격을 인하하는 등 다양한 개선이 이뤄져 바다로 티켓의 매력을 더했다.
2015년 도입… ‘내일로’의 해양·섬 버전
한 때 섬에 방문객 느는 효과 안겨 줘
최근 이용 항로 줄고 정보 접근 어려워
예매 시스템 개선·제도적 확대 등 필요
이와 함께 해수부는 여객선 안전과 편의 향상을 위해 모바일 승선권을 도입하고, 실시간 운항정보 시스템과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확충했으며, 최근에는 네이버 지도에서 여객선 항로 조회 기능까지 제공하면서 청년층의 해양 접근성 확대와 함께 섬 주민들에게도 방문객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바다로 티켓은 과거의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2024년 기준으로 참여 선박은 48척, 항로는 39개에 불과했고, 올해는 58척, 42개 항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바다로 티켓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울릉도, 거문도, 흑산도 등 주요 도서 노선에서 운항하는 선사들이 할인 참여를 중단한 것은 많은 여행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이들 지역은 교통비가 비싸 할인 효과가 컸던 곳이기에 더욱 아쉬운 결정이다. 특히 울릉도의 경우, 과거에는 바다로 티켓 홍보 시 가족 여행 사례를 통해 할인 전후 금액을 비교 제시하며 대표적인 수혜지로 소개되기도 했지만, 2023년부터 할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일반항로 수송 실적 상위 30개 노선 가운데, 올해 바다로 티켓이 적용되는 구간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에 할인에 따른 선사의 적자를 줄이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이용 횟수를 연간 12회, 동일 항로 3회로 제한했다. 그 결과 작년보다는 이용 가능한 선박과 항로 수가 소폭 증가했지만, 한때 80개 이상의 항로와 140척이 넘는 선박이 참여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이용 가능한 항로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현 상황은 바다로 티켓이 지닌 본래 취지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연안여객선 예매 사이트가 개편되었지만, 여전히 도착지 표기나 터미널 정보 등 기본적인 정보 제공이 미흡해 예매 과정에서 혼선을 겪는 경우가 많다. 도착지 명칭에 도서명과 선착장 명이 혼재되어 있거나, 혼동을 줄 수 있는 표기가 사용되며, 주요 항로와 선착장이 검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금일도 일정항의 경우 출·도착지가 ‘금일-일정’으로 표기되지만, 같은 금일도의 동송항은 단순히 ‘금일도’로만 표기되어 있어 일관성이 떨어진다. 우이도는 ‘우이1구’, ‘예리’ 등으로 나뉘어 표기되어 있는데, ‘우이도-예리’와 같은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보다 명확할 것이다. 또한 금일도를 오가는 당목항은 실제로는 약산도에 위치해 있음에도 출도착지가 ‘약산도’로만 표시되어 있어 혼동을 야기한다. 금당도의 경우 노력항에서 출발하는 배편은 아예 검색되지 않아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섬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정보 접근의 장벽이 높다.
청년들의 자발적인 섬 여행을 장려하고, 연안여객선의 공공성을 실현하겠다는 바다로 티켓의 본래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제 이용자, 섬 주민, 선사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과 제도적 확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울러 앞서 지적한 예매 시스템의 기본적인 편의성 개선은 물론, 숙박·음식점·관광지 입장료 등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연계 할인 혜택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청년과 섬, 그리고 해양관광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바다로 티켓이 다시 본래의 취지와 활기를 되찾기를 기대한다.
2025-07-20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