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사람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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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연세대학교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사람의 생각은 바뀌고, 사람이 사는 사회도 바뀐다. 이 말은 새삼스런 면이 있지만, 많은 경우 이 진술은 그야말로 새삼스럽게 들린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자기 얘기로 닥칠 때 가장 먼저 간과되기 쉬운 명제라서 그렇다. 사람은 흔히 내 생각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처럼 처신하고, 내가 생각하는 내 곁의 사회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영원토록 유지될 것처럼 상정하고 인생을 산다.

모든 것이 대체로 변하고 재구성된다고 말하는 인문·사회과학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믿는 내 생각과 내 세상은 때로 철석같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아서, 이것 외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기가 어렵다. 그걸 왜 깨치지 못하느냐고 남의 티끌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정작 내 눈의 들보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인문학이 권장하는 탈신화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 내 생각이 어느 켠에는 신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틈을 벌리는 일과 연관된다. 그를 위해서는 내 생각과 세계가 남에게 하나도 안 당연할 수 있다는 체감이 필요하다. 낯선 남을 싫어도 습관처럼 대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뭔가가 영영 안 변할 거라는 감각에는 거기에 반드시 강한 감정이 개입한다. 그것은 지금 내 상태에 대한 무람한 애정뿐 아니라 내가 지금 무언가를 지독히 증오하는 일과도 관계맺는다. 뭔가 참을 수 없이 미운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그 싫은 대상이 내 싫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원토록 그 자리에 구린 채로 남아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내가 싫은 그것을 비롯한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그처럼 나를 둘러싼 세계와, 그 속의 내 생각과 직관은 언젠가 반드시 변화한다. 물론 내가 알던 나와 세계의 상이 깨지는 일은 아프고 겁이 난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한번 깨진 다음을 사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의 내가 훗날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지금 당신이 훗날 입장을 달리 할 수 있고, 그때 우리가 다시 만나 악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여기 오늘 굳은 내 생각과 직관이 원리적으로 치닫는 일을 막아준다.

어찌 될지 모를 내 미래의 문을 지금 단계에서 거칠게 닫는 일은 현명하지 않다. 사람의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여태 어떻게 변해왔는지 떠올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지금 내가 아는 이게 전부는 아닐 수 있다고 믿을 때, 사람은 은연중에 제 과거에 비추어 미래를 돌본다. 그때 뭐가 돼 있을지 모를 미래의 남같은 내가 문 틈 사이로 빙긋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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