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55 > 우리말 망치는 언론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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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졸복은)피부 난소 간에 맹독이, 정소에는 약한 독을 갖고 있다.’

어느 신문에 실린 글인데, 비문이다. ‘맹독이…갖고 있다’꼴이기 때문. 목적어와 서술어를 맞추려면 ‘…간에 맹독을, 정소에는 약한 독을 갖고 있다’라야 했다. ‘…간에 맹독, 정소에는 약한 독을 갖고 있다’도 괜찮았다.

‘민주당이 17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21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기사에 자주 나오는 꼴인데, 역시 비문이다. ‘민주당이/처리한다’는 호응이 되지만 ‘민주당이/방침이다’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처리한다’에는 동작성이 있어서 민주당이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방침이다’는 동작성이 없어서 민주당을 꾸미기에 적절치 않은 것. 그러니 저 문장은 아래처럼 고쳐야 한다.

‘민주당은 17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21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17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21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방침이다.’

한데, 안타깝게도 각 문장성분이 따로 노는 이런 비문은 언론 기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도발이 잇따르자 우크라이나 각계에서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다.’(→여론이 일고 있다.)

‘지난 시즌 뉴욕 메츠가 메이저리그 전체 팀 평균자책점 8위를 기록한 데는 2년간 마인홀드 코치가 공을 들여 영건을 키워낸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평가가 나온다.)

‘나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 고조에 대응하기 위해 남동부 유럽 4개국에 다국적군을 파견할 계획이다.’(→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시가 인구이동과 주택정책을 두고 서울시립대·국토연구원 등에서 받은 전문가 자문도 이 같은 분석이다.’(→전문가에게 자문해 받은 분석도 이와 같다. ※자문: 의견을 물음.)

‘직산역 역세권에 지역주택조합사업으로 시장 선호가 높은 84㎡ 912세대가 공급될 전망이다.’(→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공급된다.)

‘…“‘대갱이무침’을 별식으로 생각하는 외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맛 좀 보자고 주문해 따로 안주로 내는 정도”라는 골목식당 주인장의 설명이다.’(→라는 게 골목식당 주인장의 설명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현행 전기요금 체계의 지속적인 개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중요하다.)

이쯤 되면, 언론이 우리말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얘기를 흘려듣기도 어려울 듯하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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