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테스 형, 글로벌 해운 시장이 왜 이래?
배 구하기 힘든 선박·물류 대란, 초유의 수출 대란 빚나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관문인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이 건물 정면 오른쪽 상단 벽면에는 ‘바다가 미래다. 부산항이 국력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간판이 부착돼 해양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이 글귀와 지난 2017년 2월 정부의 한진해운 퇴출 조치를 연결 지어 보면, 우리나라가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고 국가 경쟁력의 핵심 무기 하나를 그냥 내버렸다는 생각만 든다. 한진해운이 40년간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선사로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힘들게 개척하고 축적한 바닷길과 컨테이너 선복량(적재능력), 국제 공신력, 브랜드 가치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해양 영토이자 국력이었다고 보는 까닭이다.
한진해운 파산에서 뼈저린 학습효과를 경험한 것일까? 지난 16일 정부는 항공업계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장기화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자 나랏돈 8000억 원을 들여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대한항공에 대한 특혜 시비에 아랑곳없이 아시아나 살리기에 나선 것은 두 항공사 통합으로 동반 부실을 막고 세계 7위 거대 항공사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거다. 항공업이 해운업처럼 시장논리에만 맡겨 둬선 안 될 국가 기간산업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우리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국내 수출업체들이 초비상이다. 기업들이 물건을 실을 컨테이너 선박을 구하지 못해 수출길이 막힐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3년여 전 한진해운 파산으로 컨테이너선 70여 척의 발이 묶이고 국제 뱃길이 사라져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해운물류 대란이 또다시 선박 대란이란 악재와 함께 빚어지고 있다. 자칫 대응이 미흡할 경우 사상 초유의 수출 대란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원인과 문제점, 해결책 등을 살펴본다.
지난 5일 부산항 북항 감만부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연합뉴스
■수출기업들, 배 못 구해 발 동동
“한진해운 파산 직후 물류 대란이 닥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해상운송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랐다. 어렵게 돈을 마련해도 우리 상품을 실어 줄 배편을 구하기 힘들어 외국 거래처와 계약한 날짜를 어길 가능성이 높다.” 부산 제조업체 A사는 매년 회사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하는 4분기 미국 수출을 위해 제품을 선적할 컨테이너선을 물색하고 있으나, 마땅한 배가 없어 상당한 물량의 납기를 맞추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 회사 대표는 국제적 신용까지 잃을 수 있다며 고민하고 있다.
우리 수출업계가 생산품을 수출할 선박을 구하기 어려워 난리다. 한마디로 선박 품귀 현상, 즉 선박 대란이다. 중소기업들은 제때 수출하지 못해 물건을 쌓아 놓고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경영난 속에서도 힘들게 물량을 확보하고도 수출을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곳곳에서 수출품을 보내지 못하는 해운물류 대란이 발생하고 있어 자칫 수출 대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수출기업들 사이의 선박 대란은 국제 해상운임이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난 7월부터 조짐을 보였다. 미국이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쇼핑 시즌과 연말연시 특수를 앞두고 소비 심리가 살아나는 데다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으로 자국 내 생산에 어려움이 많아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을 포함한 북미 노선의 수출 선박을 확보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중소·중견 수출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웃돈을 주지 않으면 북미행 배를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부 대기업조차 며칠간 부산항 인근에 수출품을 보관하며 컨테이너선에 선적 공간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본력이 취약하거나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인상된 운송료 부담으로 더 큰 강도의 타격을 받는 형편이다. 크기가 작은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의 경우 납기를 맞추기 위해 해상보다 운송료가 훨씬 비싼 항공편을 이용하는 부담도 감수할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출품을 담을 컨테이너 박스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코로나19 사태를 상대적으로 빨리 수습한 ‘세계의 공장’ 중국이 아시아~미주 노선의 컨테이너선과 컨테이너를 선점하는 바람에 국내 수출기업들의 여러 고충이 말이 아니다.
HMM은 부산~미국 로스앤젤레스(LA) 노선에 직기항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사진은 LA 항만에 접안한 HMM 컨테이너선. 연합뉴스
■해상운임 상승이 선박 품귀 부채질
선박 대란은 세계 유력 선사들이 코로나19로 급감한 물동량과 선박 방역의 필요성에 따라 선박 공급을 크게 줄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운항 선박이 부족해지자 국제 해상운임이 지속해서 올라 용선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 미국의 소비가 회복돼 대미 수출 수요가 폭증하면서 배를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지난 6일 기준 하우로빈슨컨테이너용선지수(HRCI)는 994포인트로, 2008년 9월 24일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1000포인트 돌파 직전에 있다. 용선지수 상승은 그만큼 배를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상운임은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해 9월 들어 최고치 경신이 잇따르며 급등세를 보인다.
실제로 대표적인 국제 해상운임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3일 사상 최고치인 1857.33을 기록했다. SCFI는 올 하반기 들어 계속 치솟으며 최고치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한국 수출기업들이 많이 이용하는 미국 항로 해상운임은 지난 13일 기준 1FEU(40피트(약 12m) 길이 컨테이너 박스 1개)당 3871달러로 역시 사상 최고치다. 발틱해운거래소가 집계하는 발틱·프레이토스 컨테이너선 운임지수(FBX)도 이번 주 1FEU당 운임이 2천359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 7월 이후 4개월 가까이 30%나 급등한 것이다. 이에 쾌재를 부르거나 콧대가 높아진 외국 선사들은 기존 운송계약을 파기하고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 횡포를 부려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지난 8~10월 최대 국적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은 3개월 연속 예정에 없던 컨테이너선 4척을 미국으로 운항했다. 대미 수출 선박 부족을 해소하고 납기가 임박한 수출품을 운송하기 위해서다. HMM은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같은 이유로 미주 항로에 임시 선박 1척 이상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또 다른 국적 선사 SM상선도 12월부터 두 달 동안 임시 선박 1척을 운항할 계획이다. 고려해운의 경우 지난 15일 말레이시아 노선에 선박 1척을 임시 투입했고, 다음 달 17일 인도네시아 노선에도 1척을 임시 운항할 예정이다.
이같이 동남아시아 노선에 긴급 운항하는 건 북미행 화물의 선박 대란이 동남아 노선으로 확산하고 있는 탓이다. 글로벌 대형 선사들이 동남아 노선의 배를 빼 물동량이 많고 수익이 높은 미주 노선으로 보내면서 동남아 노선 운임이 덩달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의 긴급 처방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몰리고 있는 국내 수출 물량을 원활히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수출업계와 해운업계의 판단이다. 이대로 간다면, 모처럼 호조를 보이는 우리의 수출 경기는 얼어붙고 연말연시 해외 특수를 날려버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10월 29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수출 중소기업과 국적 해운선사 간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 장면. 부산일보DB
■아쉬운 한진해운의 빈자리
수출에 필요한 선박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된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2017년 한진해운을 파산시킨 정부의 선택 등 해운업 구조조정 실패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진해운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이어진 호황을 믿고 장기 용선 계약을 통해 선복량을 크게 늘려 덩치를 키운 게 경영 부실을 초래한 이유다. 금융위기에 따른 불황 때문에 글로벌 물동량이 급감하자 침체된 세계 해운업계는 생존을 위해 해상운임 인하 경쟁을 펼쳐야만 했다. 이런 영향으로 한진해운은 2014년부터 경영 위기에 빠졌다.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은 자국 해운업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지원금을 투입하며 선사 간 M&A(인수합병)를 통해 규모와 경쟁력 키우기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현 HMM) 합병 방안이 거론됐지만, 논란 끝에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을 선택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오대양 육대주에 걸친 한진해운의 운송망 및 국제 해운동맹 기득권이 가진 엄청난 가치나 모든 산업을 지원하는 기간 업종인 해운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어설픈 금융논리를 앞세워 판단한 결과다. 여기에는 한진해운 정상화에 등한한 사주 일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와 무능이 크게 작용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만큼 단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한국경제 운영의 본질은 해외 거래와 세계화이다. 이를 좇아 한진해운이 공들여 구축한 국제 해상 항로는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에 안정적인 무역을 보장하는 근간이었다. 국내 기업들은 한진해운 덕택에 저렴한 물류비용으로도 활기찬 수출입 활동이 가능했다. 한진해운은 국내 기업들이 편하게 비빌 언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계 5위의 신화를 창조한 한국 해운업은 북미와 유럽 항로의 강자로 꼽힌 한진해운 퇴출로 국제적 경쟁력을 상실했다. 한국 운송 서비스 수출 순위는 2010년 세계 5위에서 지난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국적 선사들의 아시아~미주 노선 점유율은 12.7%에서 7%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국의 아시아 및 미주 시장 점유율도 11%에서 3%로 급락했다.
2017년 3월 8일 부산항 북항의 한 부두에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파산한 한진해운 로고가 지워진 컨네이너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국적 선사의 선복량 역시 한진해운 파산 전인 2016년 105만 TEU(1TEU는 20피트(약 6m)짜리 컨테이너 1개)에서 올 1월 46만 TEU로 50% 이상이나 감소했다. HMM이 올해 2만 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확보해 국내 선사의 선복량이 지난달 78만 TEU로 증가했으나, 한진해운 시절 규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적 원양선사 전체 선복량 순위는 세계 7위에서 한때 13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국적 선사의 컨테이너 물동량 운송능력이 많이 떨어진 탓에 국내 수출기업들은 외국 선사 의존도가 높아지고 ‘슈퍼 갑’이 된 해운사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해운업계는 이런 현상이 내년 상반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후폭풍이나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시장원리만 현실에 적용해 쉽게 없애버린 한진해운의 빈자리가 아쉽고, 또 아쉬울 뿐이다.
지난 11일 해양수산부가 개최한 ‘수출기업 애로 관련 정기 해운선사 간담회’에서 문성혁 해수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부산일보DB
■확실한 대책은 과연 없나
지난 11일 해양수산부는 문성혁 해수부 장관과 15개 컨테이너 선사 사장단의 긴급 간담회를 개최해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해수부는 일부 외국 선사의 일방적 계약 파기와 불공정 거래에 대해 관리감독 강화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국해운협회(전 한국선주협회)도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주 기업들을 위해 국적 선사들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이 협회는 지난달 29일 ‘수출 중소기업과 국적 해운선사 간 상생협력을 위한 해상 수출 관계 기관 업무협약’을 맺고 선·화주 간 상생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해수부 방침이 기세등등한 외국 글로벌 선사들에게 먹혀들지 의문이며, 수출기업들의 아우성에 떠밀려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선박 대란에 선제적,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2개월여가 지나서야 뒤늦게 일회성 간담회를 하고 고민하는 시늉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한 예전에 화주 기업들의 눈치를 봤던 국내 해운업계가 이번에 모처럼 선박 부족 사태에 힘입어 입장이 바뀌면서 목에 힘을 주고 있어 선·화주들의 긴밀한 상생관계 형성은 논의에 그칠 것이란 견해도 있다. 따라서 수출기업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 대비해 평소 선사와 해상운송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협력관계를 돈독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해상운임 상승, 그리고 수출 선박과 컨테이너를 구하기 어려운 현상은 내년에도 당분간 계속돼 수출기업 고충은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해운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있어 국가 기간산업이다. 정부는 일단 수출기업들의 피해와 어려움이 커지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 위기를 조기에 잘 극복하기 위해 해수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가 함께 머리를 맞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하다. 해운업이 글로벌 경제 사정에 따라 부침이 심한 업종이어서 관계 부처들 간 면밀한 협력은 물론 관련 업계와의 공조가 중요하다.
정부는 장기적 안목으로 큰 그림을 갖고 한국 해운업이 국제 경쟁력을 키우도록 다각적인 중장기 지원정책을 수립해 실천하기를 바란다. 국내 해운산업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 국적 선사의 선대 확충과 선복량 증대가 요구된다. 세계 30위 내 선사의 선복량은 1위 머스크 410만 TEU, 8위 HMM 71만 TEU, 14위 고려해운 16만 2000TEU, 21위 장금상선 9만 1000TEU, 28위 SM상선 5만 7000TEU 등이다. 30위권 안에 드는 국내 4대 선사의 선복량을 합쳐도 머스크의 4분의 1 수준에 못 미친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한미 통상 활성화를 겨냥해 북미 항로 수출입 화물의 한국 선사 운송 비중을 현재 25%에서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고민할 때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형 화주는 물론 중소형 화주 기업과 국적 선사 간 장기 운송계약 체결을 민간에서 제도화해 안정적인 운송이 가능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해운업계가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점은 자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국적 선사들이 확실한 경영전략과 기업 진단, 정확한 경기 전망을 토대로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는 등 체질을 개선해 자생력이 강한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충고한다. 그렇지 않고 정부 정책과 금융 지원만 기대한다면 한계기업이 되기 쉬우며, 건강한 다른 선사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다수의 국적 선사는 장기적인 경쟁력보다는 단기적인 생존에 급급하고 정부 지원에 기대며 자사와 전체 해운업계의 자발적 혁신과 변화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국적 선사들 간 과다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선사 간 상생방안 모색이나 통합도 혁신 차원에서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이제 수출기업 애로를 해소하고 수출 대란을 막으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