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리얼돌’,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얼마 전 국제시장을 걷다가 대로변에 나와 있는 입간판을 발견했다. ‘청소년 출입 불가-성인 ‘리얼돌’ 체험관 1시간 ○만 원’이라는 광고가 앳된 인형 사진과 함께 적혀 있었다. 말로만 듣던 ‘리얼돌 체험방’이었다. 2019년부터 꾸준한 논란이 있었던 리얼돌이 일상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있음을 체감했다.
여성 신체 본뜬 전신 인형 ‘리얼돌’
법적 판단과 별개로 사회문제화
단톡방 성희롱·n번방 사건 떠올라
성욕 해소 위해 성적 대상화 부추겨
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 아닌가
‘리얼돌 체험방’ 등 법적 규제 시급
리얼돌은 주로 여성의 신체를 본뜬 전신 인형을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은 2017년 리얼돌의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받은 한 업체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1심 재판부는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 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특정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며 수입을 제한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리얼돌을 ‘성 기구’라고 지칭하며 “국민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2019년 6월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올해 1월 25일, 서울행정법원은 대법원의 판결과 마찬가지로 세관 당국의 리얼돌 수입통관 거부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법적 판단과 별개로 웃지 못할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한 국회의원은 리얼돌을 들고나와 “산업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한 프로축구단이 관중석에 리얼돌을 세워 비난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도 같은 해, 한 미술 작가는 리얼돌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2020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라 논란을 일으켰다.
이처럼 리얼돌은 ‘음란물’이라서 안 되고 성 기구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법적 판단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리얼돌 문제에 대해 일부 국가가 그렇듯 아동과 청소년 형태의 리얼돌 제작·유통·소비만 규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글쎄, 어떻게 그것을 구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당수의 리얼돌이 160cm 이하로 제작된다. 인형의 앳된 얼굴로는 나이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그뿐인가. 리얼돌 체험방이나 자위 도구로 사용되면서 교복을 입힌 사례도 다수 목격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리얼돌은 ‘체험’이라는 말로 그 본질이 가려졌지만 실제로는 성 산업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적어도 대낮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리얼돌 체험방’이 개인의 내밀한 사적 영역일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인형을 도구로 했을 뿐, 대가를 받고 남성의 성욕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형태의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 산업을 부추기고 확장한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리얼돌이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AI(인공지능) 챗봇 ‘이루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20대 여대생으로 소개된 이루다에게 일부 사용자들이 음담패설은 물론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가하면서 서비스는 곧 중단되었다. 이루다에게 행해진 인격적, 성적 모욕을 보며 지난 몇 년 동안 실제 여성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일어났던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 나아가 ‘n번방’과 ‘박사방’으로 이어지던 온라인 성 착취 사건을 떠올려 보라. 최소 26만 명이 참여했다고 알려지는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여성과 아이들에게 행해지던 온갖 성적 침해와 모욕은 차마 글로 옮겨 적을 수조차 없다. 노골적인 성 기구로 인식되는 리얼돌이 어떤 식으로 이용될 것인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이미 일부 남성용 자위 기구가 실제 여성의 성기를 본뜬 상품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리얼돌이 얼굴에서부터 신체 부위까지 살아 있는 여성의 몸을 모방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 2019년 대법원 판결 이후 연예인이나 지인 얼굴로 리얼돌 제작이 가능하다는 사이트가 등장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얼돌이 노골적인 성 기구로 이용된다는 바로 그 점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부추긴다. 여성의 신체를 그대로 재현한 리얼돌이 음란물, 혹은 성 기구로서 성적 만족을 위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용되는 것이 곧 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인 셈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현재 국내에서 생산·유통·소비되는 리얼돌 자체에 대해서나 ‘리얼돌 체험방’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부산에서도 ‘리얼돌 체험방’에 대한 단속은 학교 앞 정화구역이거나 청소년 출입 규제에 한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많은 이가 리얼돌의 문제를 지적하고 법적 제재를 요구해 왔다. 여성들은 리얼돌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또 다른 수단이라고 경고했다. 리얼돌에 대한 분명한 법적 기준과 제재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