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출생통보제와 비밀출산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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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통보제는 비극적 ‘아동학대’ 막을 수 있을까

영유아 생명권 보호를 위해 ㈔국민행복실천운동본부가 2019년 부산 금정구 두구동 홍법사 내에 개소한 ‘행복드림센터(일명 라이프가든)’ 아가방에서 지난 2일 자원봉사자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라이프가든은 ‘베이비박스’와 달리 상담과 소통을 통해 아이의 안전과 부모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은영 논설위원 영유아 생명권 보호를 위해 ㈔국민행복실천운동본부가 2019년 부산 금정구 두구동 홍법사 내에 개소한 ‘행복드림센터(일명 라이프가든)’ 아가방에서 지난 2일 자원봉사자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라이프가든은 ‘베이비박스’와 달리 상담과 소통을 통해 아이의 안전과 부모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은영 논설위원

태어났지만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출생등록에서 배제된 ‘미등록 아동’이다. 지난달 8일 친모에 의해 사망한 8세 아동과 지난해 11월 가정집 냉장고 냉동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생후 2개월 된 아기도 "출생은 했지만, 공적으로 등록되지 못한 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학대 피해자"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비극적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아동 출생 시 분만에 관여한 의료진이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 또는 공공기관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2017년과 2019년에도 "모든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되는 것이 아동인권의 시작"이라면서 정부와 국회에 출생신고제도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을 촉구했다.

현행 출생신고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으로 제시되는 출생통보제, 더 나아가 익명출산(혹은 비밀출산, 신뢰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에 대해서 알아본다.


출생신고 안 된 아이들

유기 등 각종 범죄 노출

‘아동 돌봄’은 국가 책임

현 가족등록법 허점 보완

‘보편적 출생등록’ 도입을


신고 못 할 불가피 상황

익명 보장 ‘비밀출산제’

프랑스·독일 이미 시행

한국도 법안 제출 잇따라


“혼자 출산·양육 가능한

지원 시스템 마련 우선”

미혼모 목소리도 경청을


■출생신고제와 ‘보편적 출생등록’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음으로써 그 아동은 예방접종 등 의료혜택이나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치될 뿐만 아니라 영아 유기 및 살해, 아동 매매, 불법 입양 등 각종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미등록 외국국적자 또는 무국적자는 출생신고조차 할 방법이 없다.

미등록 아동이 발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태어난 아동의 출생신고 의무는 “부 또는 모”로 규정돼 있다. 혼인외 출생자는 “모”에게 출생신고 의무를 지운다. 다시 말해 부모가 출생 사실을 숨기면 국가는 파악하기 힘들다. 물론 부 또는 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때를 대비해 이차적으로 동거하는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사, 검사와 지방자치단체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규정은 있지만,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

이런 점 때문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의 도입을 권고한다. 보편적 출생등록이란 “부모의 법적 지위, 출생 지역, 출생 장소 등의 어떠한 요소나 출생 여건과 관계없이 한 국가의 관할권 내 모든 아동의 출생을 자동으로 등록하는 제도”이다.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 등에서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통보제

상당수 국가는 아동 출생이 이루어진 의료기관 등에서 출생에 대한 정보를 관할 행정청에 즉시 통보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국적취득에 있어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미권 국가들이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 사실 통보제도를 운영 중이다. 우리처럼 국적취득에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는 독일은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 사실 통보 대신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했다. 프랑스와 싱가포르는 출생신고 의무자인 부 또는 모가 병원에서 바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19년 ‘포용 국가 아동정책’, 2020년 ‘제2차 아동정책 기본계획’ 등에서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출생통보제를 의무화하거나 비밀출산(혹은 익명출산, 신뢰출산, 보호출산) 관련 법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으나 한 건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3일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가족관계등록법’ 일부개정안을 검색하니 무려 19건에 이른다.


■‘비밀출산제’가 주목받는 이유

출생통보제에도 사각지대는 있다. 의료기관에서 출생하지 않은, 자택출산 아동이 그렇다. 또 출생신고 업무 자체는 국가 사무인데 의료기관에 업무적,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부모의 권리행사와 충돌 또는 법적 문제 발생의 여지도 있다. 재반론도 만만찮다. 우리나라 전체 출생의 98.7%가 병원 분만이어서 빠지는 경우는 극소수라는 지적이다. 출생등록될 권리는 그 자체로 아동의 기본권이어서 어떠한 이유로도 유보될 수 없다는 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만 의료기관 통보제를 도입하고 국가가 인지한다고 아동 유기 등이 많이 감소할 것인가 하는 점은 확신하기 어렵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영유아 살해와 유기는 애초에 산모가 영아를 직접 양육할 생각이 없고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은 출산이 상당수였다.

이때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이 비밀출산제다. 경제적 또는 사회적 이유 등으로 공개적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 산모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 아이를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다. 독일 프랑스 체코 등 몇몇 나라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보호출산제’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지지난달 대표발의한 익명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도 그중 하나다. 김 의원은 “현행법으로는 급증하는 아동 유기를 막을 방법이 없고 처벌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다”면서 “태아를 낙태하지 않고 뱃속에서 잘 길러 누군가에 의해 양육할 수 있도록 생명을 보호해 준 여성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학대로 인한 영아 사망 사례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2019년 10년간 발생한 영아 유기는 1272건, 영아 살해도 110건에 달했다. 이는 한 해 평균 127건의 영아 유기와 한 달에 한 번꼴로 영아 살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더욱이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개정 입양특례법이 2012년부터 시행되면서 실제로 영아 유기가 급증(표 참조)했다. 입양 전 출생신고가 의무화되다 보니 호적상 출생 기록이 남는 것을 꺼리는 부모의 유기가 증가한 것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친부모의 직접 양육을 지원하는 것과 보호(비밀)출산을 인정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양립할 수 있다면 관련 법안에 대한 조속하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위기 임신·출산 지원’ 우선돼야

일부 미혼모 단체와 아동 인권단체가 제기하듯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산모가 병원을 피해 혼자 아이를 낳고 유기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키울 수 없는 영유아를 일시 보호하는 민간 시설인 부산 홍법사 내 ‘행복드림센터(일명 라이프가든)’ 하승범 사무처장은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생명과 인권이고, 그다음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지만, 생모 손에서 아이가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면서 “임신 초기 상담부터 지원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기 임신·출산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게 더 급하다”고 말했다. 하 처장은 “현장에서 느낄 때 미혼모들이 원하는 건 당장 아이를 어떻게 낳아야 하고,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 조언이었다”면서 행정적인 뒷받침을 촉구했다.

안타깝게도 부산의 영유아 건강 상태는 2018년 기준으로 영아사망률과 모성사망비는 전국 평균보다 높지만, 전국 7대 도시 중 양호(80.4%) 비율이 가장 낮았다. 부산의 미혼모는 1473명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 미혼부는 451명으로 다섯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미혼모 자녀는 1700명, 미혼부 자녀는 527명으로 전국에서 각각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많다. 국가 못지않게 부산시에서도 더욱 관심을 두고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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